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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평점 :
창비 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열두 번째 『시작하는 소설』
이번에는 '시작'을 테마로 10대 청소년의 성장부터 20대의 첫 출근, 70대의 사랑까지... 연령대별의 삶에서 할 수 있는 시작의 모습을 담아냈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순간순간의 시작점이 있을 우리의 인생. 다양한 시작점에서 보여주는 도전의 발걸음, 한 걸음 내 딛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불안함, 두려움, 망설이는 마음, 기대되는 마음... 등등.. 한 걸음 시작되는 삶의 한 장면에 응원을 받게 되는 작은 선물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고 모두 좋았지만 그래도 그중에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 ,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 이렇게 두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특히 김화진 작가의 <근육의 모양>에서는 재인과 은영을 통해 무언가의 시작 또는 도전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끊어내는 관계와 부서지는 관계. 반대로 이어지는 관계가 반복되는 우리의 삶 속의 인간관계 내면을 보여준 것 같다. 은영이 느꼈던 거리감이, 재인이 경험한 사람을 보았던 시선과 사람 관계가 가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뭔가 복잡한 감정들에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았다.
끝없는 물음표를 찍고 싶었지만 곧 모조리 지워 버렸다. 은영은 속에 담긴 말을 고르다가 결국 가장 건져 올리기 싫었던 문장에 머무르게 되었다. 바쁜 게 아닐지도 몰라. 힘든 게 아니라…… 힘들어도 이제 나랑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
자신이 느낀 거리감의 정체를 알고 나니 멋쩍은 동시에 아득해졌다. 회사를 그만두며 가장 씁쓸했던 것은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시점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이해시키던 문장. 그 문장이 멀리 돌아 고스란히 은영에게 도착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p.98~99)_ <근육의 모양>
과거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었지. 내 기준이 뭐든 간에 나를 좋아해 주는 태도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와락 좋아하고.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게 너무나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받는 게 중요해서 상대방의 표정만 살피고 자신의 표정도 비슷하게 지어보려고 있는 힘껏 노력했던 시기가.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지금과는 정반대의 생활 방식이 재인에게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태도를 서서히 철거하며 재인은 그건 자신의 생존 본능에 가까웠던 거라고 짧게 결론지었다.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p.106)_ <근육의 모양>
이야기 말미에 남긴 재인의 생각.. 관계들의 기록이 누군가 해하여 남은 흉터가 아니라 자신이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라며 그것을 근육이라 말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었다.
정소현 작가의 <어제의 일들>에서는 과거 학교폭력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해 입은 주인공이 되돌릴 수 없는 지난날들을 잊어가고 지금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의 사과와 지금을 응원하는 게 맞는 건지 갑자기 내적 분노가 생기기도 했던 이야기. 그렇게 외면당했던 주인공이 '작가'로서의 새 인생의 시작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그런 이야기.
외면이라는 단어는 과거 많은 사람들이 내게 보여 주었던 차가운 얼굴과 표정 없는 뒷모습을 하나하나 불러왔고, 그때의 기분이 기억나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빨리 시작했다. (p.149)_ <어제의 일들>
"모든 게 화무십일홍인 거라. 후회하고 원망하고 애끓이면 뭐해.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닫고 들어가면 다 똑같아.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 (중략) 그리고 이해할 수없이 복잡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 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p.156)_ <어제의 일들>
무언가의 시작을 앞둔 이에게 건네는 용기와 응원이 담긴 일곱 편의 이야기 『시작하는 소설』 .. 새해가 시작되니까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점에 있는 친구나 지인에게 소소하게 선물하기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D
#시작하는소설 #창비교육 #테마소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