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건 나름대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 거다.
그때 시간이 많기도 많았지만 그 훨씬 전부터 가져온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재미도 쏠쏠했다.
글을 쓴다는 취미생활을 홈페이지에 갖다 붙여서 웹진을 운영한다는 계획도 나름 그럴싸 했고
한동안은 재미도 좋았던 것 같다.
어차피 지인들만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싸이 미니홈피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은 넘어서는 공공성도 조금은 이끌어낼 수 있었다.
PC통신 시절의 동호회처럼 사람들이 글을 주고 받는 정도까진 가지 못한 건 아쉽다.
개인홈페이지의 한계일 수도 있다.
개인이 웹페이지를 혼자 운영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글 뿐 아니라 사진도 포함시켜가며
웹페이지를 만들어서 FTP로 업로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게 글을 쓰는 건지, 웹작업을 하는 건지' 헷갈렸다.
시간도 적어지고 사람들과의 접촉도 적어지면서 이제는 꽤나 썰렁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개인 홈페이지는 개인홈페이지,
나의 사적인 생각들을 다른 곳보단 편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있는 자식에 대한 걱정 반, 소식에 대한 궁금함 반으로
부모님이 내 홈페이지에 접속하시고부터는
그런 사소한 고민거리를 글로 옮기는 것도 영 불편해졌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그 고민들은 순간에는 꽤나 심각할 때도 있는 법.
괜한 걱정을 안겨드리는 것도 내키지 않고
불편한 방식으로 돌아오는 피드백 때문에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일은 갈수록 알멩이를 잃어갔다.
그리고 '상해의 건축양식'처럼 비교적 사적인 정황과는 거리가 먼 글만 올리곤 했다.
오늘 면접을 본 어떤 회사는 IT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내가 많은 곳은 모르고 국내 1, 2위 포털 업체의 분위기만 좀 아는데
오늘 면접 본 회사는 IT기업치고는 좀 딱딱하다 싶은 분위기였다.
글쎄.. 일만 IT분야일 뿐 일반 회사랑 비슷한 분위기.
뭐, 우리나라에는 양복 입고 출퇴근하는 회사가 더 많을테니 그건 그렇다 치겠지만
면접 중에 어쩌다 나온 홈페이지 이야기,
이야기하다보니 편하게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줬지만 한편으론 기분이 찜찜하다.
이젠 아예 타인에게까지 홈페이지를 노출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홈페이지는 대개 완전 개방이기 마련.
(가입자에 대한 차별적인 글공개, 글쓰기 허용도 가능하지만
개인홈페이지에 들어오면서 로그인을 할 사람은 흔치 않으니)
그래서 우연히 알게된 알라딘의 무기명 블로그를 시작하는 건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싸이월드의 블로그도 나름대로 깔끔한 인터페이스가 맘에 들었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편히 내 이야길 할 수가 없다.
익명성을 남을 공격하거나 사기를 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리얼 월드의 '나'를 보는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서도 익명성이 유용한 것 같다.
나의 홈페이지는 이제 슬슬 손을 봐서
거의 공개용인, 非사적인 용도로 변모시켜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전에도 면접에 홈페이지 주소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땐 도움이 된 것 같긴 하다.
원래 사람도 별로 찾지 않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개인 홈페이지와 알라딘 블로그에 양다리를 걸치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이젠 마음을 굳혔다.
에헤라~
(그나저나 이렇게 회사원들 양복 입히기 좋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