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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그늘 1
박종휘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2월
평점 :
2015년 출간된 [태양의 그늘]이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파친코]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면 [태양의 그늘]은 광복이후 남과 북으로 첨예하게 이념논쟁이 한창이던 어수선한 우리나라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서평단으로 선발되어 읽어본 1편에서는 '이승만', '여순반란사건', '4.3사건', '빨치산'과 같은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부농의 막내딸로 자란 총명하고 당찬 아가씨 윤채봉. 마을에서 이웃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다가 역시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반듯하게 자란 청년 남평우와 우연한 계기로 결혼하여 알콩달콩 산다. 남평우는 일본유학 후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소소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소박하게 사는 안온한 삶을 지향한다. 그러다가 찍은 사진이 공모전에 당선되고, 그 사진이 후에 엉뚱한 제목을 달고 여순반란 전단지에 실리는 바람에 공산당으로 몰려 끌려가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한편, 공장을 운영하던 채봉의 큰 오빠는 좌익의 선동으로 파업이 잦아지자 경영이 어려워져 자살하게 되고, 6.25 이후에 악덕지주로 몰려 아버지와 오빠들이 줄줄이 즉결처형될 위기에 놓인다. 이를 알게된 채봉은 마을에서 일하는 인민군 간부직을 수락하고 가족들을 빼낸다.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시어머니는 상심끝에 목을 매어 자살하는데, 사실은 총살을 위해 착출된 군인이 바로 자신이 학당에서 가르치던 제자였던 것. 제자의 도움으로 평우는 부상만 입은 상태로 도주하여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가 화전민 노인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남편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비밀리에 전해듣고 어디엔가에 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 믿는 채봉은 인민군들이 북으로 역피난을 갈 때 네 아이들과 함께 빨치산 대열에 합류한다.
함께 길을 가던 빨치산 일행과 뒤쳐진 채봉은 천신만고 끝에 남쪽 피란민들 무리에 합류하여 국밥집에서 머물렀는데, 거기서 남편을 찾아나선 친척 아저씨 조후하여 남편의 소식을 듣게된다. 결국 깊은 산속에서 채봉과 평우는 다시 만나고, 얼굴도 보지못한 막내아이 소식에 눈물을 흘린다. 빨치산을 소탕하러 산을 향해 올라오는 국군의 총소리. 꼭 살아남으라는 약속을 하고 채봉과 평우는 다시 혜어진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백성들 입장에서는 마음놓고 숨조차 함부로 쉬지못할 불안하고 답답한 시기였을 것 같다. 책 읽으면서 내내 인물들이 느꼈을 긴장감과 불안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 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박종휘작가가 직접 만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삶을 살아오신 분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먹먹함과 마음저림은 어떠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만났다 다시 헤어진 채봉과 평우는 어찌 되었을까? 앞으로 또 얼마나 심하고 기막힌 일들이 그들에게 펼쳐질까 생각하니 궁금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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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참! 아들은 공산당 놈들이 유도하는 파업 때문에 죽고, 사위는 공산당으로 몰려 잡혀가고, 나는 어느 놈 멱을 따야 헐지 모르겄다."
_208쪽
"윤채봉 씨! 너무 늦었지만 한 가지 말해줄게요. ......개인도 정부와 싸울 수 있어요."
"그런데요?"
"그러나 개인은 정부와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_229쪽
아! 태양!
조국이 그렇듯이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태양!
_270쪽
"삼 일 전 처형장에서 도망쳐 어르신을 뵙게 될 때까지 저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살려고 바둥거리는 짐승이고 벌레였습니다."
"사지에서 도망치는 놈이 품위 지키는 거 봤나? 내가 보기엔 사흘 동안 살기 위해 몸부림친 자네야말로 가장 인간적이었네."
"그럼 이전의 저는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이전에도 자네는 분명 남평우였지. 자기 자신을 지금처럼 잘 알지 못하는......"
"지금 제가 무엇을 더 깨달았다는 말씀이신지요?"
"자네가 스스로 자신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거지. 자신을 위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위할 수 있겠는가."
_227쪽
"일이란 것이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을 때 도와주는 것보다 내가 안 하면 누구 하나 대신 해줄 사람이 없을 때가 훨씬 힘들고 고달프지."
_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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