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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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밤의 행방』

 

귀염뽀작한 나뭇가지 '반'. 반은 죽음을 볼 수 있는 죽음의 안내자이다.

사람과 닿으면 그 사람과 관련된 죽음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나뭇가지이다.

주혁은 '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티격태격 이들의 케미가 기대되는 가운데..

누나가 용한 점쟁이가 되려 했으나.. 기도터에 들어간 누나대신 반의 능력으로 찾아오는 이들의 점을 봐주게는 주혁.

 

점을 봐주면서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각각의 에피소드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가출, 성희롱, 아동 학대, 비리, 대형 참사.. 현실에서도 접하게 되는 사건들인데.. 절대 가볍지 않은,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밤의 행방』에서 주혁의 이야기만 언급해보자면..

주혁에게도 아내와 딸이 있었는데.. 딸 수아는 수련원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 했다.

1999년도에 있었던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주혁의 이야기.

분명히 그것은 인재. 수많은 사람들에게 남긴 깊은 상처.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일..

아픈 기억을 꺼낸 주혁. 반과 나눈 대화는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 같다.

 

 

- 사실 선이라는 게 원래 그래. 삐죽빼죽하고 아무 데나 부딪히고 구부러지거나 부러지기도 쉽고. 다 나름대로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지. 팔뚝에 힘이 붙으면 애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선을 몇 개든 그려낼 수 있어. 그럼 어엿한 면이 되는 거지.

- 면이요?

- 면, 단면 말이야. (p.110)

 

 

 

- 그럼, 삼십대엔?

- 도형. 삼십대엔 입체도형을 하나 갖게 돼. 근데 그게 참 보잘것없거든. 가까스로 세워놔도 쉽게 찌부러지는 애물단지지. 그래도 노력해온 게 있으니 다들 그걸 지키고 싶어 해. 인간으로서의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봐야지. 지킬게 생기면 인간은 끈질겨지거든.

- 그때까진 인간이 아닌 건가요?

- 뭐, 기대하진 말아야지.

- 단순하다더니 엄청 복잡하네요. (p.111)

 

 

- 그런데, 어떤 인간은, 도형을 망가뜨리고 말아. 터지고 납작해진 것을 움켜쥐고 죽을 때까지 살기도 해. 자신의 도형뿐 아니라 타인의 도형까지 짓밝고 망가뜨리면서 죽지도 않고 뻔뻔하게, 살아. (p.112)

 

 

- 그러고 보니 인간으로 따지면 너는 아직 십대겠구나.

- 왜요?

- 왜긴. 넌 그냥 선이잖아. 선 그 자체.

나뭇가지가 한숨을 쉬었다.

-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 모르겠다.

-사십은 넘었죠?

- 한참 넘었지.

- 그럼 아저씨 도형 안엔 뭐가 들어 있어요?

- …… 아무것도.

- 아무것도?

- 아무것도 없다, 내 도형 안엔. 도형 자체도 없어. (p.113)

 

 

 

주혁의 비어진 마음을 채울 수 있긴 할까..

반과 나눈 대화가 먹먹하고 울컥.. 인생을 점, 선, 면, 도형으로 바라본 주혁의 시선이..

그 시선에 담긴 생각들이 너무나 아프게 와닿은 것 같다...

 

 

 

 

 

죽음을 투시하는 '반'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로 여실히 드러난 사회적 문제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죽음이 아닐까...

꺼내어 보기도 아픈 사건들을 이 책을 통해서 마주하니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인간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낸 참사.. 다시는 그런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도 생겼다.

 

 

다시는. 이제 다시는.

 

 

자음과모음 새소설 시리즈 세번째 『밤의 행방』..

안보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고.. 전작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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