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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1 - 쥘 베른 컬렉션 02 ㅣ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각종 과학류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누구도 시도하지 못할 대담 무쌍한 모험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를 선구적인 시대정신이라고 해야할런지, 아니면 당대의 어두운 사회적 면모는 철저하게 외면한 채 있는 자만 누릴 수 있는 아이러니한 모험으로 현실감을 버렸다는 점에서 배부른 자의 재치있는 상상력 정도로 봐야 할런지-.
분명 누구도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대단한 상상력인 것은 틀림이 없다.
과학의 발달로 신문화가 개척되고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도 그만큼 큰 폭으로 넓어지던 시대에, 이토록 잡다하고 해박한 지식에 방대한 분량의 자료까지 얹어가며 '신문명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이란- 그저 '박물학자'로서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것', '내가 알게 된 것'을 남들에게도 알리겠다는 야심찬 포부까지 느껴지는 듯 해서, 쥘 베른이라는 작가가 사뭇 거북할 지경이었다.
<80일 간의 세계 일주>에 비하면 훨씬 넓고 깊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다.
당시 유럽의 부유한 귀족이 지닐 수 있는 특권적 사고 방식에 태연하게 젖어있는 주인공, 밑도 끝도 없는 그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하인, 세간에 관심 중에서 대표적인 몇몇 포인트들, 그 포인트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각 장마다 이벤트성 해프닝을 곁들이는 낭만동화적 센스. 그리고 또 한가지, 의도가 느껴질 만큼 확실하게 배제된 여성에 대한 사고.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순진하게 흥분감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배경의 한계들이 너무 역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지의 세상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에는 그 주인공-혹은 이 주인공을 그려낸 작가 자신-의 현실 감각이 모험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 시대 그 신분의 안일함으로 뼛속까지 무장되어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 가능하기는 하나 너무나 역력한 모순이라 거부감이 든다고 해야하나. 단지 귀족이기 때문에 자금에 관한 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무조건적인 설정, 터무니 없는 것일지라도 주인의 행동은 하인에게 아무 설명도 이해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신분 차별, 세계의 중심은 유럽(혹은 그나마 확대되어 신대륙 아메리카까지)이므로 그 외 세상은 '미지'를 빙자한 원시 세계라는 것 등등.
시대 감각의 차이 때문일까. 유려한 문장력이나 풍부하고 성실한 지식 기반으로 탄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는 했지만 실상 와닿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