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좀머 씨를 지켜본 세 번의 경험

4가지 의문

사람들한테 '이해받기'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좀머 씨를 지켜본 세 번의 경험


제목처럼 좀머 씨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화자인 '나'가 직접 좀머 씨를 지켜본 경우는 딱 세 번이었다.

첫 번째는 날씨가 몹시 좋지 않은 날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아저씨를 만난 때였다. 아버지는
"그러다가 죽겠어요!"
라고 외치며 차에 타라고 했다. 이에 아저씨는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은 아저씨를 뺀 다른 사람에게는 모순적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타라는 뜻이었는데, 죽지 않기 위해 타지 않겠으니 놔두라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좀머씨를 자기들 마음대로 보기 시작했다. 폐쇄공포증이니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느니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다.

이 모순적인 대답의 진실은 두 번째 만남에서 밝혀진다. 화자인 '나'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자살을 하려던 순간 좀머 아저씨를 봤다. 좀머 아저씨는 나무 밑에서 쉬는 데 끊임없이 고통에 신음소리를 냈다. 누워서 쉴 수조차 없었다. 죽음을 피해서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걸어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였다.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말처럼 그를 놔두어야만 그는 살 수 있었다.

5, 6년 쯤 지난 뒤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좀머 씨를 봤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좀머 씨. '나'는 좀머 씨 말처럼 좀머 씨를 살리려고 하지 않고 그냥 놔둔 채 지켜만 봤다. 아저씨는 그렇게 몇 해 동안 피해오던 죽음을 스스로 맞이했다.

4가지 의문

이야기를 다 읽고나서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좀머 씨 이야기지만 좀머 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답답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의문은 '좀머 씨, 왜 그는 죽기로 결심했을까?'였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애쓰던 그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나였다. 두 번째 의문은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짝사랑 이야기는 왜 한 걸까?'였다. 짝사랑 이야기를 빼도 전체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럼에도 짝사랑 이야기를 한 까닭은 무엇인지 속 시원히 알기 힘들었다. 분명한 것은 이 이야기를 기점으로 이야기가 급격히 전환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의문은 "그러다가 죽겠어요"란 표현의 의미였다. 마지막 의문은 '왜 '나'가 자살을 포기했냐'였다.

좀머 씨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스스로 죽기로 결심한 것일까. 끝까지 걸어가면서 삶을 마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기를 꺼렸던 것일까. 그렇게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걸었던 사람의 자살을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던 사람이,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다니.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을 사람들처럼 여러가지 추측을 해보게 되었다. 난 정말 그에게 관심이 있어서 자살한 이유를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화자인 나처럼 그저 좀머 씨의 선택을 인정하고 지켜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짝사랑 이야기는 좀머 씨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였다. 소외된 사람이 좀머 씨가 아니라 '나'라는 점만 차이가 있었을 뿐. '나'가 짝사랑하는 카롤리나에게 '나'는 어떤 이름 없는 단지 '얘'였다. 카롤리나에게 '나'는 만날 아랫마을에 혼자 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연히 아랫마을에 갈 일이 생겨서 같이 가려고 했을 뿐 카롤리나에게 '나'란 존재는 크게 의미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는 카롤리나가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단지 '얘'라고 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좀머 씨의 전체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좀머 씨라고 부르는 것과 같았다. '나'는 카롤리나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다.

아버지가 틀에 박힌 빈말이라고 강조하던 말이 바로 "그러다가 죽겠어요."였다. 그 까닭은 사람들은 사실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관심 있는 척하기 때문이었다.
"그 말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실제로 그렇단다!"(36쪽)
정말 아버지 말처럼 아버지도 마을 사람들도 좀머 씨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가 있을 때는 그의 병명을 자기들 멋대로 지었고, 그가 죽은 뒤에는 그저 "완전히 돌아버렸겠지."하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매정한 세상에 복수하려고 자살을 결심하려던 순간 좀머 씨를 보고 자살을 포기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좀머 씨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진실을 모른 채 자기들 멋대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처럼 생각한다면 정작 일찌감치 자살해야할 사람은 좀머 씨였다. 하지만 그는 살려고 했다. 살려고 끊임없이 걸었다. 그런 그에 비해 '나'의 자살 동기는 표면적으로는 '꼬딱지' 때문이었다. 정말 자살은 '웃기는 짓'이란 데에 생각이 미친 나는 자살을 포기했다.

사람들한테 '이해받기'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도 어려움

'좀머 씨, 왜 그는 죽기로 결심했을까?'
'짝사랑 이야기는 왜 한 걸까?'
"그러다가 죽겠어요"의 뜻은 뭘까?
'왜 '나'가 자살을 포기했냐'

내가 가진 4가지 의문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한테 이해받을 수 있는가'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좀머 씨의 죽음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였고, 짝사랑 이야기는 '나'의 애정과 관심이 카롤리나에게 이해받지 못한 경우였고, '그러다가 죽겠어요'란 말은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상투성을 보여주며, '나'의 자살 포기는 자살로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이해를 바랄 수 없음을 말해준다.

사실 '다른 사람들한테 이해받을 수 있는가'란 문제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란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문제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나한테는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전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분만. 일부분 밖에 모르면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머 씨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 관심도 없었으면서 그렇게 많은 말들을 사람들은 왜 했을까. 따뜻한 관심도 아니었고 그저 자신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 사람을 비웃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따뜻하지 않은 관심보다는 그저 자신을 놔두기를 바란 좀머 씨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나'가 자살했다면 그 누가 '나'의 자살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다른 원인이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자살의 결정적인 외적인 원인은 피아노 선생님의 '코딱지'때문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특히 피아노 선생님한테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이었다. 죽음으로써 세상에 복수하려고 했지만 '나'가 죽었다면 이해받기 보다는 차가운 동정을 얻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나'의 죽음이 좀머 씨의 죽음처럼 그저 하루동안 안주거리 정도의 이야기거리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해를 바라며 살때 허무함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이해를 받으면 좋겠지만 모두 이해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란 문제는 관계의 진실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실하지 않은 관심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만 준다. 좀머 씨가 있을 때도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의 반응과 관심은 진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따뜻할 수 없었다. '나'처럼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좀머 씨의 삶을 인정해주고 지켜준 느낌이 들었다. 좀머 씨가 '나'가 자살 뒤를 상상한 것처럼 자기가 죽은 뒤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아프지 않았을까. 카롤리나와 '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카롤리나가 '나'와 맺는 관계의 일회성과 상투성은 '나'에게는 평생 상처로 남지 않았을까.

이야기 전체를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거 같다. '이해받기'에서 한 문장, '이해하기'에서 한 문장.

'이해받기'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며 살기보다는 자기 삶을 살아가기
'이해하기'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해한만큼만 다가서기


읽은 책 :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유혜자, 1996년, 열린책들  

 
2007/02/18 19:06 http://blog.hani.co.kr/noriteo/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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