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를 수 있는 권리 - 개정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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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발전되고 기계화로 삶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뭐가 편해졌다는 걸까? 노동시간이 여가보다 많고가족들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일과 씨름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 말이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라는데 개인은 왜 점점 더 가난해지는 걸까? 대학등록금과 물가는 점점 오르는데 임금은 왜 그대로일까? 정말 사회가 발전되고, 우리 삶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는 걸까? 


사람을 구한다고 광고를 낸 회사는 어째서 노동력을 제공하고자 연락하는 구직자들보다 더 당당한 걸까? 과연 우리는 일한 만큼 돈을 받고 대우를 받는 걸까? 내 노동력을 원하는 회사에 나가 일하면서 당당하기는커녕 부당한 대우도 참아가며 그것도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정말이지 참고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온다는 어른들의 말은 이제 짜증이 난다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은커녕 당신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 일할 기회를 줬으니 그걸로 금전적인 보상을 눙치자는 열정페이가 판치는 세상에서 노동은 인간파괴의 도구만 여겨진다그래서 더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구원처럼 다가온다


폴 라파르그는  “노동은 신성하지 않다.”며 “노동자들이 경제학자들의 헛소리를 믿고 노동이라는 괴물에 몸과 마음을 바치면서 산업사회의 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100년도 전에 주장했다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기이한 환몽에 사로잡혀 있다이러한 망상이  개인과 사회에 온갖 재난을 불러 일으켜지난 2세기 동안 인류는 크나큰 고통을 겪어왔다다름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랑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이 바로 이러한 환상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이러한 열정이 어찌나 격렬한지 한 개인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생명력까지 소진한 지경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프롤레타리아는 노동할 권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일해서 갖다 바친 잉여노동이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줄도 모른다자본은 왜 굳이 6개월 만에 무려 1년치의 노동을 한꺼번에 집어삼키려 하는 것일까왜 그들은 차라리 노동을 1년 내내 골고루 평준화해 하루에 대여섯시간씩 노동자들에게 할당하지 않고 6개월 동안 하루 12시간씩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일까.”

 

기계가 더 완벽해지면 질수록 그리고 이 기계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람의 산 노동을 더 많이 쫓아내면 낼수록 노동자들은 그만큼 더 많은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기는 커녕 마치 기계와 경쟁이라도 하듯 그 피와 땀을 몇 배로 더 흘려야 한다저 바보스럽기까지 한 파괴적 경쟁이여!” 

 

이 책을 읽다 보면그동안 노동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게 된다일에 대한 열정이 마치 인간 최고의 미덕인 양 떠들어대는 자본주의의 속삭임에 넘어가 내 열정이, 능력이 부족해서 보상이 적은 거라고 자책하며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채찍만 휘두른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영어에 “Enough is enough.” 란 표현이 있다이제는 라파르그의 말처럼 당당하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외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우리에게 안식하게 하라우리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달라우리는 더 창조적이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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