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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로버트 파우저 지음 / 혜화1117 / 2021년 9월
평점 :
이렇게 어마무시한 사람이 있다니! 외국어 배워서 사용하고 가르치기에 능통한 사람이 바로 저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더우기 미국인으로서 한국의 사회, 문화, 역사, 경제, 정치 등 모든 것을 두루 통달하고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백과사전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책만 훑어봐도 인용되고 있는 자료들이 지도, 문헌자료, 사진 등 엄청 다양하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특히 부모님들과 상담하면서 아이들이 ‘왜 영어를 배워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난감하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무작정 암기해야 하는 단어들, 와닿지않는 영어문장들을 매일매일 몇 시간씩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는 애들에게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정말 꼭 해야하는 것인지 설득하는 일이 큰 일일 수밖에.
저자는 외국어배우기의 역사에 대해서부터 설명하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부와 신분의 과시를 위해서,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식민지 수탈과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자본주의 시대에는 국제적인 경제교류를 통한 더 많은 부의 창출을 위해. 다양한 세계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외국어를 배웠던 것이 궁극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과연 외국어배우기의 의미가 외부세계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 뿐인 것인가.
현재의 화려한 IT기술은 더이상 힘들여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외국에 나가봐도 그 나라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언어를 배우는 것은 결국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될 것인가’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결론이다. 작가는 진보한 기술이 우리에게 인간대인간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교류와 마음의 흐름까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마음에 연결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저자의 세계를 보는 따스한 눈과 동서양 역사와 문화를 꿰뚫는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책을 덮을 때는 그가 내린 결론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늘 마음속에 이런 느낌을 담고 아이들 앞에 서야겠구나 싶다. 모처럼 속이 든든해지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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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시대, 외국어 전파의 과정은 더 이상 ‘의사소통 도구’의 확보를 목적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갈등을 완화하고 나아가 그 원인을 없애기 위한 상호 문화의 이해와 개인의 교양 증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 흐름이 가닿을 곳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평화다.
이 시절을 보내며 우리가 다시 발견한 것은 뜻밖에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체온을 느끼며 나누는 대화와 소통의 가치다. 어떤 기술의 진보를 통한 매끄러운 번역도 직접 만나 온기를 느끼며 나누는 서툰 소통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설적으로 놀라운 기술 진보의 세례를 받으며 깊이 깨달았다.
기술의 진보는 앞으로도 눈부시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진보한 기술이 우리에게 평화와 화해를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역할이며, 그것이 이후에 펼쳐질 모든 외국어 전파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정판 | 외국어 전파담 | 로버트 파우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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