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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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국의 68혁명 당시를 체험한 로맹 가리의 수기 소설. 그야말로 미쳐돌아가는 세상이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문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무엇이라도 수단으로 삼아 함부로 사용해도 괜찮다는 막가파식의 폭력의 논리들.

수세기 동안 당해온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으려는 흑인,
죄의식 때문에 생각의 균형을 잃고 흑인을 무조건 옹호하는 백인,
자기 피부색을 만능열쇠처럼 내세워 먹고사는 ‘직업 흑인’,
돈으로 죄의식에서 해방되려는 백인,
백인의 죄의식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흑인,
기부금을 내며 생색내고 싶어 안달하는 할리우드 스타,
흑인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영웅 행위로 포장하는 흑인,
모두가 보는 앞에서 ‘흰 개’를 불태우자는 백인,
겉으로는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면서 흑인 폭동에 겁먹고 ‘흰 개’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백인…….

인간은 원래부터 이기적인 동물인가.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다 노골적으로 자신이 욕망을 위해서 달려가기만 한다. 이 와중에 훈련받은 대로 주인을 공격하고나서 순간 멍해진 흰 개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아프다.
________

개는 단숨에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손목을 한 번 물리고 뒤로 굴렀다. 내 목덜미가 벽에 부딪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눈을, 충직한 개의 눈을 보았다.
바트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쓰러진 동료들이 내 곁에서 죽어가는 것도 보았지만, 절망과 이해할 수 없음과 고통의 표현이 어떠할지 떠올리고 싶을 때면 이 개의 눈길을 더듬는다.
녀석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비통한 울음을 울었다. 캄캄하고 슬픈 울음이었다.
그러곤 바로 밖으로 사라졌다…….

흰 개 | 로맹 가리, 백선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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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광기 열정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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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는 ‘발자크 / 디킨스 / 스탕달 / 카사노바’의 전기가 이어진다. 디킨스의 작품들은 한동안 푹 빠져서 여러 작품 탐독하기도 했지만, 스탕달은 <흑과 백>,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 밖에는 읽은 것이 없어서 전기 속의 내용을 실감나게 읽지는 못했다. 특히나 ‘세기의 호색한‘이라고만 알고 있던 카사노바가 문학작품을 썼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됐다.

<발자크>

- 그가 나폴레옹의 초상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적었던 것도 헛된 일은 아니었다. “그가 칼로써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펜으로 이루리라.“ (15쪽)

- 젊은 시절의 발자크는 누추한 다락방에서 굳은 빵, 형편없는 식사로 끼니를 때웠고, 테이블의 접시 가장자리에는 분필료 표시를 해두었는데, 그 한가운데에다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 이름을 적어두었노라고. 그런데 그 이유인즉 딱딱하게 굳은 빵을 깨물면서 단지 의지의 암시를 통해 가장 값비싼 음식 맛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29쪽)

- 놀라운 것은 재빨리 움직이는 상상의 속도이다. 그의 능력은 남들이 사방에 걸치고 수없이 둘러입고 응시한 것을 적나라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38쪽)

-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작품이다. 열여덟 권 안에 한 시대와 세계, 한 세대가 들어 있는 것이다. … <인간희극>의 초안 속에는 완성된 소설 외에도 미완성 소셜 및 미처 손대지 않은 40여 권의 소설이 있다. (43쪽)

<디킨스>

- 당시의 사람들은 벽난로 예술을 원했다. 폭풍우가 몰아쳐 기둥뿌리를 뒤흔드는 동안, 난롯가에서 기분좋게 읽힐 수 있고 또한 그 자체가 가볍고 태만한 불꽃을 여기저기서 날름대어 가끔씩 긴장을 돋우는 그런 책들을 원했다. (53쪽)

- 디킨스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가 겸허하다. … 그들의 이상은 세속적이고 소시민적 이상이다. 이런 눈으로 보아야 디킨스의 인물이 제대로 밝혀진다. (58쪽)

- 수백만 인간들이 그의 책을 읽을 때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리고 웃음이 시들고 사라진 수천 명의 인간들 가슴속에다 그는 잃어버린 웃음을 새롭게 이식시켰다. 그의 영향은 이런 면에서 문학적인 것을 초월하였다. … <올리버 트위스트>가 출간되었을 때, 불쌍한 어린애들은 길거리에서 더 많은 적선을 받았다. 정부는 빈민들의 집을 개량했고, 시립학교들을 통제했다. 영국의 동정심과 복지는 디킨스로 말미암아 한층 강화되었고, 수많은 빈민들과 불행한 사람들의 운명 또한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79쪽)

<스탕달>

- 나는 가면쓰기를 가장 즐기기에 이름을 바꾸었다. __스탕달 편지 중 (84쪽)

- 스탕달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그는 결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거나, 영혼을 감동시키지 않는 사건들에까지 정신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 시대사와 그 개인의 역사는 마치 다른 문자와 다른 어휘의 소선인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스탕달은 주변세계에 대해 무책임한 대신에 자기 사계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탁월한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고도 가장 가치있는 에고이스트. (137쪽)

<카사노바>

-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서술했고, 그것이 그의 문학적 최대 업적으로 남게 되었다. 5편의 장편소설, 20편의 희극, 다수의 단편소설과 삽화들, 매혹적이고 박진함 넘치는 상황설정과 일화들이 생생한 하나의 인물로 압축되었던 것이다. … 동시대의 어떤 작가도 상황과 변화라는 면에서 카사노바가 체험한 것처럼 그렇게 많은 것을 창안해 내지 못했다. (176쪽)

- 카사노바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 그리고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가 빌렸던 생갈트의 기사라는 칭호보다 그를 더욱 귀족처럼 보이게 하는 남자다운 구호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198쪽)

<천재 광기 열정 2>, 슈테판 츠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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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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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들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 마지막 2년의 기록이다.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가 독일의 침공으로 정치가 불안해지면서 모든 것을 잃고 어려운 삶을 살다가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자살했다. 비극적인 삶이었고 돈에 쪼들리는 신세였지만, 잔혹한 전쟁과 나찌 독일의 부당함에 침묵하지 말자는 메세지를 끊임없이 세상에 내보낸다. 오스트리아 인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는 처지를 개탄스러워하기도 하고, 언어는 물론 니찌독일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에 대해서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좌절한다.

책 안에 들어있는 <센강의 낚시꾼>은 그런 좌절에 빠진 츠바이크가 프랑스 혁명사를 공부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인간에 대한 변명이자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에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행동 방식 패턴‘이었다. 혁명의 정점인 루이 16세 참수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느긋하게 미끼를 던진 낚시꾼들의 무관심을 1940년 전쟁 최전선에서 매일 접하는 새로운 충격적인 보도에 아랑곳하지 않는 동시대 사람들의 무감각과 비교한다. 이는 사람들이 원래부터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시간 예측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배가 침몰하고, 무방비 상태의 아이들이 폭탄에 죽고, 수천 명이 추격을 당하고, 제국이 무너지고, 모든 권리와 인도적 관습이 무시되는” 1940년 당시에 사람들의 공감 능력은 과부하로 인해 녹초가 되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고, 그는 이런 현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극의 규모가 특정 임계점을 넘으면 인간의 이해력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게 되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과도한 충격을 회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자의 폭압에 억눌려 안전한 집에 가만히 머물던 사람들과 너무 오래 나 몰라라 내버려두다가 결국 자기들도 위협을 받은 다른 국가들의 거대한 침묵에 괴로워했다.

읽을수록 하나씩 알게되는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사람, 어쩐지 매력있다. 선하고 베풀기 좋아했으나 시대의 파고를 넘지못하고 애쓰다 결국 스러져버린 양심같은. 문체도 글도 일목요연하게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것이 읽기에도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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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쁨 역시 암울해지고, 우리의 휴식 시간도 고통스러워졌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언어를 빼앗기지 않았고, 육체가 폐를 통해 숨 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그 언어를 통해 숨을 쉰다. 영혼이 억압받으면 우리는 말을 통해 그것을 해방할 수 있고, 자신 있게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4000만 명의 형제들에게는 약자의 마지막 무기인 희망과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수천의 가정, 수백만의 마음에서 이런 간절한 비밀 기도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영원한 정의가 그들의 침묵의 외침을 듣게 되리라 뜨겁게 확신할 수 없다면,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 배명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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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츠바이크 선집 (하영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하영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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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광기와 우연으로 결정되어버린 역사의 장면장면들을 특유의 문체로 재미있게 풀어주는 역사 쇼를 보는 느낌. ‘큰별쌤의 한국사 강의’의 세계사 버전쯤되는 것 같다. 소개하는 이야기들이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실감나던지. <유시민의 거꾸로읽는 세계사>를 읽을 때 느꼈던 감동, 역사에서 요즘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교훈을 쏙쏙 뽑아먹는 쾌감을 츠바이크의 책에서도 느끼게 된다.

1. 키케로의 죽음과 로마 공화국의 종말
2. 동로마 제국의 종말
3. 불멸을 향해 질주하다
4.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부활
5. 하루살이 천재의 비극
6. 세계사를 결정지은 워털루 전투
7. 괴테의 마지막 사랑
8. 황금의 땅 엘도라도의 저주
9. 죽음을 경험한 예술가
10. 미국과 유럽을 잇는 해저 케이블
11. 톨스토이의 마지막 날들 - 1910년 10월 말
12. 남극 정복을 둘러싼 경쟁
13. 봉인 열차
14. 윌슨의 좌절

개인적으로는 키케로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일전에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읽으려고 책을 폈다가 세계사 지식이 얕은 관계로 도통 흥미를 느끼지못해 다시 덮은 적이 있는데, 키케로 이야기를 읽고나니 다시 그 책을 펼쳐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는다. 이젠 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고보니 세계사의 중요한 국면중에 ‘우연‘이 만들어낸 웃지못할 혹은 통한의 결과가 얼마나 많았는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가 생각나기도 하고. 뭐가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무엇이든 다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던가. 지금을 사는 나의 태도를 단속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해주는 역사이야기, 교훈이고 뭐고 일단 재미있어야 읽을텐데 그런 측면에서는 슈테판 츠바이크는 상을 크게 받아야 할 작가인듯. 츠바이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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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힘 있는 자와 힘을 휘두르는 자들을 찾아온다. 그러고는 여러 해 동안 단 한 사람만을 노예처럼 섬긴다. 카이사르, 알렉산드로스 대왕, 나폴레옹의 경우가 그렇다. 운명 자체가 파악할 수 없는 원초적 존재이니만큼 운명은 자신을 닮은, 원초적 힘을 지닌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운명은 야릇한 변덕을 부리며 별로 대단치 않은 사람에게 자신을 내맡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세계사에서 몹시 불가사의한 순간이 되곤 한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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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구 여행기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문경연 지음 / 뜨인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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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베까지 만년필 구경하러 훌쩍 혼자서 여행을 떠나본 적은 있지만, 이런 열정으로 문구를 대해 봤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대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어쩐지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정말 많다. 더군다나 남들이 ‘왜 그런 데에다 돈을 써?’ 하는 말을 하게되는 취미에는 특히.
책을 산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는데, 내 경우엔 이상하게 만년필이나 필기구, 문구를 사모은다고 하면 그런 반응이 많다. 그냥 좋아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전문가가 되면 그런 반응들은 쑥 들어가려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떻게, 어떤 방식의 전문가가 되면 좋을까 고민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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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게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야.”
그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다. 좋아하는 것을 당연하게 행동으로 옮기고 이야기하는 당당한 모습. 작은 행동과 문장에서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문구 여행을 하는 나에게는 없는 태도다.

문구를 좋아해서 여행까지 떠나온 나지만 애인을 제외하고 단한 번도 이 여행을 ‘문구 여행’이라고 제대로 소개한 적이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긴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 문구 여행이라고 쉽게 말했을지 몰라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겐 ‘문구 여행’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문방구 주인이 꿈이라는 말도, 문구를 너무 좋아해서 월급의 절반을 다 써버린다는 말도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하지 않았고 신나는 감정을 억눌렀다. __95-97쪽

나의 문구 여행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 문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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