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영화든 책이든 일단 아무 사전 정보 없이 텍스트에 손을 갖다 대는 타입이다. 헤르타 뮐러의『마음짐승』은 이런 독서습관 때문에 낭패를 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책을 주문해 받아들고는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펴들었다. 책장을 열자마자 뮐러만의 독자적인 은유가(예를 들어 하얀 셔츠, 수박, 양, 손톱가위 등) 그것을 읽는 내 눈, 가슴을 향해 끊임없이 돌진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시각적으로 받아들여진 문자들은 딱딱한 가슴께 와서는 어느 하나도 녹아들지 못했다. 그래도 ‘이미 결혼한 판에 어쩌겠어. 끝까지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겠지’라며 자조하는 기혼자의 맘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1/3이 넘어갈 때까지 가슴에 스며들지 않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악! 못 읽겠다!’라며 구석에 책을 던져버린 건 더 이상 못살겠다는 기혼자의 마음과 같았다. 책과 나는 그렇게 이혼했다.

구석에 놓여있는 책을 못내 다시 주섬주섬 주워든 건 결국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에 실패한 이의 마음이다. 헤르타 뮐러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 검색창에 처넣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살던 시대의 분위기는 어땠을지. 나는 질문을 던지며 작가 뮐러와 내가 함께 섭동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했다. 문학동네에서 <헤르타 뮐러에게 다가가기>라는 소책자가 비매품으로 주어졌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미리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빚어낸 시대상을 알고 뮐러가 그곳에서 34년 간 타협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단하고 나니 다시 책장을 펼쳐들 용기가 생겼다. 책과 나는 그렇게 재혼했다. 만약 뮐러의 책을 읽으려 하는 독자 중 나처럼 가슴이 딱딱한 사람이 있다면 그녀의 신상정보와 집안환경을 미리 검토해 볼 것을 권면한다. 분명 세상에는 그렇게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타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기
  

소설의 초반은 롤라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은 결국 롤라의 이야기고 ‘나’는 그것을 서술하는 화자일 뿐이구나.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되려 롤라의 말에 귀 기울이는 ‘나’의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메마름’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이유 혹은 실존적인 문제의 메마름이다. 롤라는 자신의 몸에 끈덕지게 달라붙은 메마름을 지우기 위해 가난한 지방에서 도시의 대학으로 왔다. 벼룩이 들끓는 몸과 고향을 정화해줄 하얀셔츠의 남자를 만나면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자칫 속물적으로 보일 수 있는 롤라에게 어느 누가 동정이나 공감의 눈짓을 보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했다면 세상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행동만으로도 그녀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남자들의 육욕을 해갈해주는 대신 그들에게서 도축된 동물의 혓바닥과 콩팥을 받아 냉장고 안쪽에 넣어둔다. 롤라는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하얀셔츠가 없는 곳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목표지점에 가 닿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롤라는 소외된 이들이 으레 그렇듯 전체주의와 종교 안에 자발적으로 편입해 들어간다. 하지만 전체주의처럼 비뚤어진 괴물은 자신 안의 구성물을 할퀴며 커나가는 법. 롤라가 ‘나’의 허리띠로 자살을 한 건 그녀가 열성적인 당원이 된 그 무렵이었다.
 

‘나’가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들은 롤라를 애도하기 위해 뭉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롤라 개인이 아닌 시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라는 게 맞는 말이겠다. 전체주의에 입각해 모두가 롤라의 죽음에 박수를 칠 때, 그들만의 공간에 숨어 롤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만이 ‘나’가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가 시대와 불화하는 방식이었다. 시대와 불화함으로써 자신과 불화하지 않는 것. 레비나스에 따르면 그것은 타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가능하다. ‘나’가 획득한 롤라의 일기장을 되씹어가며 그들은 전체주의의 암약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바라본다. 나의 마음짐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나는 끝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 시대를 살아나갈 수 있을지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마음짐승』은 침묵하되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쓰인 듯 문장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정신이 새겨져 있다. 세상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요령부득의 텍스트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재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자 언어와 세상 사이에 끼인 자들이다. 그런 와중에 헤르타 뮐러처럼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끼인 자들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일견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 플롯을 수반하지 않는 문학을 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이 자전적 증언문학이라면 더욱 사건묘사가 불가피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이 곧 주관이고 사건이 또한 선택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지나쳐 주관의 극한인 마음짐승의 용트림에까지 가볼 필요가 있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나고 똑같은 사실만을 되풀이하는 말은 역시 우스워질 수밖에 없으니 그 사이를 요령 있게 나아가지 않으면 언어와 사실에 압사당하기 십상이다. 침묵과 말 사이를 가로지르는 뮐러의 소설을 보노라면 무작정 집어삼킬 수 없는 자두를 입에 물고 있는 위태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롤라의 문장을 입으로는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옮겨 적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말로는 해도 종이에 적을 수는 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롤라의 문장들은 적으려고 하면 손안에서 지워졌다. (52쪽)


‘나’,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가 비밀리에 마련해 둔 여름별장에는 이미 이 모든 일들이 적혀 있는 책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은밀히 넘어온 이 불온서적들은 역사의 증거이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어느 누가 그 역사를 떠안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고로 ‘나’,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가 역사를 떠안지 않은 채 여름별장의 책들을 읽는다면 그것은 ‘침묵’ 혹은 ‘말’에 그칠 것이 분명했다. 책에는 차우셰스크 독재사회와 같은 일들이 깨알처럼 박혀 있음에도 ‘우리가 사는 나라의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처럼 손이 까매지지 않’(65쪽)는다. 이유는 ‘주체’와 ‘행동’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이다. ‘나’와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는 죽은 롤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독일에서 건너온 여름별장의 책으로 역사를 공부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역사의 반복에 몸을 싣는 일이다.


운이 좋다

지독한 경감 프옐레는 ‘나 만나서 운 좋은 줄 알아’를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고 소설 첫머리에 에드가와 ‘나’는 프옐레의 말을 되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운이 좋다’라고. 도대체 뭐가 운이 좋단 말인가. 잔혹한 시대에 프옐레의 지독한 감시와 고문을 견뎌내는 것이 뭐가 그리 좋다는 거지. 나는 한참동안 이 말을 곱씹어 봤다. 그들이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 독재자를 몰아냈다거나, 경감 프옐레에게 엿을 먹였다거나, 독재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안전하게 피신했다는 등의 이유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운이 좋은 이유는 역사와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또 한계 속에서 자연스레 몰락해 갔다는 점에 있을 듯했다. 프옐레를 만나고 에드가와 게오르크는 멀리 지저분한 산업도시의 교사로, 쿠르크는 도축장 기술자로 ‘나’는 공장의 수압기 사용설명서 번역가로 제각기 흩어졌다.


노인들은 숲에 대고 피리를 불어 새들을 미치게 했다. 새들은 나무와 둥지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숲 밖으로 날아가면 웅덩이의 물을 구름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머리를 처박고 죽었다. 오직 한 새만이 제 삶을 살아, 라고 게오르크는 썼다. 붉은등때까치야. 그 새의 울음소리는 수많은 피리 소리 속에서도 구별이 돼. 그 울음소리가 노인들을 미치게 하지. (...) 새는 태연해.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지. (119쪽)


많은 소설가들이 붉은등때까치의 행적을 그렸다면 뮐러는 붉은등때까치가 되지 못한 이들을 그려낸다. 죽은 롤라의 밖에서라면 그것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롤라의 입장이 되고, 밤마다 미친개처럼 롤라의 위에 올라탄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이 된다면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붉은등때까치가 될 수 있을까. 역사 밖에서라면 역사가 될 수 없다. 역사 안에서라야 역사의 반복에 동참할 수 있고, 이 반복을 또한 후세에 넘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인물들의 영웅적 면모를 확인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역사가 일제시대 우리 독립투사들을 그리듯 그들의 반항이 혁명적이고 도전적이며 파괴적이길 말이다. 물론 그들은 처절하리만큼 노력했다. 시를 지었고, 진지한 일에 마음을 썼다. 심지어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경계하기 위해 작위적인 증오를 서로에게 퍼붓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성과 달리 마음 속 짐승은 자꾸만 도망을 갔다.

마침내 롤라와 그들의 남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나’,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는 서서히 자신의 자루를 찾기 시작했다. ‘깨끗이 입고 다니면 더러운 꼴로 하늘에 가지 않아’. 더러워지기 전에 죽음으로 승리하고 싶은 마음. 마음짐승이 생쥐처럼 약해지면 사랑을 갈구하게 되고, 심지어 배신당한 이에게까지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된다. 각자 알아서 극복해야 할 그 두려움. 죽음은 개별적인 실존선택이다. 침묵하지도 않았고, 말을 하지도 않은 그들은 실로 운이 좋았다.


동시에 아이들은...

 

롤라의 죽음 이후 ‘나’가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와 연대하여 독재에 대항해 나갈 때 중간 중간 한 가정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삽입된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며 아이가 있다. 총 삼대다. 그 공간의 표현은 소설의 다른 부분보다 좀더 초현실적이어서 모든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어쨌든 무언가는 계속 자라고, 자라난 것을 자르고 혹은 아예 자라나는 원천을 잘라버리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머리카락, 손톱, 자두 등으로 표상화 된다. 
 

그렇게 금기시되는 것들을 아이로부터 원천봉쇄하려는 윗세대는 또한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전체주의의 금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상처를 오롯이 뒷 세대에게 징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상처를 담아 보내는 편지에 또 할머니가 끊임없이 부르는 노래 안에 담겨 있다. 지젝이 말하는 것처럼 결국 실재계의 일관성을 확인시키는 것은 과연 징후였다.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진 전체주의의 부조리함은 롤라와 같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 냈고, ‘나’와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에 이르러서야 축적된 부조리가 폭발되었다. 쿠르트와 게오르크가 죽은 후 결국 차우셰스크는 무너진다.


두 아이는 하트 금목걸이를 걸고 방 안을 뛰어다녔다. 머리카락이 날렸다. 나는 크면 목에 울리지 않는 방울을 달고 세상을 돌아다닐 강아지 두 마리를 보았다. (181쪽)


‘나’,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는 역사의 부름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복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전과 같지 않은 역사를 안겨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역사는 ‘허리띠, 창문, 호두, 노끈이 든 자루’로 남았다.


나는 경감 프옐레가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모두 들어 있는 자루를 짊어지길 원했다. 그가 이발소에 앉으면 그의 자른 머리에서 막 벌초한 무덤의 냄새가 풍기기를, 퇴근 후에 손자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범죄의 냄새가 풍기기를. 아이가 쿠헨을 주는 그 손가락을 혐오하기를. (308쪽)


헤르타 뮐러의 이 소설은 ‘여름별장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또한 역사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독재의 역사를 겪었고, 다음 세대 즉, 우리에겐 비교적 민주화된 역사가 주어졌다. 하지만 역사는 또한 반복되며 지금 여기에서도 반복을 멈추지 않는다.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지는 상황에 이르면 과연 우리는 어떤 포즈를 취하게 될까? 『마음짐승』은 그렇게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10-0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에 다섯장 이상을 읽지 못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나마 완독을 하고 나니 이해는 되지만 정리가 안되어 검색을 하다가 이 리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로 뵙기를 바랍니다.

NILNILIST 2010-10-04 10:50   좋아요 0 | URL
읽기 어려운만큼 보람된 책이죠?^^
제 리뷰가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앞으로 좋은정보 많이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