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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장) ㅣ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우정의 역사'-Hermann Hesse1930
5월의 끝자락. 타 도시에서 글을 남깁니다.
5월은 제게 언제나 방황하기 좋은 달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달 또한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시기적으로 늘 적당한 달이었지요.
이런 소중한 5월의 여남은 며칠 동안, 스스로의 인생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물론 자주 있지만요..)
가까운 도시를 정해 KTX와 느린 기차로, 또는 버스로 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출발과 동시에 가방 속의 책을 분실하는 얼떨떨한 일이 생겼답니다. 아무튼 꼭 읽고 싶었던 헤세의 작품이었고 비슷하고 오래된 번역본 대신 최신의 번역본이어서 그 반가움이 더 컸던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배수아 옮김).' 저는 주저 없이 가까운 서점으로 발걸음을 향했고 책을 얼른 다시 샀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오늘 소개하는 도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고전,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입니다.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있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바로 책 속에 등장하는 두 남자의 이름이며 동시에 이원론적인 두 자아의 대표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도원에서 만난 이 두 남자의 이야기는 젊은 수도사 '나르치스'가 아버지를 따라 수도원에 온 청년 '골드문트'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둘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하게 서로를 '인식'하며 끌립니다.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도 늘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양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꼭 나에게만 빛나는 사람을 만나곤 하니까요.(이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왠지 특정 개인에게는 끌리는 존재이곤 합니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그것은 연인이기도 하고 혹은 친구이거나 다시는 만날 일 없는 타인이 되기도 하고 말이죠.) 어느 날 골드문트는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에 이끌려 한밤에 수도원을 벗어나게 됩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진한 사과주스를 마시고, 어린 처녀들을 만나고 돌아오게 됩니다. 강한 목적을 품고 수도원에 온 골드문트에게 여성성의 등장과 그 짧은 순간의 접촉과 기억은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없었지요. 어머님이 없이 자란 골드문트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였을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권유로 시작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수도원에 옴과 동시에 스스로가 금기시하던 일들을 행한 골드문트의 번민은 펄펄 끓는 열처럼 티가 나고... 바로 다음 날 줄곧 골드문트를 주목하고 있던 수도사 나르치스는 금방 그 변화를 알아챕니다. 그리고 나르치스 특유의 장점이자 능력으로 열병과도 같은 골드문트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는데 이것이 결정적으로 그들의 우정이라는 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시작이 됩니다. 이후에도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는 서로의 끌림과는 너무 다른, 대립되는 감정 속에서 자아실현을 주제로 하는 대화를 매우 열성적으로 나눕니다. 저는 이 대화들이 모두 가슴속에 와서 깊이 박히는 느낌이 들더군요.
'나르치스가 말했다. 그게 내 진심인걸. 우리의 과제는 서로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란다. 태양과 달이, 대양과 육지가 가까워질 일이 없듯이 말이야. ... 중략... 우리의 목표는 서로의 장소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것, 상대방의 본모습을 직시하고 존중하는 거지. 서로가 서로에게 대립이자 보완적인 존재가 되어서 말이야.' p63
이 글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도 나타나지만 이 말을 들은 골드문트의 깊은 슬픔이 마치 저의 것처럼 가슴에 날아와 싸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두 남자가 주인공이 되어 나누는 우정의 대화로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두 자아의 만남이 때로는 남자와 여자의 날선 대립처럼 보이기도 했고, 동성 친구 사이의 대화이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자아와 나누는 대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는 서로 다른 속에서 서로를 완충해주는 역할이 되어갑니다. 변함없이 이성적인 나르치스에 반해 몽상가의 기질을 모두 품고 태어난 듯한 골드문트는 방탕, 방황, 충격과 고뇌 그리고 조각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며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많은 날이 흘러 죽을 지경까지 이른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도움으로 또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이하 결말은 제 글에서 숨겨둡니다만.. 책을 읽는 내내 골드문트의 생 속에서 지금의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느껴지더군요.
'골드문트는 형상에 끌렸다... 중략 ... 자연에서 살아 숨 쉬는 식물과 동물 외에도, 인간에 의해 창조된, 침묵하는 두 번째 자연이 존재한다는 비밀. 그는 자유시간이면 인물상, 동물 머리 조각상, 꽃과 이파리 장식을 스케치하는 일이 많았고, 진짜 꽃과 말, 인간의 얼굴을 그려보기도 했다. 'p57
만약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두 자아를 놓고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를 제게 묻는다면 후자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보면,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스스로를 대입하여 두 자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문득, 나를 이루는 주변의 다양한 자아들과의 만남도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정치, 그림 그리는 친구 등 각계각층에 몸담고 있는 이제는 다 자란 벗들과 나누던 대화들을요. 그리고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목표에 대한 고찰과 수없이 쏟아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아니더라도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헤세의 아름다운 문체와 주인공이 바라보고 겪는 주변 묘사의 한 문장, 문단. 그 곳곳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골드문트. 그의
미완성의 마리아 상은 어쩌면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네 인격과 삶을 나타내는 것은 또 아니었었을지...
오랜 시대를 흘러오는 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재해석되는 고전의 매력을 적극 추천드리며 글을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