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금융 자산의 수익은 대부분 명목상 고정되어 있어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92쪽

적당히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경제가 안정되면 투자를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시도는 투자와 성장을 위축시켰다.

인플레이션은 장기적 안정, 경제 성장,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희생해서 금융 자산 보유자들에게나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기 위해 사용해 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같은 것에 불과. -93쪽

Thing 0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자유 시장 정책을 써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94쪽

미국의 보호주의적 과거를 이야기하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보통 미국이 보호주의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보호주의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고 반박한다.

'유치 산업론'을 이론을 정리한 최초의 인물은 해밀턴이지만 그가 사용한 정책들 중 많은 부분은 1721년부터 1742년 사이 영국을 다스렸던 이른바 최초의 대영제국 수장 로버트 월폴에게서 베껴 온 것들이다.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쓰지도 않았던 정책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행태는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해라'-102쪽

Thing 0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기업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국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의 국적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108쪽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순수한 이기심 이외의 모든 동기를 고려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일축해 버리지만 '도덕적' 동기는 실제로 존재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경 없는 세계라는 표현은 엄청나게 과장된 표현이다. -115쪽

도덕적, 역사적 이유들도 중요하지만 초국적 기업들이 자국 편향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것이다. 기업의 핵심 역량을 국경 너머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116쪽

외국인 투자가 많은 경우 새로운 생산 시설을 설립하는 그린필드 투자(greenfield investment)가 아니라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브라운필드 투자(brownfield investment)라는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외국인 직접 투자 중 브라운필드 투자가 절반 넘게 차지했다. 국제적 인수 합병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1년에는 이 수치가 80퍼센트까지 육박하기도 했다. -119쪽

국내 기업들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최소한 일부 산업만이라도 외국인 직접 투자를 제한하고 국내 기업을 육성해서 외국 기업을 대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120쪽

세계화론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전략 수립과 같은 수준 높은 기업 활도듸 기지를 어디에 두는지를 결정하느 데에는 아직도 기업의 국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업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그 기업의 국적만이 아니다...
외국 자본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자본에는 더 이상 국적이 없다는 신화에 근거해 경제 정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123쪽

Thing 0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조업 부문이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에서 탈산업화 시대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탈산업화 단계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허상에 불과하다. 서비스 산업은 생산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다. 또 서비스 상품은 교역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에 기초한 경제는 수출 능력이 떨어진다. -124쪽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부자 나라들 역시 아직 탈산업화 시대에 들어섰다고 볼 수 없다. 제조업은 여전히 이 나라들의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129쪽

탈산업화가 되어 간다고 느끼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은 '착시 현상' 때문이다. 실제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단지 통계 처리의 변화 때문에 탈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 급식, 청소, 기술 지원 등은 사실 그 자체로는 서비스에 속하지만 제조업 기업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는 제조업의 실적으로 잡힌다. "아웃소싱 효과"-129쪽

제조업이 쇠퇴가 실제보다 더 부풀려져 보이는 원인으로 이른바 "재분류 효과"가 있다.
-> 여전히 제조업을 하고 있는 일부 업체가 자기 회사의 업무 중 생산보다 서비스가 훨씬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면서 통계청에 서비스업으로의 등록 변경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130쪽

중국('저비용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제조업 제품이 엄청나게 수입되면서 부자 나라들의 제조업이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는 주장
<-> 탈산업화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고작 20퍼센트 안팎에 불과함-130쪽

국민 경제가 부유해지면서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서비스 수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경향 때문
<-> 서비스의 가격이 제조업 제품의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점점 더 비싸지기 때문... 제조업 제품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즉 상대가격 변동을 감안해서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를 측정하면) 하락의 규모는 미미하다.
-> 제조업 제품의 상대가격은 왜 떨어지는가? 서비스업에 비해 제조업의 생산성이 더 빨리 향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31쪽

금융 혁신은 금융 상품의 위험성을 실제로 줄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감추는 데 불과한 것이었고, 그에 바탕을 둔 금융 부문의 급속한 성장은 결국 지탱할 수 없었다.

부자 나라들의 국민총생산에서 제조업 비중이 줄어든 주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 제조업 제품의 수입이 대거 늘어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수입 제품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은 몇몇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이른바 탈산업화 현상은 제조업 부문의 급속한 생산성 향상에 따라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134쪽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심지어 부자 나라들도 이른바 탈산업 사회로 접어들었는지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제 부자 나라들의 대다수 국민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상대가격의 변화를 감안하면 부자 나라들의 생상과 소비에서 제조업 부문의 중요성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대다수의 서비스는 생산성이 느리게 성장한다. 그리고 생산성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첨단 지식 기반 서비스 산업들은 강력한 제조업 없이 발전할 수 없다. 더욱이 서비스는 국제 교역이 어렵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이 서비스 산업에 특화하는 경우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에 직면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경제를 고도화시킬 능력 또한 떨어지게 된다. 이렇듯 탈산업 사회라는 환상은 선진국에도 좋지 않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는 대단히 해롭다. -140쪽

Thing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소득 분배가 극도로 불균등한 미국과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가 고른 다른 선진국을 이렇게 평균 소득만으로 비교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짐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민이 많고 고용 조건이 열악한 덕에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싸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일을 훨씬 더 오래한다...
-142쪽

국가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간단히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중 1인당 소득, 특히 구매력 평가지수로 표시한 1인당 소득이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가 시간의 질과 양, 직업의 안정성, 범죄의 공포로부터 해방, 의료 혜택, 사회 복지 등 '질 좋은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간과하기 쉽다. 개인마다, 그러나 나라마다 이런 요소들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런 것들과 소득 수준 사이의 균형을 어떤 식으로 맞추는 것이 좋을지는 각자 정하기 나름이지만 모두가 진정으로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소득 이외의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153쪽

Thing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의 정체를 불러온 진짜 요인은 이 지역 국가들이 추진하도록 강요받았던 자유 시장 경제 정책이다. 역사나 지리적 요건과는 달리 정책은 바꿀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154쪽

아프리카가 스스로 일어나 두 발로 설 수 있는 희망은 진정 없는 것일까?

아프리카의 성장 비극은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이 지역이 보이고 있는 저조한 성장률은 결코 만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가 1980년대 이전에는 괜찮은 성장률을 보였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겪고 있는 비교적 최근의 정체가 '구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159쪽

1979년 세네갈을 필두로 해서 1970년대 말부터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은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이 기관들이 조정하는 배후의 부자 나라들이 제시한 구조 조정 프로그램의 조건으로 따라 온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이 정책들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60년대와 70년대에 가까스로 성장시켜 놓은 일부 제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161쪽

구조 조정 프로그램과 그 뒤를 이은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빈곤 감축 전략 계획과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을 시행한 결과 아프리카 경제는 30년 동안 성장을 하지 않는 정체기를 맞았다.

결국 '더 좋다'는 정책, 즉 자유 시장 정책을 30년 동안 시행한 후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의미이다.

1980년대 초 성장이 자취를 감춘 이후에야 아프리카의 미미한 경제 성적이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62쪽

천연자원을 가진 것이 저주라고 말하는 것은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버릇이 나빠져서 인생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164쪽

추운 기후가 더운 기후보다 경제 발전에 더 좋다고 믿을 만한 선험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프리카의 저성장이 기후 탓이라고 하는 것은 저상장의 원인과 증상을 혼동하는 것이다. 나쁜 기후가 저성장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저성장의 결과로 나쁜 기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164쪽

부자 나라들이 다민족 문제로 고통받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단일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국민 통합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167쪽

문화라는 것은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168쪽

아프리카가 최근 들어 성장 실패를 경험한 주된 이유는 정책, 즉 구조 조정 프로그램이 강요한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에 있다. 특정 자연 조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겪는 문제가 정책 때문이라면 문제는 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비극은 만성적 성장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69쪽

Thing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더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항상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 너무 많은 정보에 파묻혀 있으면 오히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리고 정부는 필요하면 더 나은 정보를 획득하여 의사 결정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170쪽

유진 블랙(Eugene Black, 세계은행 역사상 총재직을 가장 오랫동안 수행함(1949~1963년)이 개발도상국들은 고속도로, 일관제철소, 국가 원수의 기념비라는 세 가지 상징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난.
-> 흔히 '흰 코끼리 프로젝트'니 '사막의 성'이니 하는 표현도 당시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cf. white elephant project : 불교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흰 코끼리는 동남아시아에서 왕권의 정당성과 위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일을 시킬 수 없는 짐승이다. 보기에는 번드레하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데다 실질적인 이용 가치는 전혀 없는 물건을 가리킨다. -171쪽

국제 무역의 정설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비교 우위론을 따르자면 한국처럼 노동력이 풍부하고 자본이 부족한 나라는 철강 같은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은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172쪽

성공적으로 유망주를 골라낸 것이 동아시아 국가 정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후반 프랑스나 핀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정부 등도 보호 무역이나 보조금 지급, 국영 기업에 의한 투자를 통해 산업 발전을 성공적으로 입안하고 지휘했다. -178쪽

정부가 유망주를 고르는 것이 일부 기업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은 있지만 사회 전체적 시각에서 보면 더 나은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 -181쪽

문제는 정부가 유망주를 선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그럴 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의 승률을 높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의지가 충분하면 정부의 승률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182쪽

고르는 주체가 기업이 되었든 정부가 되었든 유망주는 항상 선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성공한 경우는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서 선택했을 때이다...
민간 기업의 유망주 선택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 묻혀 그 너머를 보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정부가 주도하는, 혹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경제 발전의 거대한 가능성을 모두 놓치고 말 것이다. -183쪽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트리클다운(trickle down)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성장을 촉진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성장 감소를 부르는 빈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의미를 양분해서 말하는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가속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트리클다운 이론의 첫 번째 단계는 설득력이 없다.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현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리클다운 현상이 조금씩 일어날 수 있으나 그것을 시장에 맡겨 두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cf. 트리클다운 효과, 아궁이 효과, 적하 효과, 떡고물 효과-184쪽

리카도 같은 열렬한 자유 시장론자와 프레오브라젠스키 같은 극좌파 공산주의자가 만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모두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극대화하려면 투자 가능한 잉여 생산물을 '투자자'의 손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 다른 점은 이 '투자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뿐이다.

오늘날 "부를 재분배하기 전에 먼저 부를 창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궁극적으로 잉여 생산물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0쪽

아래로 흐르지 않는 물 :
이와 대조적으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에는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상당한 양의 물이 밐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한 것이다. -195쪽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성장까지 촉진 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상당수 학자들은 소득 불평등의 수준이 낮으면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던 '자본주의 황금기'는 이 같은 매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196쪽

Thing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실제로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가 완전히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영자 계층이 지닌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힘은 자신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시장 자체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198쪽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효율적이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산성에 걸맞은 높은 보수,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높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문제는 그들의 능력이 현재와 같은 보수 차이를 정당화할 만큼 뛰어난가 하는 것이다. -200쪽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논리, 즉 모든 사람은 각자 생산성에 따라 응당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충실하자면 CEO 대 노동자의 보수가 30~40배에서 300~400배가 되었다는 말은 미국의 CEO들이 1960~1970년대에 비해 10배나 더 효율적이 되었다는 뜻이다. -201쪽

시장은 비효율적인 관행을 저절로 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는 아무도 시장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혹 오랜 세월에 걸쳐 그런 관행이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일방적인 보수 체계가 있는 동안은 경제 전반에 큰 손실을 끼친다.

미국, 그리고 미국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영국의 경영자 계층이 시장을 조롱하고 자신의 결정이 부른 부정적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강해진 마당에 그들에 대한 적절한 보수 체계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또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207쪽

Thing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개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식 기업 같은 발달된 사회 조직이 없어서이다.
20세기에는 특히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려면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집단적 조직력의 부족이 개인이 기업가 정신의 부족 현상보다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더 큰 장애 요인인 것이다. -209쪽

결론은 선진국 사람들보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더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비농업 인구 중 자영업 종사자 비교 : 최빈국에서는 1인 자영 업체 종사자 비율이 66.9%, 방글라데시는 75.4%, 베냉은 88.7%. 반면 노르웨이 6.7%, 미국 7.5%, 프랑스 8.6%
=> 그런데 이런 비교가 기업가 정신(앙트르프르너십, entrepreneurship)에 맞는 수치인가? -212쪽

조너선 모두크(Jonarthan Morduch)와 데이비드 루드먼은 "놀랍게도 마이크로파이낸스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이로 인해 고객들의 생활이 수치상으로 개선되었다는 확고한 증거는 거의 없다."라고 고백
-> 밀포드 베이트먼(Milford Baterman),「왜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Why doesn't microfinance work?)」-216쪽

동기 부여가 확실하고, 사업에 필요한 기술도 있고, 시장의 압력도 충분한 데다 사업에 온 정력을 기울이는데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결과가 이렇게 미미한 것은 도대체 왜일까?
-> '구성의 오류' 어떤 사람이 특정 사업으로 성공했다 해서 같은 사업을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218쪽

-> 문제는 가진 기술은 한정되어 있고, 사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도 제한되어 있는 마당에 마이크로파이낸스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마저 얼마 되지 않으니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다-219쪽

부자 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 우리는 기업가 정신을 너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219쪽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은 점점 더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루어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220쪽

슘페터는 '관리형' 경영자가 영웅적인 기업가를 대체하면 자본주의는 활력을 잃고 종국에 가서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슘페터의 예상은 빗나갔다.
-> 영웅적인 기업가는 점점 드물어지는 대신 슘페터가 기업가 정신의 핵심 요소로 꼽는 생산, 공정, 마케팅상의 혁신 과정은 점점 더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 일본 기업들은 심지어 지위가 가장 낮은 생산 라인 노동자들의 창의성까지도 흡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했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 기업의 성공 신화가 부분적으로나마 여기에 기인한다고 평가한다. -221쪽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222쪽

Thing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늘 최선의 것은 아니다(제한적 합리성). 따라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의 복잡성을 줄이려면 일부러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고 있다.

극도로 복잡한 현대 금융 시장과 같은 분야에서 정부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가 보유한 지식이나 정보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정부 규제를 통해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224쪽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 중 어느 것이 더 문제인가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므로 여기서 결론짓기는 힘들다...

우리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대전제를 부정하고 나면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시장 실패 이론 같은 접근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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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Thing 01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market
Thing 02 Companies should not be run in the interest of their owners
Thing 03 Most people in rich countries are paid more than they should be
Thing 04 The washing machine has changed the world more than the internet has
Thing 05 Assume the worst about people and you get the worst
Thing 06 Greater macroeconomic stability has not made the world economy more stable
Thing 07 Free-market polices rarely make poor countries rich
Thing 08 Capital has a nationality
Thing 09 We do not live in a post-industrial age
Thing 10 The US does not have the highest living standard in the world
Thing 11 Africa is not destined for underdevelopment
Thing 12 Governments can pick winners-7쪽

Thing 13 Making rich people richer doesn't make the rest of us richer
Thing 14 US managers are over-priced
Thing 15 People in poor countries are more entrepreneurial than people in rich countries
Thing 16 We are not smart enough to leave things to the market
Thing 17 More education in itself is not going to make a country richer
Thing 18 What is good for General Motors is not necessarily good for the United States
Thing 19 Despite the fall of communism, we are still living in planned economies
Thing 20 Equality of opportunity may not be fair
Thing 21 Big government makes people more open to change
Thing 22 Financial markets need to become less, not more, efficient
Thing 23 Good economic policy does not require good economists

Conclusion How to rebuild the world economy
-8쪽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말해 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진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목적이다.
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 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14쪽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씌워 놓은 장밋빛 색안경을 벗어 다라는 것이다. -15쪽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세상 중 가장 나은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렸더라면 지금 다른 모습의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들이 확고한 증거와 제대로 된 논리에 근거한 것들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16쪽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느지를 독다들이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 -17쪽

사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이 문제들에는 단순한 해법이 없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18쪽

Thing 01 :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라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20쪽

노동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아동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규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이전만 해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동 노동 규제를 자유 시장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21쪽

피아노 줄과 쿵푸의 대가들 : 일단 특정 규제의 정당성을 완전히 받아 들이고 나면 그 규제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보면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규칙,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규칙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피아노 줄은 정부의 규제, 영화 속 쿵푸의 대가들은 특정 규제의 정당성을 완전히 받아들인 자유 시장-22쪽

- 우선 무엇을 사고팔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제
- 시장에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제
- 거래에 관련된 조건 또한 구체적으로 명시
- 가격 규제-24쪽

다른 모든 가격에 영향을 주는 임금과 이자율이 상당 부분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면, 궁극적으로 모든 가격이 정치를 통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25쪽

자유 무역은 과연 공정한가? : (정확히 말하자면 1905년) 미국은 제빵 노동자들이 하루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한 뉴욕 주의 법에 대해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린 나라... "제빵 노동자들이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라는 근거로...-27쪽

여기가 프랑스가 아닌 것 같아 : 부시는 부실 자산 구제 조치가 "연방 정부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신념 위에 세워진" 미국식 자유 기업 시스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28쪽

어떤 정책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위배되지 않는 불가피한 국가 개입인지 아닌지는 견해 문제인 것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규정된 자유 시장의 경계라는 것은 없다 -29쪽

시장이 경계가 모호하며 객관적으로 결정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 규제의 도입을 반대한다는 것은, 그 규제를 통해 보호될 권리들을 부정한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

=>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이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30쪽

Thing 02 :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들이다... 주주들을 위한 경영을 하면 기업 이윤은 극대화된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극대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 주주들은 기업의 이해 당사자 중에서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장기 전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주주들을 위한 기업 경영이 결국 (주주들이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고, 배당을 극대화하는 단기 수익 극대화 기업 전략을 선호하여 재투자에 필요한 유보 이윤이 줄게 되므로)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32쪽

유한 책임을 가리키는 이 L(limited liability) 자가 근대 자본주의를 가능케 했다... 공동 자본 회사라고 불리던 유한 책임회사가 16세기에 유럽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업가들은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사업을 해야 했다. -33쪽

아담 스미스가 유한 책임의 원칙에 반대한 것은 "[공동자본] 회사의 이사진은...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한 책임을 전제로 하는] 합명 회사 파트너들이 자기 돈을 지키듯이 남의 돈을 관리하리라는 기대는 무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34쪽

19세기 중반 철도나 철강, 화학 공업 같은 대규모 산업이 등장하면서 유한 책임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35쪽

자본가 계급의 종말 : 유한 책임 제도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를 엄청나게 촉진시켰다. -36쪽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 경영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여 카리스마 넘치는 기업가들을 대체해 나갔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전문 경영인들이 경영권을 장악해 나갔고, 주주들은 기업의 경영 방침을 결정하는 데 점차 소극적이 되었다. -37쪽

1930년대가 되면서 '경영자 자본주의'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산업의 지휘관'으로 불리던 전통적 의미의 자본가들이 관료들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38쪽

비판자들에 따르면 전문 경영인들은 이윤을 극대화 하기보다는 매출 극대화를 통해 회사 규모를 키우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 한다거나 회사에서 받는 특전을 최대화하려 했다. -38쪽

성배인가, 비신성 동맹인가? :
198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성배가 발견되었다. 바로 주주 가치 극대화 원칙이었다. 이것은 주주들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안겨 주느냐에 따라 전문 경영인들의 보수를 정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주주들의 몫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임금이나 투자, 재고, 중간 관리자 등의 비용을 무자비하게 삭감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다음에 그 수익 중에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배당금 지급이나 자사주 매입 형태로 주주들에게 분배해야 한다. 경영자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익과 주주들의 이익을 동일시하도록 경영자들의 보수 가운데 스톡옵션의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39쪽

이 아이디어는 주주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전문 경영인들에게도 널리 지지를 받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오랫동안 GE 회장을 맡았던, 주주 가치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고 알려진 Jack Welch였다.-40쪽

전문 경영인들과 주주들 간에 결성된 이 '비신성 동맹'은 기업의 기타 이해 당사자들을 착취한 자금으로 유지되었다. -40쪽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른 이해 당사자들에게 돌아가던 소득 중 많은 부분이 이윤으로 재분배된 것도 문제였지만 1980년대 이후 국민소독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에도 그것이 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41쪽

최악의 문제는 주주 가치 극대화가 심지어 해당 기업에도 전혀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42쪽

많은 나라에서 정부가 핵심 기업들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안정적인 주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44쪽

부동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불공평할 뿐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는 국민 경제와 기업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잭 웰치가 최근 고백했듯이 주주 가치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아이디어"이다. -45쪽

Thing 03 :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47쪽

잘사는 나라와 못하는 나라의 임금 격차는 개인의 생산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 정책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만 한다. -47쪽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 신화에서 벗어나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행해지는 사회 말이다. -56쪽

Thing 04 :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57쪽

인터넷 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았다. 가전제품은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 갘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과거를 돌아볼 때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보아서는 안 된다. -59쪽

여성의 고용 구조 변화
-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가 늘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도 확실히 높아졌다.
- 그 결과 남아 선호 사상이 약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교육 투자가 늘어났고, 이것이 다시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를 촉진시켰다.
- 피임약을 비롯한 피임술의 발달로 출산 시기와 빈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도 여성들이 교육과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중산층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가 사회 관습상 용인되는지에 따라 기술력이 비슷한 나라들 사이에서도 여성들의 노동 시장 참여율이나 고용 구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 세금 제도가 임금 노동과 자녀 양육 중 어떤 것에 더 유리한지, 또 탁아 시설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등도 영향을 미친다. -62쪽

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실을 감안해도 세탁기와 더불어 가사 노동을 줄이는 여타의 설비와 가전제품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사회나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지금처럼 극적일 정도로 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63쪽

일견 도발적인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기술력이 경제 발전이나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68쪽

Thing 0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69쪽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 제도는 사람들이 이기심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은 하되 인간의 다른 본성들을 모두 활용하고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력하는 제도일 것이다. 결국 최악의 행동을 기대하면 최악의 행동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70쪽

이른바 '신 공공관리 학파(New Public Management School)'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정부의 운영 자체까지 시장의 힘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 -73쪽

"사회 공동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남자, 여자라는 개인, 그리고 가족 단위만 존재할 뿐이다."라는 대처 여사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없이 고립된 이기적 존재로 살아 온 적이 없다. -80쪽

(모든 사람이 늘 자기 이익만을 쫓는)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도덕적 주체로 신뢰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 도덕적 행동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감시, 판단, 제재하는 데 엄청난 자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최악의 행동을 할 것이라 예상하면 결국 최악의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80쪽

Thing 0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81쪽

인플레이션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우리는 완전 고용이나 경제 성장 같은 중요한 문제에 충분히 신경 쓰지 못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졌다. 물간 안정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고들 주장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에 고삐를 매었음에도 성장률은 미비했다. 바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기 때문이다.-82쪽

적당히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스탠리 피셔가 권고한 대로 '권장 물가상승률'은 1~3 퍼센트)이 경제에 나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시카고 대하이나 IMF에 적을 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행한 연구에서도 인플레이션이 8~10 퍼센트 이하일 경우 국가 경제 성장과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85쪽

여기에 더해 과도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실은 경제에 해롭다는 증거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이 도가 지나칠 경우 투자가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86쪽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은 투자와 성장을 저해했을뿐 아니라 원래 목표, 즉 경제 안정을 공고히 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87쪽

자유 시장 경제학이 맹위를 떨치고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책이 채택된 지난 30년 사이에 세상은 더 불안정해졌다고 느끼는 원인 중 하나는 금융 위기가 더 자주, 그리고 더 심하게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88쪽

1990년대 이후 실업률은 감소했지만 1980년대 이전과 비교하면 고용 불안은 더 심화되었다.
1)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단기 고용의 비중이 높아졌다.
2)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기간은 1980년대 이전 노동자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미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에서는 비자발적 고용 종료,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데도 직장에서 떠나야 하는 비율이 늘었다.
3) 미국과 영국에서 1980년대까지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던 관리, 사무, 전문직 일자리들이 1990년대 이후 불안해졌다
4) 고용 자체의 안정성은 유지 된다 해도 일의 성격과 강도에서 더 빈번하고 심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 변화는 대부분 노동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어났다.
5) 부자 나라들이 1980년대 이후 복지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에 실직할 확률이 객관적으로 높아지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90쪽

물가 안정(즉 낮은 인플레이션)과 잦은 금융 위기, 고용 불안 증대 등 물가로 표시되지 않는 경제 불안 요소들이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현상들은 모두 동일한 자유 시장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고용 불안이 커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자유 시장 정책의 직접적 결과이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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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절판


언어의 반대말은 '살'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모르기는 해도, 살 역시 악기나 연장의 작동 원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이 '살'이 타인의 '살'과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 대목을 나는 내가 힘이 있을 때 한번 써 볼 생각이다. 그러나 쓰지 못하면 또 어떠랴. 살은 언어의 영역이 아닌 것을.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 -25쪽

젊은 목수들의 연장은 아름다웠고, 그들의 망치질이며 톱질과 대패질은 행복해 보였다. 세상의 재료들을 재고,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이르켜 세우고 고정시키는 자들의 기쁨으로 그들의 근육은 꿈틀거렸고, 날이 선 연장들은 햇빛에 빛났다. 아아, 연필과 지우개는 죽어 마땅하리라......
<목수들의 일터에서 놀다> -27쪽

새해에는 대동여지도의 봉수 신호나 눈 쌓인 밤의 철길 위로 열차를 보내주는 수신호처럼, 다급하고도 아름다운 신호들이 당신들의 가슴에 도착하기 바란다.
<나의 떨림으로 너를 느낀다> -33쪽

▷ 오도송(悟道頌): 고승들이 부처의 도를 깨닫고 지은 시가.
▷ 대선사(大禪師): [불교]
1 선종에서 가장 높은 법계. 선(禪)을 수업하고 비구계, 보살계와 법랍 이십하(二十夏)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 준다.
2 고려 시대의 선종의 법계 가운데 하나. 선종의 법계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으로 왕사의 아래, 선사(禪師)의 위이다.
3 조선 시대의 선종의 법계 가운데 하나. 도대선사의 아래, 선사의 위이다.
-34쪽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 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 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35쪽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35쪽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 -37쪽

나는 남자의 '특권'을 이 사회에 반납하고 싶다. 그리고 마누라보다 오래 살아서, 내 마누라가 죽을 때 마누라를 이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배우해 주고 싶다.
<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43쪽

여자들의 표정이나 질감에 그 고향의 산천이 묻어나는 일은 신기하다....
저 어린 여고생의 무리들이나, 고향의 질감을 지닌 여자들이나, 도발적인 유혹을 뽐내는 대도시의 미녀들이나, 학습된 웃음을 웃는 북한 여자들 모두가 아직도 덜 자란 여자들일지도 모른다. 그 문화의 토양 전체 위에서 하나의 개별성에 도달한 여자가 성숙한 여자일 것이다.
<이런 여자가 아름답다> -45쪽

젖가슴은 구조나 대칭이나 질량이나 밀도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현상과 자연현상에 대한 인식없이 우리는 젖가슴의 본질을 논할 수가 없다.
당신들의 젖가슴은 단지 젖가슴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직립보행의 고난을 떠안고 있는 그 가슴을 이제 좀 편하게 해주기 바란다.
<가슴의 미학> -51쪽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 이 대도시 속에서 원시림을 느낀다. 두 발로 땅을 딛고 걸어 다니던 종족에 견주어 볼 때, 발바닥에 바퀴를 달고 미끄러져 가는 종족들의 세계는 얼마나 가볍고 경쾌한 것인가. 그래서 인라인스케이트는 인간 직립 수억만 년 역사 속의 혁명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개벽이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53쪽

'하나'라는 존재의 모습은 늘 나를 질리게 한다. 산 속의 무덤들은 여럿이 모여 있지만 그 모임은 군집일 뿐 소통은 아니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개별적 행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들 혼자 죽어서 저 혼자만의 무덤을 이룬다.
세 마리의 새가 날아갈 때, 이 세계의 복잡성은 완성된다. 세마리는 '너'와 '나'와 '그'를 이룬다. 세 마리는 각자의 일인칭을 거느리면서 삼인칭의 공간을 날아간다. 세 마리가 날아갈 때 언어는 더욱 교묘해지고 복잡해진다. 세 마리는 언어를 완성한다. '나'의 언어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서 '너'와 '그'는 바뀐다.
<셋이 함께 날아가는 세상>
-57쪽

죽기를 각오하고 사는 사람들이 무섭다. 죽기를 각오한 자는 마침내 죽을 것이고, 그가 죽는 과정에서 또한 남을 죽일 것이다. 겁 많은 사람들이 이 하찮은 삶을 그나마 애지중지하면서 조심조심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자동차가 이처럼 늘어났으니 되도록이면 거리에 나가지 않아야겠다.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63쪽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이 총체적 비극의 지옥 속에서 한 포로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무력하고 가엾은가. 그러나 이 가엾음을 진실로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면 인간은 왜 이래야만 하는 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영원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모든 전쟁 포로의 근접사진을 TV로 공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제네바협정은 추악한 위선이다.
<고통의 근원을 사유하며>-86쪽

이 '동해'라는 표기는 서양인들의 자기중심적인 방위 의식 속에서 이 세계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지, 한반도를 기준으로 해서 그 동쪽 바다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침반은 자기중심적인 시선으로 세계를 살필 수밖에 없는 그 자신의 슬픔이고 결핍이다.
나의 동쪽이 당신의 서쪽일진대, 내가 나침반을 들여다보면서 동쪽이다 서쪽이다를 따지는 언어는 얼마나 공허하고 또 가엾은 장난인가?

나는 내 조국의 동쪽 바다인 동해와 그 이름을 사랑한다. 내조국에서 이 바다의 이름은 영원히 동해이다. 그리고 이 바다는 일본인들의 서쪽 바다인 것이다.
<나의 동쪽은 당신의 서쪽> -96쪽

이 사회의 가난이란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차별이며 모멸이다.
<서민> -102쪽

나는 이간의 역사 속에서 불가피하ㅔ 개입하는 치욕을 긍정한다. 치욕을 도려내버린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언어화된 이념일 것이고, 역사는 치욕과 더불어 비로소 온전할 터이다. -105쪽

(아버지는 나에게) "그 비굴한 대다수의 동포들이 바로 민족과 국토와 언어를 보존한 힘이었다".
내 말은, 그 견딜 수 없는 치욕을 치욕으로써 긍정하자는 말이다. 치욕을 긍정하는 또 다른 치욕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 또한 감당되어야 할 치욕인 것이다.
치욕을 그정하기 위하여서는, 교과서에 그 고통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가장 온당한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이들이 자라나서 스스로 그 치욕의 역사를 알게 될 때의 혼란과, 제도에 대한 불신과 역사에 대한 환멸이 이 고통스런 논쟁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마침내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의 불화는 역사를 도덕적으로 긴장시켜 줄 수 있다.
<치욕> -106쪽

아마도, 자연을 거스르는 것들의 강력함은 허약함을 내장하고 있지만, 이 내장된 허약함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일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한 허약함을 드러낸다. 자연에 포개지는 것들의 외양은 늘 엉성하고 헐겁다. 그 헐거움은 강력함을 내장한 헐거움이지만, 이 내장된 강력함도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견고하고 혹은 헐겁다는 인간의 말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말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서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자연은 물리적이고 물리적은 세계이며, 인과율의 적용을 받는 객관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무의미가 인간이 설정한 의미들보다 더욱 힘세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까치둥지> -110쪽

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다들 예쁘고 다들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여자들의 성적 매력은 나라의 힘이고 겨레의 기쁨이다. 올 여름 여자들의 노출이 너무 심하다고 텔레비전은 개탄하고 있지만, 너무 그러지들 말아라. 곧 가을이 오면 여자들은 다시 옷을 입을 것이다. 좋은 것을 좀 내버려두라는 말이다.
<노출> -120쪽

어째서 인간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에 따르지 않고, 아니라고 뻣대어가면서 한 시대를 허송세월하는 것일까. 인간의 말을 도저히 알아드지 못하던 인간들이 어째서 한바탕 '본때'를 보이고 나면 비로소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기어이 '본때'를 보여야 명백히 그릇된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 '본때 보이기'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다른 길은 정말로 없는 것인지, 말의 힘과 말의 소통능력으로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는 없는 것인지...
<늙은 기자의 노래> -125쪽

▷ 뻗대다 : 1 쉬이 따르지 아니하고 고집스럽게 버티다. 2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아니하려고 손이나 발을 받치어 대고 버티다. ‘벋대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곤죽 : 1 몹시 질어서 질퍽질퍽한 밥. 또는 그런 땅.2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된 상태.3 몸이 지치거나 주색에 빠져서 늘어진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참고쪽

단단한 것이 유연성과 운동성을 완성해 낸다. 내가 아끼는 연장들의 날과 끝도 단단하고 날카롭다. 뾰족한 펜치의 끝은 민감하고 섬세하다. 쇠는 단단함으로써 부드럽고, 쇠의 날은 날카로움으로써 섬세하다. 쇠는 그 양 극단의 모순을 함께 지향한다.
<쇠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며> -139쪽

봄에는, 봄을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다른 짓을 할 시간이 없다. -156쪽

꽃은 꽃 한 송이로서 아름답고 자족한 세계를 이룬다. 꽃은 식물의 성적인 완성이며, 존재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은 스스로 자지러진다. 꽃에는 그리움이 없다. 꽃은 스스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하게 한다. 꽃을 들여다 볼 때, 나는 때때로 꽃으로부터 머리 소외된다. -157쪽

소나무의 새잎에는 연두의 애잔함이 없다. 그래서 소나무나 전나무는 추사의 그림에 나옴직한, 이념의 가파름을 애초부터 지니고 태어난다. -158쪽

봄의 숲들은 이 모든 빛과 색과 냄새의 대오를 거느리면서 여름의 강성함을 향해 나아간다. 온 산의 엽록소는 깨어나서 아우성친다. -159쪽

하루 종일 봄 산의 언저리와 강가를 자전거로 쏘다니고 나면, 내 피부에 나무처럼 엽록소가 생겨서, 수고하지 않고도 빛과 더불어 온전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환각에 빠진다. 그때 숲 속에서 오줌을 누면 초록색 오줌이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강가를 쏘다니며 적은 이런 글은 스스로 그 피부에 엽록소를 지니지 못한 자의 결핍일 것이다.
<꽃은 꽃 한 송이로서 아름답고 자족하다> -160쪽

11월에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11월은 습기가 빠진 존재의 모습을 가차없이 드러내 보인다. 습기가 빠져서 바스락거리는 것들이 11월 들판에 가득하다. 벌레들의 죽음에서도 그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1월은 말라가고 바래어간다. 갈대와 억새의 죽음에서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11월의 들판은 조용히 바스락거리면서 죽어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지난 11월에는 ...>-163쪽

인간과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밧줄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최초로 끈을 발명한 인류의 선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끈과 밧줄을 발명한 인간은, 인간의 몸과 노동을 외계 속으로 그리고 다른 인간의 몸속으로 확대시키고 연관시킨, 위대한 선구자일 것이다.
<밧줄의 아름다움> -167쪽

가을 자작나무이 냄새는 향기롭다. ... 이 세상의 모든 나무들 중에서 자작나무가 가장 빛나는 나무다. 자작나무는 늘 빛 속에 서 있다. 흔들거리면서 떨면서, 자작나무는 빛과 더불어 놀고 빛과 더불어 잠든다.
자작나무의 잎은 바람에 날려서 땅에 닿는 그 짧은 순간에 가장 아름답다. 그때, 잎은 빛과 대기 속을 표류하면서 시간의 비늘로 퍼덕거리다가 땅에 떨어져 썩는다.
자작나무는 어떠한 시간도 기다리지 않는다. 자작나무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계절 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축복에 도달해 있다. 기다림이란 얼마나 헛된 낭비인가. 가을 자작나무 숲에서, 나는 기다림 없는 시간을 꿈꾼다.
<물드는 산, 꿈꾸는 나무>-170쪽

눈의 아름다움은 세상을 고립시켜 주는 힘에 있다. 눈이 가득 쌓여 마을의 길들이 끊어지고 인기척이 없을 때, 이 정처 없던 삶은 문득 정처를 회복한다. 눈이 쌓여서 길이 모두 지워졌을 때 내가 살던 이 불안정한 주거는 정주하는 자의 평온을 회복한다. 그 고립과 단절 속에 나의 그리운 삶은 있었던 것이다. 눈에 덮인 고립 속에서는 내 결핍과 사소함이 오히려 아늑하고 친근하다.
<정처 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 -194쪽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북에는 개인의 밀실이 없고 남에는 공동의 광장이 없다"는 겨레의 비극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밀실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함께 노는 일의 신명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고, 그 신명을 받아줄 광장은 아직 없다. 지금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는 광장이 아니라, 광장을 그리워하는 염원일 뿐이다.
<서울에 광장을>-204쪽

노조원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종교의 신성은 더럽혀지지 않는다. 노조원을 내보낸다면 종교의 신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애초에 노조원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의 종교의 신성이란 공허하게 들린다. 종교는 세속사회 속의 종교라야 마땅할 것이다.
<명동성당과 조계사>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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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절판


제리 루빈은 1960년대 후반 68운동을 주도한 미국 SDS 지도자였다. 그에 따르면 혁명은 재미있어야 한다. "웃음은 우리의 정치적 깃발"이라는 멋있는 말도 남겼다.
'상상력이 권력을 인수한다' -136쪽

고경태 기자가 고등학교 교지반 학생들에게 한 글쓰기 10계명...
1) 글이란 현실의 편집이다. 글이란 생각의 편집이다.
2) 글짓기가 아닌 글쓰기를 하라
3) 멋있는 문장보다 사실적인 문장을, 추상적인 문장보다 구체적인 문장을
4) 주장하려 하지 마라. 친구와 대화하듯이 써라
5) 글 쓰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왜! 누구를 위해 쓰는가
6) 문장을 짧게 써라. 길게 쓸수록 지루해진다.
7) 글 쓰는 일을 신비화하지 마라
8) 공상을 하되, 취재도 하라
9) 좋은 문자을 많이 섭취하라
10) 첫 문장이 글의 맛을 가름할 수도 있다. -250쪽

"접속사는 되도록 쓰지 말고 건조한 문장을 쓰라"
"글을 쓴 뒤 똑같은 단어와 표현이 없는지 여러 번 읽는다"
"단 한 번도 같은 글 안에 두 개의 단어가 반복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264쪽

나는 접속사를 쓰지 앟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못 써요. '그러나'를 ㅆ는 것은 무지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를 쓰기 위해서는 앞에서 전개한 사유를 번복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러나'를 쓰면 안 되죠. 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그러나'가 똑바로 쓰이는 경우라는 것을 나는 잘 보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앞에서 전개한 사유를 반복하는 새로운 사유가 뒤에 나오지 않는데 '그러나'를 쓰니까, 이런 것을 쓰면 안 되는 데 왜 쓰나 싶어요. 그러니 '그러나'를 쓴다는 게 나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요. 그것이 무서워서 안 쓰는 거예요. 사유의 번복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런 놈들이 왜 '그러나'를 쓰냔 말이에요. -264쪽

엉덩이 비비고 앉아 무작정 쓰다 보면 못 쓸 글은 없다-272쪽

편집, 글쓰기, 기획, 이 세가지는 편집자의 능력을 구성하는 '트라이앵글'이다-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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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04614.html
 

한겨레 서평에서 퍼왔다. 
  

지적으로 살고 싶은데 너무 바쁘다고?

‘많이’ 읽고 알고 배우기보다
‘꼭 필요한 것’ 골라 끝장을 보라
현대인들을 위한 지적 노하우



〈지적 즐거움〉
P.G.해머튼 지음·박해순 외 옮김/베이직북스·1만8000원


가끔 “머리는 모자 쓰라고 뒀냐”는 핀잔을 듣긴 하지만, 지적인 생활을 이어가고픈 열망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다만 숨가쁜 하루 일과 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다반사로 겪는 현대인에게, 지적 생활의 매혹은 차라리 가련한 소망이다. 현실과 욕망이 엇갈리는 이 지점에서, 150여년 전 영국에서 날아온 편지 뭉치를 풀어보자. <지적 즐거움>은 예술평론가 겸 작가인 P.G. 해머튼이, “삶에 지친 지적 노동자에게 보내는” 글모음이다. 지적 노동자라 하면 예술가나 작가, 학자 등을 언뜻 떠올리지만, 지은이는 지적 생활의 범주를 이들에게 한정짓지 않는다. 지은이에게 지적인 생활이란 특별한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매하고 순수한 진리를 열렬히 추구해가는 것이다. 결국, 얼마나 학식이 높은가의 문제가 아닌,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가는 과정이 지적 생활의 본질인 셈이다. 지은이는 “지적 생활은 마음 깊이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확신” 아래, 지적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데 필요한 육체적·정신적 기반과, 시간 활용법, 돈의 효용까지 다양한 조언을 편지글 형태로 모아냈다.

지은이에 따르면, 지적인 생활은 몸의 움직임에 의해 완벽하게 좌우된다. 두뇌를 최대한 좋은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자기 생활을 이끌고 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칸트처럼 매일 5시에 일어나 밤 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 잔의 차와 한 대의 담배로 매 끼니를 때울 것인지, 괴테처럼 오후 2시에 푸딩과 과자, 케이크를 양껏 먹고 하루 두세 병의 와인을 들이켤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다만, 규칙을 세웠다면 가능한 정해진 패턴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특히 독서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겐, 주어진 업무를 연구라고 치고, 나머지 시간에 무언가를 배우면 된다고 조언한다. 다만 시간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이 관건이다.

‘공평무사한 정신’은 지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교묘하게 논점을 바꾸거나 반대편의 논의를 부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은 지성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매우 부족한 덕목인 탓에,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각오가 필수적이다.



 

» 〈지적 즐거움〉
 
지은이는 “가능한 많은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는 반기를 들며, ‘박학다식’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무턱대고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되면 조미료 하나로 요리 전체의 맛이 달라져 버리는 것처럼, 지성 전체의 구조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지식 탐구는 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지적인 생활에서 기억력은 얼마나 중요할까. 책을 덮고 나면 내용은커녕 제목도 가물가물한 ‘가련한 기억력’의 소유자에겐, 위로가 아닌 축복의 편지를 보낸다.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진실로 소중한 기억력의 은혜를 입고 있다”며 “기억이 지닌 거부력을 존중하라”고 다독인다.

시간에 쫓겨 늘 허둥지둥댄다면, 되레 책에 대한 강박을 버릴 때 지적인 생활을 만들어갈 수 있다. 사실 읽으려고 마음먹은 몇 권의 책 중엔 실제 중요하지 않은 책이 끼어 있게 마련이다. 독서의 기술은 가장 중요한 핵심을 파악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건너뛰고 읽는 것이다. 다만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실행하겠다고 결심했다면, 반드시 ‘끝장’을 보겠다는 굳은 의지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여성의 지적능력이 떨어진다”는 류의 묵은 ‘먼지’만 털어낸다면, 19세기 노신사의 애정 어린 편지글은 21세기 현대인이 귀담아들을 만한 삶의 지혜들로 가득하다. “생활은 여름의 산들바람같이 행하라. 여름의 산들바람은 사람에게 때로 고귀한 활력을 주고 때로 완전한 평온함을 준다. 바람이 배의 돛을 펼치고 방앗간의 풍차를 돌리는 것 처럼 …”

진정한 지적 향유와 삶의 즐거움은 내부에서 자연스레 샘솟는 자기만족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가 150여년의 세월을 넘어 공감을 자아낸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출처] 지적 즐거움|작성자 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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