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구판절판


아무리 게임에 몰두하고 담배를 피워대도 녀석에게 시간은 마치 재미 없는 예술 영화의 장면들을 느린 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처치 곤란한 괴물이었다. -71쪽

김중혁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난 뒤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 일이다. 그건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새롭게 발전된, 단지 생존을 위한 종의 진화라고 볼 만한 문제였다. -116쪽

소비의 첨단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타지마할, 코엑스몰-146쪽

그는 단지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겨울철 혹한의 추위로 얼어붙은 길거리의 하룻밤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루살이와 같은 생존 본능에 완벽히 길든 노숙자의 심리다. 우선 살아남고 봐야 한다.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205쪽

밀폐된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상황 자체 때문에 폐쇄 공포증을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공포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은, 자신이 그 공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적 생각에 스스로 사로잡히는 시점이다. 그러한 절망이 자신을 압도하게 되면 온몸이 화석처럼 굳어가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228쪽

하지만 녀석의 무모한 열정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덩치 큰 녀석이 뒤집어쓴 양머리통을 기어이 벗거내는 순간, 그래서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된 다소 둔해 보이는 덩치 큰 녀석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개봉되는 순간, 기무가 그 녀석이 양이 아닌 명백히 살아 숨쉬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날마다 패스트푸드나 먹어대며 살아갈 그렇고 그런 청춘임을 확인하는 바로 그 순간, 열정을 박살나고 판타지는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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