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토익을 보고 왔다.
1997년 여름에 카투사에 지원하기 위해 여름에 두 차례 응시해보고
2001년에 복학 첫 학기 초여름에는 군생활 동안의 변화를 알고 싶어서 응시했고
2003년 여름에는 스스로 테스트도 해볼 겸,
그리고 카투사에 지원하고 싶어한 막내 동생이 시험보는 걸 응원해줄 겸 두 차례 응시했다.
그리고 오늘 또 시험을 봤으니까 총 6번째다.
매 파트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예시 문항들은 8년 이상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아마 토익이 생겼다는 십 몇년 전부터 똑같았던 게 아닐까.
2년 전 이맘 때,
일본어에만 좋아하고 영어는 좋아하지 않았던 동생은
카투사에 지원하고 싶어서 초조해하며 영어 공부를 했다.
어릴 때부터 귀엽지만 소심한 구석이 있던 녀석은 시험날에 실수를 했다.
시험시간이 종료되면 곧바로 답안지를 걷어가야 하는데
시험지에 써놓은 답을 답지에 옮겨놓지 않아서 종이 친 후에 허겁지겁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날 시험을 치러 가는 길에
일요일 아침이라 지하철은 한산했고
날씨는 요즘처럼 덥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덥잖은 농담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시험 장소로 향하고
시험이 끝난 후에도 뭔가 싱거운 이야길 계속 이어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옷가게에 가고 싶어서 마뜩해하지 않는 동생을 끌고 옷가게에 갔었다.
한산한 지하철 풍경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토익 시험장까지의 주택가
그 날 동생과 함께 고른 옷
시험을 치다 마무리를 못해 난처한 표정으로 답지를 채우던 모습
창 밖에 잠시 잠깐 퍼붓다 이내 그쳤던 소나기
이 모든 것들이 기억 속에, 옷장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험장에서 누군가가 답지를 미처 채우지 못해서
답안지를 걷는 사람을 옆에 세워두고 답지를 체크하고 있었다.
2년 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모습으로 난처해하던 동생이 떠오른다.
차에 치여 머리에서 피를 많이 흘렸던 사고 현장의 사진이나
영안실에서 몇 군데 멍을 빼고는 너무나 멀쩡해보였던,
심지어 머리마저 자면서 뻗친 것처럼 보였던 동생의 모습,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랑은 애처로워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가 받는 고통 때문에, 그가 겪는 슬픔 때문에
나 역시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나 마음이 아픈 것...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다.
동생이 가졌던 바램들, 동생이 여행 가고 싶어했던 곳들...
동생이 이루지 못한 꿈들과 스물 두 해의 짧은 삶이 애처롭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2년 전 동생이 시험 마무리를 못했을 때
내색은 않고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워줬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 녀석이 얼마나 의기소침해할까,
형의 마음은 너무 애처로웠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토익을 치고 시험장을 나오는 길에
이제 다시 토익은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의 기억을 평생 잊을리 없지만
가슴 아픈 느낌만큼은 이제 그만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