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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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신화란?

연금술사를 읽는 내내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가 바로 이 '자아의 신화'였다. 자아의 신화란 '항상 자신이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것'을 뜻했다. 책의 주제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라'
였다. 누구는 안 떠나고 싶어서 안 떠나나.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47쪽)

팝곤 장수의 이야기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까. 자기가 바라는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이룰 수 있는 '자아의 신화'임에도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팝콘 장수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러자 노인은 광장 한구석, 빨간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팝콘 장수를 가리켰다.
“저 사람도 어릴 때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 하지만 팝콘 손수레를 하나 사서 몇 년 동안은 돈을 버는 게 좋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야. 좀더 나이가 들면 한 달 정도 아프리카를 여행하게 되겠지. 어리석게도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한 거야.”
“저 사람은 차라리 양치기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어요.”

산티아고가 소리 높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사람도 그 생각을 했었다네. 하지만 팝콘 장수가 양치기보다 남보기 근사하다고 생각한 거지.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 아래 잠들 수 있잖아. 또 사람들도 딸을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와 결혼시키려 하지.”
..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48쪽)

행복의 비밀은 무엇일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좀더 나이가 들면",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그때", "돈이 생기면 그때"
그 사람들에게 그때는 언제쯤 올까. 평생이 지나도 오지 않을 거 같다. 안정된 생활을 하지만 정작 그들이 행복할까. 뭔가 빠진 듯하다. 행복의 비밀은 무엇일까.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네. 그 젊은이는 사십 일 동안 사막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지. 그곳 저택에는 젊은이가 찾는 현자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현자의 저택, 큼직한 거실에서는 아주 정신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 장사꾼들이 들락거리고, 한쪽 구성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그득 차려져 있더란 말일세.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까지 있었지. 현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마침내 젊은이의 차례가 되었어.

현자는 젊은이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사긴 후에 다시 오라고 했지. 그리고는 덧붙였어.
‘그런데 그 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넸다네.
‘이곳에서 걸어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두 시간 후에 그는 다시 현자 앞으로 돌아왔지.
‘자 어디.......’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었다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네. 당연한 일이었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오.’
이제 젊은이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지.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 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네. 다시 현자를 찾은 젊은이는 자기가 본 것들을 자세히 설명했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네. 그제서야 숟가락을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현자 중의 현자는 말했지.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60쪽부터)

그들에게는 숟가락 속 두방울이 빠진 것이다. 두방울이 뜻하는 것은 자아의 신화가 아닐까. 자기가 삶 속에서 소중히 지켜가야할 것, 잊지말아야 할 것.

익숙한대로 그저 꿈만 꾸며 살아가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게 쉬운가. 지금 익숙한대로 그저 꿈으로 간직하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주인공 산티아고가 만난 크리스털 가게 주인처럼.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자네는 양이나 피라미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그걸 실현하길 원하지. 그런 점에서 자넨 나와 달라. 나는 오직 메카만을 꿈으로 간직하고 싶어. 마음 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사막을 가로질러 성스러운 반석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고, 율법에 따라 그 바위를 만지기 전에 광장을 일곱 바퀴 돌고 있는 나 자신을 눈앞에 그려보았지.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94쪽)

“다시 말하지만 난 내 삶에 무척 익숙해져 있네. 자네가 오기 전에 나는 내 친구들이 파산도 하고 가게를 키우기도 하며 변화하는 동안 그저 같은 장소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항상 우울했지. 그러나 지금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지금의 이 가게가 내가 바라던 꼭 그만큼의 가게라는 걸 알게 된 거지. 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달라지고 싶지도 않네. 난 지금 이대로의 내 상황이 만족스러워.”(98쪽)

주인은 정말 만족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에게 '만족해야만 한다'고 최면을 거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 때문에. 산티아고는 어느 정도 돈을 번 뒤에 떠났다. 가게 주인처럼 꿈을 그저 꿈으로 놔두지 않고.
표지는 어디에 있는가?

자아의 신화를 좇는 사람한테는 표지가 보인다고 한다. 표지. 아무리 둘러봐도 내게 보이지 않는데. 표지를 두고도 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산티아고가 여행 중 만난 영국인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삶의 모든 것이 다 표지야."(119쪽)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첫 단계

연금술의 첫 번째 단계이자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첫 번째 단계. 그것은?

“이것이 작업의 첫 번째 단계야. 불순물이 섞인 유황을 분리해내야 하지.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말로 이제껏 ‘위대한 업’을 시도해보려던 내 의지를 꺾었던 주범이지. 이미 십 년 전에 시작할 수 있었을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난 이 일을 위해 이십년을 기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166쪽)

“이방인이 낯선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아의 신화를 찾으러 왔습니다. 당신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어떤 것을 찾아서.”
기사는 칼을 칼집에 꽂았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매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청년은 마음이 놓였다.
“그대의 용기를 시험해 본 것이네.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183쪽)

"자아의 신화를 사는 자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230쪽)

용기를 갖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우리들에게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지 않는가.

정작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겪지 않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팝콘 장수가 양치기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양치기가 되었을 때 겪게 될 고통과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고통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212쪽)

사랑 VS 자아의 신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용기를 갖고 한걸음씩 자아의 신화를 좇아가던 산티아고. 그에게도 가장 큰 고비가 찾아온다. 사랑을 좇을 것인가 자아의 신화를 좇을 것인가 고뇌할 때였다.

"사 년째 되는 해, 표지들은 그대를 떠날 것이네. 그대가 들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부족장들은 그걸 알아차리고 그대에게서 고문의 자리를 빼앗아갈 걸세. 그때쯤 그대는 아주 부유한 상인이 되어 있겠지. 하지만 그대는 밤이면 사막의 야자나무 숲을 서성거리며 번민하게 될 걸세. 자아의 신화를 이루지 못했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으며 말이지.
명심하게.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197쪽)

사랑과 자아의 신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을 가로막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가족의 기대와 사랑이었다.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고. 내 자아의 신화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할 수 없다고.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사람을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산티아고의 연인 파티마처럼. 믿고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산티아고가 파티마에게 미안해하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려고 할 때 파티마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 뿐, 사랑에 이유는 없어요.” (200쪽)

결국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였던 보물을 찾고 파티마에게 돌아간다. 얼마나 행복할까. 피라미트 밑에 가서 땅을 파다가 도적을 만나 돈을 빼앗기는 장면은 재미있었다. 도적이 비웃으며 자기도 보물 찾는 꿈을 자주 꾸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바로 표지였고 도적이 말한 그곳에 보물이 있었다는 결말. 반전이 산뜻했다.

진정한 연금술사란 누구일까?

왜 이야기의 제목은 연금술사였을까. 연금술사는 납, 구리 따위의 비금속으로 금, 은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진정한 연금술사란 누구일까.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스승의 대답이었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 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271쪽)

진정한 '삶의' 연금술사란 연금술의 비밀인 용기를 갖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자아의 신화'를 발견하고 이루어낸 사람들이 아닐까.

이제 나도 다 알았다. 삶의 연금술의 모든 것을. 연금술사가 되는 길만 남았는데 아직도 두렵다. 스승이 했던 연금술사의 두 번째 부류가 되지는 말아야할텐데.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2007/01/16 18:22 http://blog.hani.co.kr/noriteo/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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