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황석영 전작주의자를 도모하는 모임에서 자퇴이유서를 다시 읽다>

저는 학교에 다니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학교는 부모들과 공모하여 유년기 소년기를 나누어놓고 성년으로 인정할 때까지 보호대상으로 묶어놓겠다는 제도입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래,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일정한 시간을 규율에 묶여서 견디어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법입니다. 규율을 어긴 자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쫓겨나야 합니다.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회는 규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규율을 어기면 학교에서 퇴학당함으로써 더 좋은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누릴 기회를 박탕당할 우려가 있지요.

독감이라도 걸려서 하루나 또는 이틀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빈중거리던 날 우리는 은근히 놀라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이 차가운 아침공기 속에 입김을 하얗게 뿜어대며 종종걸음으로 등교하는 모습을 창 너머로 훔쳐보며 저것이 내 꼴일 텐데, 하며 놀라지요.

정오경에 동네 근처 네거리에라도 나서면 국민학교 꼬마들에서부터 우리 또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거의 남김없이 자취를 감춘 처음 보는 시간과 거리의 풍경에 또 한번 놀랍니다. 아줌마들 노인들 행상들 그리고 시장 상인들만이 어슬렁거리며 오후의 분주할 때를 준비하고 있지요. 말하자면 행세할 만한 사람들은 이 시간에 여기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고 나니까 자기 시간을 스스로 운행할 수가 있었지요. 가령, 책을 읽었어요. 그 내용과 나의 느낌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정리가 되어서 저녁녘에 책장을 닫을 때쯤에는 갖가지 신선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어려서 멱감으로 다니던 여의도의 빈 풀밭에 나가 거닐었지요. 강아지풀, 부들, 갈대, 나리꽃, 제비꽃, 자운영, 얼레지 같은 풀꽃들이며, 논두렁 밭두렁의 메꽃 무리와, 풀숲에 기적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주황색 원추리 한 송이, 그리고 작은 시냇물 속의 자갈 사이로 헤집고 다니는 생생한 송사리 떼를 보고 눈물이 날 뻔했거든요. 눈썹을 건드리는 바람결의 잔잔한 느낌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구름의 행렬, 햇빛이 지상에 내려앉는 여러 가지 색과 밀도며 빛과 그늘. 그러한 시간은 학교에서 오전 오후 수업 여섯 시간을 앉아 있던 때보다 내 삶을 더욱 충족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이 이런 충족된 시간들이 아니라 제도를 재생산하는 규율의 시간 속에서 영향받고 형성된다는 것에 저는 놀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성장기라니요. 어느 책에 보니까 감옥이나 정신병원은 그러한 기구를 통하여 교정하려고 했던 바로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십년 이상이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던 정신이상자들이 정상적인 환경에 놓인지 불과 몇 달 만에 대부분이 완치되었다지요. 자연스럽게 그냥 놓아두는 것의 힘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저는 월말 학력고사의 피해자가 저 한 사람이 아니리라 믿고 있습니다. 복도에 석차와 점수가 공개되어 붙을 때마다 수치심이나 모욕감은커녕 모두 부질없다는 비웃음이 입가에 떠오르지요. 숫자 몇 개나 부호 또는 단어 몇 마디를 적어나가던 시험지의 빈칸을 기억하고 있거든요. 이것은 적응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훈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장기에 얼마나 잘 순응하는가에 따라서 직업의 적성이 결정되고 어느 등급의 학교를 어느 때까지 다녔는가에 따라 사회적 힘이 결정되겠지요. 이러한 위계질서가 권력과 재산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고등수학을 배우는 대신 일상생활에서의 셈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주입해주는 지식 대신에 창조적인 가치를 터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인식은 통일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며 이것저것으로 나눌 수 없다고 하던데요, 자유로운 독서와 학습 가운데서 창의성이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결국 학교교육은 모든 창의적 지성 대신에 획일적인 체제 내 인간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모두가 신사의 직업을 우리들 앞에 미끼로 내세우지만 빵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가 되는 길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독 짓는 이는, 목수는, 정원사는, 또는 아무 일도 택하지 않는 것은. 피아노 배우기에서 여러 단계의 기계적인 손동작을 강조하는 교본들 대신에 예를 들면 처음부터 직접 '등대지기'라든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같은 노래를 연습하면 안 되는 것인지. 굳어져버린 코 큰 외국인의 석고상을 그리기보다는 학급 친구나 아우의 얼굴 또는 늙으신 고향의 할머니를 그리면 안 되는 것인지. 이것들은 제도 안의 최소한의 변화인데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선택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누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자퇴 이유입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여러 가지 좋은 영향을 주셨고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이야기 속 준의 자퇴 이유서가 마치 최후 변론처럼 들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 경제 위기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 부키 / 1997년 11월
장바구니담기


경제학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비판적인 사회학자의 말대로 인간을, 단순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12쪽

당초에 나(폴 크루그먼)는 이 책을 어느 정도 당파적인 입장에서 써야겠다고 구상하였다.... 심오한 경제사상과 전매 특허 상표를 붙인 경제적 비방(秘方) 사이에, 교수와 정책 기획가 사이에 침범하면 안 될 파울 라인을 설정하는 일이 좌파와 우파 사이를 구분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14쪽

개별적인 기업과 가계의 합리적인 행위가 쌓여 어떻게 경기 후퇴라고 하는 비극으로 창출되는가 하는 데 대한 케인즈 학파의 설명은 무서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띠고 있다. -15쪽

"마법의 경제(magic economy)" 미국의 언론인 Tom Wolfe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 세대에 걸친 미국 경제를 이렇게 말하였다. 그 30년 동안 표준 노동자의 실질 수입이나 표준 가계의 실질 소득, 자본 당 소비 규모가 두 배로 되었다. (그러나 1973년에 그 마법은 사라져 버렸다-에너지 위기oil shock와 스태그플레이션)-17쪽

왜 미국 경제에서 마법이 사라져 버렸는가? 궁극적인 해답은 모른다는 것. 문제는 "모른다"는 말이 그리 고무적인 답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19쪽

"경제학자"란 경제 문제에 관해 정기적으로 생각하고 글 쓰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지는 않다. 사실상 이 류(類genus) 개념에는 대학 교수와 정책 기획가라고 하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두 종(種species)이 속해 있다-22쪽

정치가들이 교수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의사 소통이 안 되어서가 아니다. 다만 정치가들이, 각별히 다른 정치가들로부터 권력을 쟁취하고자 할 때, 듣고자 하는 바를 들을 수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정책 기획자들이 그 간격을 메우려고 나섰다. -25쪽

정책 기획가 : 교수도 정치가도 아닌 새로운 계측의 일원으로서, 사상과 정책의 상호 작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다온 사람들.
정책 기획가인가 아닌가를 구분 짓는 것은 출신 경력이 아니라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말로 강연하느냐 하는 점이다.
- 교수들은 대개 다른 교수들을 위해 글을 쓴다.
- 정책 기획가는 오로지 일반 독자만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한다. -26쪽

경제적 사실이나 기존의 경제 이론에 두루 해박하지 않다면 정책 기획가가 되는 것이 가장 쉬울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바를 정말로 진지하게 말해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좌파든 우파든 대부분의 영향력 있는 경제 정책 기획가들은 전문 분야로서 경제학보다는 저널리즘이나 법학에 토대를 두게된다-28쪽

(폴 크루그먼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를 대표적인 정책 기획가로 들었다. 물론 교수이지만)
갤브레이스는 하버드 경제학 교수이기는 하지만, 하계 동료들은 그를 '매스컴 명사(media personality)' 정도로 여겨서 한 번도 그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다. -29쪽

갤브레이스는 정치와 경제학의 관계에 중요한 새 장을 열었다. 그는 최초의 경제학자 출신 명사(celebrity; 유명해져서 유명한 인물)였다. -30쪽

정치가들이 진정으로 정책 기획가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대중적 마법이 절실히 필요하였던 때, 바야흐로 19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3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일이 3 - 평화시장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태일 평전]에서 [태일이]로 돌아왔다. 빨리 제4권이 나왔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일이 1 - 어린 시절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 놀러온 손님들이 책장에 꽂히 책을 뒤적 거리다 손이 가는 책이다.

우선 만화라서?

그러다가 앉아서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읽어 준다.

'대체 이 사람들은 왜 놀러왔어?'

80년대 [전태일 평전]에서 2008년 [태일이]로 다가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태지 8집 - Atomos Part Moai [1st Single]
서태지 노래 / 예당엔터테인먼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더 소프트하게 더 달콤하게 지저귀는 서태지.

예전에 강함이 이젠 소프트함으로 다가왔다.

Moai remix를 빼면 세 곡인데...

아깝냐구?

Neve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