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정 - 나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래, 알아. 죽이는 거 나쁜 거야. 그래서 못 했어. 그럴 용기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어. ...... 그런데 만약 내가 그랬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 자식은 인간쓰레기니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식 목을 매달아놓으면, 그건 살인이고, 그렇게 살인한 나를 데려다, 살인자라고 목을 매달면 그건 정의인가?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하고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데, 그래 오빠 말대로 하나는 살인이 되고, 하나는 집행이 되고, 하나는 살인자가 되어 그 죄값으로 죽고, 하나는 승진을 하는 거...... 그게 정의인가?"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35쪽에서)

정서적 사망자인 유정과 살인자 윤수의 대비

소설은 정서적 사망자와 살인자의 만남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정서를 죽인 정서적 살인자와 다른 사람의 몸을 죽인 신체적 살인자를 대비시킨다. 질문한다. 신체적 살인자를 죽이는 일은 정당한가? 정서적 살인자는 힘이 있어 아무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데도. 신체적 살인자의 처벌에 관심 갖는 만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살인자와 정서적 피해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아야하지 않을까.

정서적 사망자 유정. 유정은 성폭행을 당한 뒤에 죽었다. 몸은 살았지만 정신은 죽은 상태였다. 그 사건 이후로 유정 한 사람의 삶이 파괴되었다. 그런 그에게 사촌오빠는 살인자였다. 하지만 이 살인자는 죄도 뉘우치지 않고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다. 죄를 치르게 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촌 오빠를 증오하며 자신의 망가진 삶을 증오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살인자 윤수. 아내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서 절도를 계획했다. 윤수에게는 아내를 살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일이 꼬여 우발적으로 파출부 아주머니를 살인했다. 공범 선배의 강간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누가봐도 죽어야 마땅한 사람일까.

정서적 살인자 유정의 사촌 오빠. 그의 아버지는 여당 국회의원이었다. 부족함 없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정을 성폭행했다. 사건은 묻혀버리고 아무 죄의식 없이 살아간다. 그 누구도 그를 살인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서적 살인을 묵인하는 유정의 어머니. 사촌 오빠가 저지른 사건을 유정에게 들었음에도 도리어 유정을 탓한다. 유정을 두번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서적 살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듯했다.

유정은 여자다. 유명 가수였고 대학교수지만 그도 여자란 부분에서 사회적 약자였다. 윤수. 고아다. 그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였다. 소설의 중심축은 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약자인 이 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곳이 없었다. 들어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정이 유일하게 믿었던 어머니마저 유정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나. 살인자인 윤수. 죽어마땅하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윤수의 삶을 이해할 시도조차 막게 만들지 않았을까.

두 약자, 진짜 이야기를 나누다

두 약자가 만난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를 나눈다.(이 소설을 읽고 '진짜 이야기'란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 당연하고 지당한 이야기 같은 거 하지 않고 싶어요. 시간이 없잖아요. 나는 이왕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거. 당신하고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198쪽)

"...... 나는 또 교수인데 프랑스에서 그지같은 학교, 돈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학교 졸업했어요. 학교에 가면 다른 교수들이 저런 여자가 어떻게 교수가 되었나 하는 눈으로 저를 쳐다봐요. (중략) 지난 번에는 음주운저능로 경찰서에 갔었는데 경찰들이 저를 보고 또라이 아냐, 했어요. 그건 틀려요...... 저는 꼴통이거든요." (199-200쪽) (난 이 부분에서 웃었다. 윤수처럼)

"강, 간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큰집에 심부름을 갔다가였죠. 그때 그 사촌오빠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아이까지 둔 가장이었죠."(201쪽)

정말 진짜 이야기였다. 진짜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둘다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서로 진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치유한다.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유정의 고통도 윤수를 만나며 치유된다. 유정에게 윤수와의 만남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되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는 시간. 이는 윤수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진짜 이야기의 힘, 사랑과 용서

윤수의 마지막 블루노트를 다시 읽어본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원주교도소에 있는 나의 공범 선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용서하겠다고 당신이 한 일을 내가 한 일처럼 말하고 당신은 변호사를 사서 나를 주범으로 몰았던 것도.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제게 강간살인의 누명을 씌운 경찰도. 세 번의 재판이 진행되던 팔개월 동안 나를 두 번만 찾아왔던 그 국선변호사도. 나를 언제나 벌레처럼. 한 번도 나를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았던 검찰도. 실은 내 살인 행각에 분노하고 있었으면서 실은 자신이 신처럼 객관적인 듯 냉정한 척하던 판사도 모두 용서하겠다고 썼습니다. (중략) 은수를 때리고 은수의 마지막 소원인 애국가를 불러주지 않았던, 아픈 그 아이에게 욕설을 퍼붓고 뛰쳐나갔던 나를, 무고한 세 사람의 살인에 가담했던 나를 용서하겠다고.... 그러고 나니까 비로소 저는 저로 인해 죽었던 그 두 여인과 그 가엾은 소녀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었습니다. 대지에 입을 맞추고 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살인자입니다. 하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구치소에 들어와서 저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고,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존댓말을 쓰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인자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 육체적 생명은 더 연장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 영혼은 언제까지나 구더기 들끓는 시궁창을 해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차마 구더기인 줄 모르고 그것이 차마 시궁창이었는지 모르고...... 저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가져보았습니다. 기다리는 것, 만남을 설레며 준비하는 것, 인간과 인간이 진짜 대화를 나눈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서로 가식 없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 받아본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중략)
이 노트를 문 모니카 수녀님의 조카 분이신 문유정씨게 전해주십시오. 진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번 털어놓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은, 행여 그분이 이로 인해 저에게 실망하실까봐 두려워서였습니다. 실망해서, 또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저를 떠나가실까봐...... 그리고 그분이 이 노트를 거부하시면 한마디만 전해주십시오. 우리가 만나던 그 시간, 우리가 마셨던 인스턴트 커피, 우리가 나누었던 작은 빵, 일주일에 그 몇 시간으로 인해 저는 어떤 모욕도 참아낼 수 있었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었으며,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신께 뉘우치며 참회했다고 말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진정 귀중하고 또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고. 혹여 허락하신다면, 말하고 싶다고...... 당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내 목숨을 다해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내 입으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용서, 진실된 만남,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유정이나 윤수나 처한 상황은 변화가 없었다. 유정의 사촌 오빠는 여전히 뉘우침도 없이 잘 살아가고 있고 윤수도 사형 선고가 무기징역으로 바뀐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변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윤수의 '사랑한다고'란 표현은 윤수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표현한 사랑이었다. 진실된 사랑을 받지 못해 소외된 삶을 살아왔던 윤수에게 사랑을 준 유정에게.

<좀 더 생각해보기>

* 정서적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지 않고 신체적 살인자만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것은 합당한가?
* 성폭행처럼 신체적 폭행으로 정서적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무관심, 애정 없는 말과 행동으로 신체적 폭행이 아닌 정서적 폭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을까?
* 범죄를 개인적인 측면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을까? 범죄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마다 범죄율이 틀리다면 사회에도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지 않을까.

읽은 책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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