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운동 - 21세기의 대안
존스턴 버챌 지음, 장종익 옮김 / 들녘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http://nadle.tistory.com/65  

<21세기의 대안 협동조합운동>, 존스턴 버챌 지음, 장종익 옮김, 들녘출판사, 2003.

협동조합이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눠진 세상이 아니라, 통합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서점에 갔다. 협동조합 관련 책을 검색했다. 마땅한 책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협동조합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는 듯이 보인 '21세기의 대안 협동조합운동'이란 책을 샀다.

지은이는 존스턴 버챌(Johnston Birchall), 영국협동조합연구협회의 기관지 Journal of Co-operative studies 편집담당자라고 한다. 옮긴이는 장종익, 한국협동조합연구소(http://www.coops.or.kr/)를 설립했다고 한다.

책 내용은 협동조합 관련 법, 협동조합 설립 시 주의사항, 문제점, 협동조합의 개념 등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 책은 주로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이는 책 차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1.협동조합운동의 기원
2.협동조합의 국제연맹
3.유럽의 협동조합
4.아프리카의 협동조합
5.아시아와 환태평양 지역의 협동조합
6. 아메리카의 협동조합
7. 윤리적 경제를 향하여 : 협동조합의 길

차례를 보고도 책을 산 이유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는 협동조합운동의 실질적 창시자로 '로치데일의 선구자들'을 지목했다. 그들이 세운 원칙이 지금 세계의 협동조합의 원칙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민주적 관리. 출자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는다.
2. 개방된 조합원 제도. 소액의 출자금을 납입하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3. 출자금에 대한 고정되고 한정된 지급. 투자금에 대하여 필요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4. 이용고에 따른 잉여의 배당제.
5. 현금 거래의 원칙.
6. 정직한 상품만을 공급한다는 원칙. 소비자가 소유한 협동조합에서만 용이한 것.
(예) 조합 소유의 제분공장에서 소맥분을 생산하기 때문에 소맥분을 표백하기 위한 첨가물을 섞지 않았다. 그러자 조합원은 그 소맥분의 구매를 중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합원들도 진짜 소맥분이기 때문에 하얗지 않다는 점을 이해했고, 그 뒤부터는 다시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7. 교육의 촉진.
8. 정치적, 종교적 중립의 원칙.

로치데일의 경우 소비자협동조합의 성격이 강했다. 이때 협동조합 운동은 여러 분야로 각국에서 발전했으며, 노동자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이 나타났다고 한다.

각 대륙 별로 협동조합들의 발전사를 살펴보고, 현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이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 상황이 아주 밝지만은 않았다. 협동조합이 발전하다가, 조직이 커짐에 따라 나타나는 관료제현상, 기업 혁신의 부족에 따른 경쟁력 약화 등 여러 요인으로 사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시장점유율이 낮아진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자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옮겨 적어본다.

"협동조합은 최선의 경우에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 소유기업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지적함으로써 사회에 비판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협동조합은 사업, 개인적 도덕성,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정치적 참여가 교차하는 최첨단의 장이며, 특정 이데올로기에 지배될 수 없다. 협동조합은 사회의 모든 병폐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해결의 한 부분을 맡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서로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다. 때때로 협동조합은 다른 형태의 기업과는 실제로 차이가 있는 대안적인 사업 방법이라는 점을 단순히 보여준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미치는 영향은 이에 한정되지 않고 많은 개입요소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협동조합 운동가들은 그 결과에 대하여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결과를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전자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지구적 차원의 거대한 문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완벽한 해결방안이 있다는 생각은 포기해야만 한다. 우리는 진보에 대한 19세기의 패러다임은 그 당시의 패러다임이며, 사실상 세상일을 보다 잘 해결허가너 더 악화시키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점을 지금 깨닫고 있다. 우리가 20세기에 사고를 지배하는 위대한 이데올로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새롭고 보다 유연한 현실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협동조합의 잠재력에 대하여 깊이, 그리고 주의 깊게 생각해야만 한다. 불교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위의 책, 345-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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