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을 눈 앞에 차려주며 낱낱이 보여주는 영화보다도
오히려 소설이기 때문에 그 느낌과 감정에 더 충실하게 만끽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단어의 나열이 단순한 활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오감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감지할 수 있게 만드는 소설의 위력 같은 것.

이 소설이 그랬다.
재치 넘치고 해학적인 화법과
'메타'를 이용하면서도 오히려 더 적나라한 대담한 묘사,
원어에 대한 무지가 안타까워지는 맛깔스런 표현들.
훌륭한 글은 다른 말로 번역이 되어도 그 맛과 감동을 잃지 않아야 한다더니
모르긴 몰라도 우리 말로 읽어서도 이토록 착착 감기는 소설이라면
유창한 원어로 읽을 때의 감흥은 얼마나 좋겠나.

이야기 자체의 흡족스런 흥미로움과 가슴 뜨거운 감동, 거기에 재미있는 문장력까지
여러가지 요소를 적절히 갖추어 훌륭한 한 셋트가 된 멋진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채 영화를 보았을 때의 무덤덤함과 그 때문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소설을 읽음으로써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었다.
이제서야 다시 한 번 <일 포스티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
... 그 위엄이란 낮잠 시간이 될 때까지 늦잠을 자고, 밤잠 잘 시간까지 늘어지게 낮잠을 다시 자고, 또 밤잠도 푸욱 자는 것이었다.
+
...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히고 머리가 띵하고 기가 죽고 얼간이가 된 것 같고 촌놈 취급 당한 것 같았다. 동시에 얼굴은 붉은 색, 진홍색, 심홍색, 주홍색, 주황색, 자주색으로 시시각각 변해갔으며, 진땀이 흐르고 맥이 빠지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신통하게도 이번 만큼은 퍼뜩 뇌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죽어버렸으면'이었다.
+
... 겉은 백짓장이지만 속은 숯검정이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토록 혀끝이 달아오르고 묘한 열기에 달뜨게 만드는 소설이 있을까.
감동스런 음식 이야기에 자극 받은 뜨거운 혀가 입술을 적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몸이 달아오르고 마는, 너무나 명쾌하고 솔직한 감흥.
마법, 요리로 빚어내는 묘약-
사랑을 빚어내는 요리법, 사랑과 한과 정신이 담겨있는 요리법.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일수록 빨리 읽는다는 사실 조차 안타까울 만큼
이 책을 읽는 이틀간 아주 많이 행복했다.

흔히 사용하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그 관능을 담아내지 못하고
충실히 묘사되는 멋진 음식들 역시 내가 아는 수식어로는 적당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아름답고 뜨겁고 열정적이다.
멋진 소설, 이런 소설 덕분에 난 너무너무 행복하다!


+
이국의 요리는 낯설다. 재료도 낯설고 조리법 또한 익숙치 않다.
그러나 그 요리를 만드는 마음과 음식 속에 녹아내리는 감정은 충분히 온전하게 공감할 수 있다.
음식의 맛은 속일 수 없다. 감정은 솔직하다.

+
소외되고 억압된 여성들의 상징이랄 수 있는 '부엌'이라는 공간이
여기서는 결코 음울하거나 제한 된 소극적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들로 하여금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소재를 이용하여
능란한 솜씨로 그들만의 '무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해소구이자 창조의 작업 공간인 셈이다.

+
막내딸은 결혼도 연애도 할 수 없고 한평생 어머니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전통이 생소하긴 하지만,
사실 오래전 우리의 사연들 속에도 더하고 덜 하고를 가릴 수 없을 만큼 말도 안되는
'전통'을 빙자한 굴레가 얼마나 많았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의 미술이나 문학이나, 떠오르는 신세대 작가의 작품들을 보자면 참 당황스러울 만큼 편집증적이랄까 신경병적이랄까, 지나치게 덧바른 수식 탓에 그 의미마저 파악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마치 자폐증 환자처럼 사소한 무언가에 과잉 열중 한다든지, 예민하고 비뚤어진 신경을 따갑게 건드리기 위해 철저히 '감각'에 호소하는 것들이 너무 흔하다. '본질'이라거나 '의미' 같은 내적인 어휘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요사이의 문학과 미술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개성은 지니지 못한 뻔한 상품들이 되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깊이'를 거부하는 듯 표피적인 감각에 치우친 채로.

아쿠타가와상 심사평에서 볼 수 있듯이, '그저 분위기 뿐인 비현실감이나 자폐나 파괴 충동, 그리고 종말의식 같은 단조로움'에 독자들 역시 싫증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트랜드에 반하여, 중세 유럽의 종교와 철학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내용을 차치 하더라도, <일식>은 근래 보기 드물게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며 육중한 무게감과 깊이를 지닌 남다른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주제 역시 표면적인 감각에 의지하지 않고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과 사색을 이야기로 유도해내는 센스 또한 보통이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누군가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문체와 분위기가 참신하고, 더불어 치밀하게 공부해가며 의도했다는 비범한 문장력과 어휘력 역시 당황스러울 만큼 독특하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이 소설속의 어휘들 덕에, 이미 머릿속에서 한참 전에 잊혀져가는 한자에 대해서도 새삼 자극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당황스러움은 결코 부담감이나 불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젊은 신인작가의 데뷔작이라기엔 소설 자체의 색다름과 때아닌 무게감, 깊이감에 절로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더우기 책 말미에 보태진 작가의 인터뷰는 또 다른 즐거움과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신인 작가의 인터뷰라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으면서 이토록 담대하고  확고한 주관으로 명철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스럽다. 또 이 작가가 나와 두달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동갑내기라는 사실에서도 감탄과 존경이 우러난다. 이미 99년도에 작성되었다는 작가와의 인터뷰 부분을 따로 보관하고 싶을 만큼 나 자신에게 귀감이 되는 글이었다. 완성도가 한층 높다는 그의 다음 작품 <일월 이야기>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명랑한 호기심이 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
오락성이 강한 소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교를 하는 사람이 있기에
혹시나 싶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흠. 웬 걸-.

재미는 있더라.
그렇지 않더냐, 헐리우드 영화라는 게 거의.
재미는 있으나 그저 훌륭한 오락물이라는 이상의 평가는 없다.

게고의 말에 의하면
<다빈치 코드>가 Daughter of God이란 책과 내용이 아주 흡사해서
미국의 출판 편집 전문 잡지인 Publisher's Weekly에 표절 기사도 떴었다는데.
실제로 Holy Blood, Holy Grail(국내 번역본 나왔음)의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해서
저작권 소송도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모르겠고.

어쨌거나,
남자 주인공은 작가가 초반에 밝혀놨듯이 해리슨 포드.
(내 의견엔 해리슨 포드는 너무 늙었다 - 그러나 이미지는 적합.)
그렇다면 여자 주인공은 누가 하면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저 2만리 1 - 쥘 베른 컬렉션 02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각종 과학류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누구도 시도하지 못할 대담 무쌍한 모험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를 선구적인 시대정신이라고 해야할런지, 아니면 당대의 어두운 사회적 면모는 철저하게 외면한 채 있는 자만 누릴 수 있는 아이러니한 모험으로 현실감을 버렸다는 점에서 배부른 자의 재치있는 상상력 정도로 봐야 할런지-.

분명 누구도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대단한 상상력인 것은 틀림이 없다.
과학의 발달로 신문화가 개척되고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도 그만큼 큰 폭으로 넓어지던 시대에, 이토록 잡다하고 해박한 지식에 방대한 분량의 자료까지 얹어가며 '신문명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이란- 그저 '박물학자'로서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것', '내가 알게 된 것'을 남들에게도 알리겠다는 야심찬 포부까지 느껴지는 듯 해서, 쥘 베른이라는 작가가 사뭇 거북할 지경이었다.

<80일 간의 세계 일주>에 비하면 훨씬 넓고 깊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다.
당시 유럽의 부유한 귀족이 지닐 수 있는 특권적 사고 방식에 태연하게 젖어있는 주인공, 밑도 끝도 없는 그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하인, 세간에 관심 중에서 대표적인 몇몇 포인트들, 그 포인트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각 장마다 이벤트성 해프닝을 곁들이는 낭만동화적 센스. 그리고 또 한가지, 의도가 느껴질 만큼 확실하게 배제된 여성에 대한 사고.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순진하게 흥분감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배경의 한계들이 너무 역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지의 세상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에는 그 주인공-혹은 이 주인공을 그려낸 작가 자신-의 현실 감각이 모험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 시대 그 신분의 안일함으로 뼛속까지 무장되어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 가능하기는 하나 너무나 역력한 모순이라 거부감이 든다고 해야하나. 단지 귀족이기 때문에 자금에 관한 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무조건적인 설정, 터무니 없는 것일지라도 주인의 행동은 하인에게 아무 설명도 이해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신분 차별, 세계의 중심은 유럽(혹은 그나마 확대되어 신대륙 아메리카까지)이므로 그 외 세상은 '미지'를 빙자한 원시 세계라는 것 등등.

시대 감각의 차이 때문일까. 유려한 문장력이나 풍부하고 성실한 지식 기반으로 탄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는 했지만 실상 와닿는 부분이 별로 없어서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