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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전집 2 - 환상수첩 외 ㅣ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그를 처음 접한것은 고교시절이 아니었나 싶은데 아마 20여 년도 넘었을 것이다.
당시는 이렇게 많이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어려서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지 모르지만) 학생들에게 읽힐 책이라는 것은 필독 도서 목록에 꼭 들어가는 명작 소설류 라는 외국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이 주류였을 때이다. 물론 나의 독서량이라는 것은 극히 적었지만 그래도 형제들이 많은 집의 막내였기에 그나마 형님들과 누님들이 읽던 책들이 집안에 많이 널려 다녔기에 눈구경이라도 했던 것이다. 또한 무슨 이유인지 아버님 또한 책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셨던것 같고 그래서 우리집은 꽤 많은 책들이(잡다한)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의 기준으로는 전혀 아니올시다인 책들 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책꽂이엔 내가 모를 책들이 많이 있었고 그속에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소설이 있었는데 고교 2년때 방학인가 우연히 그의 소설을 읽었고 그때 무언가 이상한... 전율과는 또다른 어떤 떨림과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읽었었다. 참 기분이 묘한...그후 나는 그의 다른 소설을 또 읽었고 그때마다 묘한 기분을 갖곤했는데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소위 불후의 명작이라는 권장용 도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그때의 어린 나의 감성으로는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소설을 다 이해 하지는 못했고 무엇이라 한마디로 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만을 가진채 그 시절을 끝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될무렵 나는 나름대로 내취향의 책들을 골라서 읽고 어떤 작가에게 빠지면 죽어라 그작가의 소설만을 찾아 읽곤 했는데 그때 다시 김승옥을 읽었고 그때는 나름대로 그의 소설세계를 해석(?)하려는 가당치 않은 생각까지 하며 그를 탐독했었다. 처음 읽은것이 '서울 1964년 겨울'이었는데 이 책이 나를 그의 세계로 빠지도록 했던것 같다.
그후 '60년대식'이라는 창작집을 사서 읽었고 이게 고교졸업직후였으니까 아마 79년이었을 것이다. 그후 나는 몇권을 더 구해 읽었는데 그의 소설 느낌은 무언가 조용히 파고 들어와서 점점 마음속에서 파문을 일으키는것 같기도 하다가 결국 돌아 보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단지 내부에서 조금씩 아주 섬세하게 파고드는 그리하여 알수 없는 묘한 무늬를 기억속에 또는 가슴속에 새겨 넣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무늬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채 또 세월이 흘렀고 나는 전상국에게 빠져 있었고 송기원에게 빠졌고 천승세에게 빠졌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소설을 읽었다.
나는 20살 초반을 그렇게 음습한 방안에서 소설 나부랭이를 끼고 살았었다. 무력했었고, 무서웠고,참담했고, 암흑이었고, 세상은 절망의 구렁텅이었다. 80년 이었다. 5월이었다.
그렇게 소설가들의 글을 읽는것이 유일한 탈출구 였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광주가 피를 흘리고 서울에선 휴교령이 언제 끝날지 모를 상태에서 거리에는 계엄군이 요소요소에서 총부리로 지나는 사람들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며 살벌한 검문을 해댈때도 나는 무감하게 소설책을 끼고 거리를 휘청이거나 방구석에서 책에 코를 박고 잠들기 일 수 였다. 그러면서 나는 그를 잊어갔고 차츰 세상에 길들여져 가거나 눈을 뜨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사회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었고 이미 이 사회에서 기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소설전집이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읽었고 당장 그 전집을 샀고 다시 읽기에 빠졌으나 지금읽어보니 빠지기는 안되고 단지 그때의 기분과 지금의 기분을 비교하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심정으로 읽었다. 물론 그때의 감성과 지금의 그것은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문체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숨가쁜 시대에 이런 소설을 썼을까 라는 물음도 일었으며 나또한 그 피 흘리시절 이런 소설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 한편으론 이상하고 또 한편으론 깊은 호흡을 쉬게하는 마치 격정적인 호흡을 안으로 삼키며 그 안에서 잦아지는 호흡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지금읽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