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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SE - 아웃케이스 없음
존 카니 감독, 글렌 한사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한 남자. 한 여자가 그의 노래에 다가간다. 그렇게 그들은 만난다.
두 사람 모두 아직 과거가 되지 않은 사랑을, 혹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감정들과는 별개로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처음,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음악에 겨우 10센트로 환호해주는 여자. 남자로서는 여자의 삶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이다. 낯선 나라에 와서 하루 종일 걸어봐야 몇 푼 되지 않는 돈벌이로 생활을 꾸려가는 그녀이지만 그녀에게는 남자의 음악을 알아볼 만큼의 재능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했을 때 망설이지 않는 용기가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먼저 그에게 다가간다.
여자는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물음으로써 남자가 굳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과거까지 털어놓게 만든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고 벽을 세우던 남자도 어느새 마음을 열고 여자의 순수함에 동요되는 듯하다. 하지만 순간, 그가 실수를 범하고 만다. 그러한 남자의 실수에 상투적인 반응이 이어졌다면 이 영화도 흔히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여자 또한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므로(아님, 나의 착갈일지도...).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복잡하지 않은 서사가, 과장되지 않고 소박한 이야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음악과 섞인다. 음악에도 이야기와 감정이 담기므로 서사가 복잡하지 않은 것은 득이 된다.
남자에게서 미완성인 곡이 담긴 cd와 cd 플레이어를 받은 여자가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노랫말을 붙이던 중 망할 놈의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다. 여기저기 뒤지다 딸아이의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며 "나중에 돌려줄게"라고 말하는 여자. 배터리를 사서 cd 플레이어를 다시 작동시킨 다음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여자. 그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이 치고 올라와 눈물이 흘렀다. 여자의 처지가 슬퍼 보인 것은 아니다. 그녀의 노래가 아름다웠기 때문이고, 처지와 상관없이 그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감정이 그랬든 그렇지 않았든 결국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역시 처음에 가볍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녀를 두고 런던에 가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을 만큼, 그리고 어려운 살림에 덜컥 피아노를 사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다시 돌아온 남편 곁에서 피아노를 치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오랫동안 가슴에서 지우지 못했던 옛 연인을 찾아가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그것으로 아름답다.
그들의 감정이 순간의 흔들림일 뿐 사랑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옛 연인에게 돌아가 그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게 된다 해도, 다시 만난 남편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해도,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그들의 삶의 한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것은 분명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별것이기도 하고 별것 아니기도 하다. 두 사람에게 사랑은 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느끼는 시간이 그저 행복할 만큼 별것이었고, 가슴 한 구석에 간직하고 각자의 끝나지 않은 현재로 담담하게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별것 아니었다(별것 아니라는 말의 어감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사랑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