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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10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과연 나 따위가 이런 엄청난 책에 대해 견해를 밝혀도 되는 것일까? 농담이다. 하지만 느낌이 오는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절판이 되었기에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 가지의 소문과 한 가지의 인용으로 책 구경을 시작해볼까 한다.
먼저 소문. 친구로부터 들은 것인지라, '진실 혹은 거짓'일 수도 있다. 나중에 왜 뻥쳤냐고 한다면 난 곤란하다. 작가가 이 책을 쓰고 나서 꽤 번 돈으로 경마에 투신했다고 한다. 2년동안 경마를 한 결과 그 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이번에는 경마에 대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인용. 한국어판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많은 책방에서 이 작품이 스포츠 코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평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 번 쓰인 작품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 단편적인 자료지만, 작가를 짐작하게 해주기에 부족함은 없는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야구'라는 소재 탓일거다. 만년 꼴찌팀인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3년 정규 리그 2위라는 이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듬해 84년, 삼미는 '부메랑처럼' 꼴찌로 귀환한다. 통속과는 달리 저자는 83년이 아니라, 84년의 삼미의 손을 들어준다. 프로라는 이름으로 강박당하는 삶에 대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명제를 매스로 들이민다고 할 수 있을까.
겐이치로도 1985년의 한신 타이거즈의 승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가 잘 치고, 잘 던졌던, 그리고 많이 이겼던 85년의 한신 타이거즈. 하지만 작가는 이 팀의 승리를 부정한다. 그건 야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기기 위해, 남을 패배시키기 위해 하는 야구는 이미 야구가 아닌거라고. '더블 플레이라는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고, 섣불리 날아오는 공에 방망이를 대기보다는 '공의 미학'을 즐길 줄 아는 것. 목적보다는 그 자체를 바라보고 즐기는 게 야구라고 말한다. '공이 잘 보여서 안타를 날리지 못하는 타자'야말로 그 표상이다.
물론 이 책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발빠른 닭'과 '배고픈 늑대'의 추격전에서 느껴지는 발상의 전환으로 읽을 수도 있고, 책의 말미에 한 평자가 써놓은 대로 '의미'와 '언어',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읽어 낼 수도 있겠다. 재미로 읽을 수도 있다.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그건 독자 마음이고, 나에게 이 책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같은 맥락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보다 더 농도 있는 야구소설로 기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