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란 쿤데라 작품 중 구입해놓고 읽지않았던 책이라 이제사 읽어봤다. 마치 종교처럼 모든 생활과 정신을 점유해버린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버린 사람들. 어떤 이는 인간성을 잊어버리고 잔인한 짓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못해 스스로 물러나거나 절치부심으로 돌아와 복수를 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진다.
혁명이 종교처럼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개인적인 울분으로 했던 농담이 자신의 성공가도를 날려버린 남자 루드비크. 자기를 그렇게 만든 친구에게 복수하지만 이미 그 친구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조금 다른 스탠스를 취하며 또다른 세계에서 자리를 잡아버린 행복한 친구의 모습에서 허탈함을 느낀다. 세상이 달라졌다. 이데올로기가 빠져버린 순수함만 남은 상태에서 일행과 함께 어린시절 좋아했던 민속음악을 연주하면서 이제사야 마음의 평화를 얻지만 아끼던 절친 야로슬라프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야로슬라프라는 인물이 안쓰럽다. 옛 전통을 존중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사랑하는 민속음악에 매진하며 당의 선전 선통에 이용당하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나 행복하다. 그가 하는 음악은 이미 당의 입맛대로 가감되어진 절반의 민속음악이라는 친구 루드비크의 비난에 절망한다. 평생을 당의 명령대로 공연을 다니고 음악을 연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찾는 횟수가 줄고 그야말로 초라한 신세가 된다.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온 절친 루드비크를 자신의 민속음악 공연에 불러 함께 연주해줄 것을 청하고, 함께 행복한 연주를 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이데올로기의 무서운 점은, 목표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강박을 준다는 점인듯 하다. 간첩활동을 한 아버지도 고발하고 비판하게 하고, 그에 따른 처벌로 당에서 자신에게 벌을 주고 감시를 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농담 한 토막도 안되고, 자유도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냉정하게 가야 할 길 대로만 가야하는 것이다. 이런 강요가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몸에 맞지않은 옷을 억지로 걸쳐입은 듯 보이는 이들에게까지 퍼부어지는 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사랑이야기라면 <농담>은 철저하게 이데올로기 비판에 대한 이야기다. 달달함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듯. 그러나 어쩌면 쿤데라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이 책에 다 담겨있는게 아닐까 싶다.
_________

그는 공산주의자로서 자신은 어떤 경우든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나 역시 공산주의자이며(당에서 축출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거야.” 이 말은 나를 웃게 했다.
나는 그에게 책임이란, 자유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답했다. 자신은 공산주의자로서 행동하기에 충분히 자유롭다고 느낀다고. 자신이 공산주의자임을 증명해 보여야 하며, 그렇게 할 것이라고. 이 말을 하며 그는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오늘,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이 순간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알 것 같다. 알렉세이는 그때 겨우 스무 살 청년, 어린아이였음을, 그의 운명은 마치 아주 작은 몸 위에 걸쳐진 거인의 옷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음을.
농담 | 밀란 쿤데라, 방미경 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