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118
헨릭 입센 지음, 김창화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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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열린책들, 2010)은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책이다.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는데,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나 힘들 때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진정으로 날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말이다. 《인형의 집》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던, 완벽하다고 믿었던 가정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붕괴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노라, '충분한 수입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은 가정적인 남편 헬메르 그리고 천사 같은 아이들. 어떤 가정이든 마찬가지 아닐까? 문제 하나 없이 완벽한 가정은 없다. 이 가정의 문제는 노라가 남편의 치료비를 위해 아버지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다는 거다. 아픈 남편과 아버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싶었던 노라는 남편 몰래 빌린 돈을 조금씩 갚고 있었다. 하지만 노라가 이 일을 빌리로 남편 직장인 은행직원 닐스에게 협박을 받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불거진다.  결국, 남편이 알게 되고, 서명을 위조했다는 범법행위에 노라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8년 동안 나의 자랑이고 기쁨이던 여자가 위선자에 거짓말쟁이... 더 심각한 건, 범죄자였다니! 당신에게 이렇게 지저분한 면이 있었다니(...) 이런 모든 건 당신 아버지의 경솔한 성격 떄문에... 당신이 그걸 물려 받았어. 종교에 대한 생각도, 도덕에 대한 기준도, 의무감도 없지.(...) 당신은 내 행복을 짓밟았어. 내 미래가 엉망이 되었다고!"  


남편의 반응을 보면, 아내인 노라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보다,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진 게 남편에겐 큰 문제고 중요해 보인다. 논쟁을 벌이면서 노라는 자신이 완벽하게 지키고 싶었던 가정과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노라에겐 그 모든 일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던 터라, 남편의 반응에 더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우린 8년간 함께 결혼 생활을 해왔어요어떻게 당신과 나남편과 아내가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게 오늘이 처음이란 걸 알고 계시나요? (…)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나와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죠아빠와 집에 있을 때아빠는 자기 생각을 나에게 다 말해 주었고그러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곤 했어요하지만 아빠와 다른 생각이 들 땐난 그 생각을 감췄어야 했어요아빠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아빠는 나를 불렀어요내가 인형과 놀듯아빠는 나와 놀아줬죠그러고 나서 난 당신 집으로 온 거예요내말은 난 아빠의 손에서 당신의 손으로 넘겨졌다는 거죠당신은 당신 취향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했어요나도 당신과 같은 취향을 가지거나그런 척했죠뭐가 옳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내 생각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때로는 이렇게때로는 저렇게요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니난 이 집에서 마치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며 살아가는 거지 같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난 당신을 속이면서 살아왔어요토르발하지만 그게 바로 당신이 원했던 거예요당신과 우리 아빠가 날 죄인으로 만든거죠지금 내가 이렇게 무력해진 건 당신들 잘못이예요" 


그러면서 노라는 "나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난 완전히 독립해야" 된다며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나고, 소설은 끝난다. 불행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때문에',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라며 망설이는 여자들을 많이 봤던 터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떠나는 노라의 행동은 놀랍다. 안락한 행복 속 인형이 되기보다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어쩌면 가난할 수도, 고될 수도 있는 자유를 선택한 노라, 그것도 19세기 말 지금으로 100년 전에 말이다. 노라의 행동은 보기에 따라 용기로 또는 무책임함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 또한 노라의 남편이 물은 것처럼 노라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 것 같다. "남편과 아이가 의무가 아니냐"고 말이다. 여기에 노라는 자신에게는 "똑같이 신성한 의무"가 있다며 "나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답한다. 


노라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떠나, 노라의 말에 동의한다. 나 또한 남편과 아이 즉, 가정에 대한 의무만큼 나에 대한 의무 또한 똑같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정에 대한 의무가 마치 나에 대한 의무인 것처럼 가정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여자들을 보면 저게 진짜 아이를 위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불행한 가정이라도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가정을 원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편부모 밑에서라도 행복하게 사는 엄마, 아빠를 원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집을 떠난 후, 노라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집을 떠난 노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떠나온 삶에 만족했을까? 아니면 힘든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며 떠나온 걸 후회했을까? 갑자기 자신들을 두고 떠나버린 노라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까, 아니면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할까?

노라: 내가 가장 신성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헬메르: 꼭 말해야 알겠어? 남편과 아이들 아닌가?
노라: 나에겐 다른 의무가 있어요. 똑같이 신성한.
헬메르: 아냐, 그런 게 어딨어. 도대체 그게 뭐야?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무죠.
헬메르: 당신은 아내이자 어머니야. 무엇보다 먼저.
노라: 난 더 이상 그렇게 믿지 않아요. 내가 믿는 건 내가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거예요. 아니라면 적어도 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처럼 생각한다는 걸 난 알아요, 토르발. 그리고 당신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는 셀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다 한결같은 목소리로 지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난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대해서도, 책에 쓰여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만족할 수 없어요. 그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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