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 버티기 장인이 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을 위한 열두 빛깔 위로와 공감
박윤진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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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읽은 독특한 책. 소설인듯, 에세이인듯, 철학책인듯, 고전을 재미있게 해석한 설명서인듯. 바쁘게 회사생활을 해나가는 13명의 현대인을 주인공으로, 한번씩 읽어봤을만한 고전 또는 유명한 책들을 그들의 생활과 결부시켜 해설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신』, 『닫힌 방』, 『호밀밭의 파수꾼』, 『자기만의 방』,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책부터 『짱구는 못 말려』 같은 애니메이션까지 굉장히 다양한 작품들이 포진되어 있다. 이들이 현대인의 생활모습과 어떻게 맞물려서 설명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식견이 그대로 들어나는 글솜씨와 각 작품들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이 정말 마음에 든다. 왜 고전을,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이런 독서가 나의 생활을 어떻게 값지게 하고 의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를 절감하게 하는 아주 좋은 예가 되는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다. 책 속에 실려있는 책들 중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은 기꺼이 찾아서 읽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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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차장은 브뤼노의 삶에 깊은 공감과 존경을 느꼈다. 손 차장이 보기에 브뤼노의 삶에는 달나라와 돈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지 않았다. 두 나라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화해되고 조화되었다. 그래서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가족과 자신의 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은 가족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만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이 고독한 단독자의 작품이라면, 브뤼노의 섬은 화목한 협력자의 작품인 것이다.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 박윤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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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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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나의 의견이 생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 다 사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 어느 구석 어떤 자리에서 우리를 엿먹이려는 의도가 꾸물꾸물 솟아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에게 귀기울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독서이기 때문에.

글쓰기는 독서의 완성.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다루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 작가가 쓴 컬럼의 글들을 모아서 나온 책. 역시 독특한 생각을 알아보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남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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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쓰이는 표현이 바뀐다. 우선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수정됐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내걸었던 단어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즐겨 쓰는 ‘자유’란 주로 시장과 기업과 자본가와 노동시장 상층부를 장악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노동시장의 하층부, 빈곤층,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어린이 등의 자유에 대한 무관심은 노골적일 지경이다. 노동하는 사람을 능동적 주체로 인정하는 ‘노동자’라는 말도 개정안에서 사라졌다. ‘성평등’과 ‘성소수자’도 사라졌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그간의 치열한 투쟁을 지우는 변화다. 이를 두고 인권위는 인권 담론을 후퇴시킨다며 우려했으며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천여 명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결정권은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갔다. 근미래의 교과서는 세계의 커다란 일부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필독서가 될 터다.

이것은 명백히 퇴보다. 그러나 현 정부가 퇴보하는 와중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라난다. 이 퇴보를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어떤 말이 지워졌는지 잊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지워진 말을 아이에게 가르치길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유가 편협하고 빈약한 언어에 한정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라영 작가는 『말을 부수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권력의 망언이 난립하는 가운데서도 이에 맞서는 언어들도 지치지 않고 생성된다. 바로 그 지점에 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날씨와 얼굴 | 이슬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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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 지식을만드는지식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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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시리즈

드디어 완독! 백치 1권 776페이지, 백치 2권 804페이지. 세상에...

‘죄와 벌’ 읽을 때도 그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을 때도 그랬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정말 대단한 작가같다.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당위성을 절감하게 해주는 작품들이라는 생각. 이토록 많은 인간군상과 그들이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요즘 우리의 삶에서도 거울처럼 그대로 비취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이토록 많은 생각들을 종합해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닐텐데.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길은 정녕 ’백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남는다. 처음에는 그토록 비웃던 순수청년 미쉬킨을 등장인물들 모두가 추앙하고 존경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이러니. 그러나 정작 그런 순수한 미쉬킨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순수함 때문에 상처받고 죽임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결론도 신박하다. 너무 사실적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던 작품이라는 사실에 비하면 대중적인 인기는 그리 구가하지 못한 소설인듯. 많이 장황하긴 하다. 그래도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은 재미있는 작품. 언제라도 다시 재독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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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꼴 때문에 사상이나 위대한 이념을 훼손하지나 않을까 늘 두렵습니다. 전 적절한 제스처를 취할 줄 모릅니다. 전 언제나 말과 반대되는 제스처를 취하기 때문에 이것이 웃음거리가 되고, 사상을 비하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균형감도 없습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이것이 심지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앉아 있는 게 낫다는 걸 잘 압니다. 전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앉아 있을 때, 심지어 상당히 분별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생각할 시간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 전 말을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여러분이 너무도 아름답게 절 바라보고 계시기에 전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합본 | 백치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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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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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허풍선이 떠돌이 세일즈맨 아버지를 가졌다면 나는 절대 참지 못했을거 같은데— 사실은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젊어서 어머니에게 가정을 내맡기고 천천히 차를 몰아 여기저기 다니며 동네 일 다 참견하며 세일즈하고 돌아와 집안에선 무기력하고 왜소해지는 아버지라니. 거기다가 느즈막히 병을 얻어서야 집안에 머물며 알 수 없는 농담에 아재개그만 날리는 중년의 남자라면. 아 짜증 폭발.

작품 속 화자가 아들이라서일까?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신화 속의 영웅처럼 상상한다.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하고 온갖 모험 속에서 살아남는. 그러나 화자가 딸이었다면? 아마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전에 극장에서 영화로 먼저 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도 ‘이게 뭐지?’ 싶어서 찝찝했던거 같기도. 이런 류의 허풍스런 인물이나 환타지적인 전개는 내 스타일이 아닌걸로.

‘아버지’를 주제로 한 작품 중에서는 역시 ‘아버지의 해방일지’만한 것이 없는것 같다.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이런 정서는 좀 불편하다. 막판에 제인이라는 여자와의 관계를 환상적으로 미화한 부분에선 화가 날 정도. 신비롭게 그려서 그렇지 사실은 현지처랑 뭐가 다른가. 명성에 비해 공감하기 쉽지 않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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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 걷는다. 어두컴컴한 데서 앞을 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에 집이 나타난다. 집이다. 그런 것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운 진흙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지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은 오두막도 아니고 분명히 집이었다. 작긴 했지만 사방에 벽이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집에 가까이 갈수록 물이 빠지면서 땅이 굳어지고 그가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나왔다. 그는 내심 미소 지으며 생각한다. 이제 길이 없으리라고 단정 지을 때, 그리고 더 이상 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 길이 나오다니, 참으로 재미있고 또 참으로 인생살이 같다고.

빅 피쉬 | 다니엘 월러스, 장영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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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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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여인들의 일대기가 옛날 이야기처럼 입담좋은 동네 아저씨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듯 이어지는 소설같지 않은 소설. 환타지도 들어있고 파친코 같이 이야기 속에 우리나라 근대사의 면면이 드러나며 무엇인가가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한마디로 정의하긴 워낙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지만, 아뭏든 재미있다. 두꺼운 책인데 한 번도 쉬지못하고 줄줄줄 계속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일제시대 전부터 시작해서 노파, 금복, 춘희 세 여자의 삶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무대는 숲속 시골마을, 바닷가 덕장, 벌을 키우는 양봉얘기에서 극장, 야쿠자 두목, 거렁뱅이 이야기로 흐르다가 서커스 코끼리, 다방, 궁극에는 벽돌공장과 교도소까지 이르른다. 띄엄 띄엄 들어서는 전혀 맥락이 닿지 않을 테지만, 이 모든 것이 세 여자의 일생과 기묘하게 맞물린다.

이 작품으로 천명관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됐다. 2004년 작품인데, 이런 글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뭘 하고있었나 되짚어보게도 됐고.

올해 읽은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같은 작품.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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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이 둥근지 미처 몰랐어.
바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가 둥글어.
벽돌은 네모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걸로 둥근 집을 지으면 결국은 둥근 거지.
네모난 집을 지을 수도 있잖아.
그래, 하지만 네모난 집이 모이면 둥근 마을이 되잖아.
그렇군.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 아주 먼 데.

고래 | 천명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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