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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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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이 드신 분들이 말씀 하시기를, '행복'이란 것이 알고보면 별 거 아니라고,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작은 일 마저도 모두 행복하고 감사 할 일들 천지라고, 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지당하신 말씀'이라 여기면서도 어딘가 성에 차지 않는 기분이 들었었다. 분명 마음을 과하게 먹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라는 뜻이겠지만서도 살짝 돌려서 생각하면 어딘가 좀 찜찜한 것이 그게 아니올씨다 싶은 면이 있었다는 거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이도 저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울화통 터지는 일생이기 십상,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체념 반 터득 반으로 '행복'에 대한 눈높이가 낮아진 건 아닌가. 그것도 일종의 자포자기 패배주의라고, 스스로 행복의 기준과 높이를 낮춰서 조금이나마 자위하고픈 몸부림 같은 거라 이 말이지.

아직도 난 철이 덜 든 탓인지 절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여전히 좀 싸가지 없고 소갈머리 없이 살고 있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씩 이나마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신을 끌어높이기엔 힘이 부치니 나 이외의 것들을 슬그머니 끌어내리는 수작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나 하나를 높이는 것보다 세상을 질질 끌어내리는 것이
훨씬 더 힘든 일인지도 모르는데^^) 속내는 저러면서도 머지않아 겉으로는 히죽히죽 웃으며 '아 글쎄 눈높이를 낮추니 세상이 다 좋아보이네'하고 득도라도 한 듯 수선을 떨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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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친구한테 종이편지를 쓰면서, 무심결에 '행복'에 대해서 썼던 건데, 이 책을 읽다가 까암짝 놀랄 만큼 명료한 문장을 발견했다. 나의 저 기다란 주절거림을 너무나 명쾌하게 정리해버린 딱 한 문장.

'행복이란 욕망이 정지하고 고통이 소멸된 패배의 상태를 의미한다'

아 띠.. 정말 간단명료하다! 흔히들 말하는 '쿨(cool)하다'라는 감탄사가 바로 이럴 때 쓰는 건가보다. 깨끗하고 시원하고, 한치의 군더더기나 지리함도 없이 진짜 경쾌하다. 내용이 깨끗하냐고? 아니, 어쩌면 내용은 너무 현실적인 나머지 전혀 깨끗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표현이나 관점은 오뉴월에 얼음알 깨먹는 것처럼 시원짜릿 그 자체다. '고루함'과 '진부함', '지루함'과 '장황함'은 모두 날려버려라! 신선하다. 쿨!!! 하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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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문학전집 1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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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때 교양국어였나, 현대문학이였나, 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젊은 강사가 침을 튀어가며 열변 강추 했었던 김소진. 그러고나서 내가 김소진의 소설을 하나도 안읽은 줄 알았는데, 바보같이 이제 보니 그래도 두엇은 이미 오래전에 본 거였다. 아마도 그 수업 들을 때 읽었더랬나..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간에 요며칠 침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지내며 재미나게 읽은 <장석조네 사람들>. 작가가 처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황석영의 글을 가지고 연습을 했다고 하더니, 실제로 어휘나 내용이나 <객주>와 비슷한 면이 꽤 눈에 띈다. 하지만 아주 실망스러웠던 황석영의 <객주>에 비해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김소진의 소설이 훨씬 낫다.

이명랑의 <삼오식당>과 통하는 면이 많다. 체험과 기억이 바탕이 된 젊은 작가의 진짜 소설이라는 것, 지극히 사람 냄새나는 서민층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 사투리와 은어가 넘쳐흐르는 생동감 있는 문장구사력이 돋보인다는 것, 악다구니 속의 찐하고 고달픈 사람살이를 아프지 않게 그려낸다는 것, 한 인물에 하나씩의 사건을 가지고 단편인 척 하면서 줄줄이 풀어나간다는 것, 하고 싶은 이야기와 담아둔 이야기가 너무 많은 작가들이라는 것... (아무래도 이명랑이라는 작가가 김소진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사람, 살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이렇게 이야기에 재주있는 사람이 참 좋은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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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울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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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그르니에의 대표적 단편집들 중에서 한두편씩을 추려 다시 한 권으로 펴낸 단편소설집. <물거울>이라는 제목도 그의 유명한 단편집 중 하나의 제목이라고. 책 말미에 붙은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이 책 뿐만이 아니라 로제 그르니에의 문학 전체에 대한 감상이 잘 나와있다. 믿을만한 번역가 답게 '비평'이 아닌 '감상문'을 잘 써주셨는데, 사실 그의 느낌과 내 느낌은 그다지 비슷하지는 않다.

'나직나직', '아주 단순하고 약간 쓸쓸한', 바람이 조금씩 통하는 서늘한', 등등의 객관적인 느낌은 동감하지만 아무래도 이 소설들을 읽고서 마음에 파문이 일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간결한 듯 심중 깊은 메세지를 받아들이기에 나는 머리로는 알아 들을 지언정 가슴속 울림은 그만 못하다는 뜻이다.

#
어찌 생각하면 그저 살아가며 겪는 해프닝들이랄 수도 있는 사건들에서 노작가는 '인생이란 허무한 것', 하지만 그 '허무함'이 바로 인생이 주는 '애틋한 묘미'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르니에가 말하는 '허무함'은 마음이 스산해지는 가운데에서도 결코 절망적이거나 자포자기 체념식은 아니다.

-- 이런저런 일을 통해 산다는 게 이렇게 허무한 거라는 걸 확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암울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또 남은 삶이 다할 때 까지, 이렇게 크고 작은 허무함은 계속해서 반복 될테니 오히려 무디어 지는 게 낫지.
아니, 무뎌지기 보다는 애틋함으로 가슴속에 차곡차곡 묻으며 일생이라는 성벽에 벽돌을 하나씩 얹어간다고 생각하면 돼. 침착하자구. 조바심 낼 필요 없다구.

#
그래,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가을날의 저물녘 같은 분위기 인 것은 틀림없다. '나아감' 보다는 '허무러짐', '사그라듦' 이라는 말이 훨씬 가까운 글들이니까. 하지만 이미 말 했듯이, 적어도 나는 아직 아니다. 나도 이제는 여기저기서 주워섬긴 덕에 인생이란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생무상'이라는 말을 거의 본능처럼 느끼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 '허무에 대한 관조'를 향해 알듯말듯한 거부감을 느끼며 온전히 내 것으로 감상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난 아직 '삶'을 미처 경험하지 못한 풋내기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한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십상인 소설들을 줄잡아 읽은 후에 오히려 '난 아직 아닌걸!'하는 반동 에너지를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 작가의 뜻이 아니였을까 하는 신비로움과 함께 책 한 권을 통해 얻은 수확이 크기만 하다. 아픔과 절망, 상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허함, 같은 주제를 다루고도 한없이 우울증에 빠지게 만드는 글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소리없이 큰 숨을 들이켜고 이 '허무'를 포용하라'는 글도 있으니, 이것 역시 '희망'을 이야기하는 독특한 방법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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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천국>을 연상시킨다는 그르니에의 72년작 '시네 로망'을 보고싶다. 그리고 1차대전 즈음 프랑스 전원을 배경으로 한 가문의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겨울 궁전' 도 보고싶다. 차츰 나이를 먹고 그르니에의 글과 좀 더 가까이 지내다 보면 나 역시 김화영교수처럼 오랜 친구나 지기보다도 그르니에의 책 속에서 더 가까운 친화력을 느끼며 편안하게 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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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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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게 읽었다.허우대만 멀쩡할 뿐 사람 구실을 못하던 노름꾼 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지 오래고,이웃과 거리를 둔 채로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소년 세영이.지난 번 '멸치'에서는 좀 실망 스러웠던 김주영 작가의 문체가이번에 '홍어'에서는 아주 재미나고 맛깔스러웠다.소년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 삼례의 알 수 없는 행동거지와 처신,그런 모든 묘사가 참 그럴듯 하다. 시골 마을의 풍경과 소년의 생활도 그렇고,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결코 마음 속에서는 가만히 고여있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런 배경의 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탓도 있겠지만,아무튼 마음에 드는 소설이였다. 재미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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