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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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하고 싶은 이들의 갈망과 비애, 폴 윤 작가의 디아스포라 단편 소설집 『벌집과 꿀』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벌집과 꿀』 ..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디아스포라의 풍경을 비추는 소설이 담겨 있다. 전쟁, 탈북, 강제 이주 등의 아픔을 가진 채 낯선 곳으로 떠나는 그들의 안부. 디아스포라가 아닌 단순히 이주의 여파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벌집과 꿀』


미국으로 이민 와서 교도소부터 낯선 도시로 계속 옮겨 다니는 남자의 이야기 <보선>, 종전 후 산골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남자 <달의 골짜기>, 조선 침략에 아기일 때 잡혀온 조선인 고아 소년의 고국 송환 길을 함께하는 사무라이 <역참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3세 소년 <고려인>.. 등 어딘가로 계속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한곳에 정착하길 갈망하고, 새로운 집을 찾길 바란다. 집에 대한 그리움이 짙은 이들의 삶에서는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다행히 혼자이지 않고 잠깐이나마 손을 건네주는 이들이 있어 완전한 외로움은 아니다. 그렇게 외로움을 견디고 슬픔을 건넌다. 그리고 희망을 가져본다. 빛과 온기를 찾아가며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내일이라는 희망은 어쩐지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갔을 때는 어두워져 있었고, 오직 달빛만이 그를 집 안 곳곳으로 인도해주었다. 그가 평생 보지 못한 집이었다. 온전히 남아 있는 방 하나 안에는 오래된 먼지와 빛물이 가득 담긴 찻잔 하나가 바닥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p.248) _ <달의 골짜기>

세상의 무심함에 떠밀리듯 살아가는 이들이 다양한 배경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던 일곱 편의 이야기. 응축적이고 간결하지만 섬세하고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묘사하는 문장이 돋보였던 것 같다. 뭐라해야할까. 인물들의 감정과 삶이 희미하고 뿌옇게 보이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겠는 그런 기분이랄까.. 불완전하기도하고 불안하기도 했으며, 슬프기도 하고 굉장히 서럽기도 했다. 아무튼, 난... 각각의 이야기는 고요한 듯 했지만 읽는내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요, 우린 비명을 지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잠을 못 자고요. 그럼에도 내일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들에게 유령이 나오는 장소는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기꺼이 다른 땅을 물색해보겠다고 제안하고, 그들 모두 과거에 다른 어딘가를 떠나 성공해본 사람들 아니냐고 묻습니다. 제가 이 모든 걸 물을 때면, 그들은 하나같이 삼백 년 전 일본이 침략해 온 일을, 그리고 사찰들과 선교사들과 유럽에서 온 배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유령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p.199)_<벌집과 꿀>




그는 내일로, 그리고 그다음 날로, 또 그다음 날로 이어질 모든 길과 대로를 떠올렸다. 날이 점점 더 밝아왔다. (p.256) _ <달의 골짜기>


어쩌면 우리와 다를게 뭐있나 싶었던 그들의 이야기에 책을 덮고 보니 마음이 울컥하는 부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 자신만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 『벌집과 꿀』 ...




#벌집과꿀 #폴윤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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