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
박동천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 총선이 다가온다. 선거라는 공간. 언제나 예상되는 결과의 확인과 실망의 반복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의 공간임도 분명하다. 그래서 이미 3년 전에 내년 2004년의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당투표제'와 '지역구 결선투표제'와 같은 단기적인 대안은 물론, 각 정당의 '공천권 개방'을 아우르는 장기적인 대안까지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책은 현시기에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제도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제도와 의식, 그 떼어놀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양자 사이에서 무엇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느냐는 말은 무의미하다. 상호결정론이 패권을 장악한 까닭도 있지만, 그 모두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 싶었다. 내가 여태껏 접해 왔던 선거제가 과연 승자독식형의 제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국 현실에서는 어떠한 제도의 도입이 더 적실성을 가질 수 있는지.

짧은 책이지만, 그런 나의 동기는 충실하게 채워 주었다는 말을 시작하고 이어가겠다.

모든 법의 근간이 되는 헌법조차도 합의가 부재했던 우리 역사에서 하위 법률 체계 역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해 온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선거법, 선거제도도 마찬가지. '밥그릇 싸움'으로 상징되는 정략적 목적으로 개정한 적은 있었으나, 과연 그것이 얼마나 세심하게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 기준을 잡고 고민한 적이 있었나 하면 답은 부정적이지 싶다.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체계가 지구를 거진 점령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 한계 안에서나마 그래도 최대한 민의를 반영할 목적으로 이렇게 여러 종류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반장선거 할 때부터 해왔던 '단순다수대표제'에서 정말 세심하게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을 존중하는 '선호이전식투표제'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 그건 더 이상 우리도 지금의 선거제도가 전부인 양 여기는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 좀 더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선거법 개정/개악의 정국 속에서 제도를 통한 변화의 시도를 꿈꾸는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유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그런 현실을 탓하며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무의미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음을 잊지 않겠다.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헌정상의 언술이 허언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제도에 근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봐서 손해볼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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