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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6월
평점 :
아, 힘들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같이 분명하고 명쾌한 이야기를 읽고 난 아후에 버지니아 울프를 읽자고 집어든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도 뭐, 재탕 삼탕 하면서 줄거리 이해하려고 버둥버둥거리며 어쨌든 읽었다.
이야기 전체 구조도 독특하다. 1부: 창, 2부: 시간이 흐르다, 3부: 등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는 1차세계대전 전의 행복한 시절이야기, 2부는 10년정도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전후에 가족들이 일부 사먕하고, 주인공 격이던 램지 부인이 죽은 이후 1부의 장소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직전 상황을 짧게 그린다. 마지막 3부에는 1부에서 램지씨의 강요로 좌절됐던 등대까지로의 여행이 드디어 시작되는 이야기다.
[자기만의 방]에서도 느낀거지만, 여성의 독립정신과 영민함, 자존감 이런 주제를 깊이 생각하는 작가라는 느낌. 여성으로서 가정이나 공동체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격과 위치, 그에 상응하는 아름다운 태도 등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구구절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램지 부인의 예민하고 사려깊는 조정능력과 남편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 자녀에 대한 사랑은 가히 모범적이다. 화가인 릴리도 이 가족들을 관조하며 분위기를 읽고, 구성원 하나하나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정에 기꺼이 공감할 줄 아는 민감한 감수성의 소유자다.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무작정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결혼해서 남편말에 고분고분 따르며 수동적으로 지내는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가정과 주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며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능동적인 모습이기를. 마치 가만히 작은 섬 위에 초라하게 세워진 등대가 아니라 어두운 밤 바다에서 깜빡이며 불빛을 비추는 등대처럼 존재감 있는 여성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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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렇게 생겼구나, 제임스는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맞은편 만에서 바라보았던 등대라는 것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일 뿐이었다. 그는 만족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성격에 관해 어렴풋이 느끼던 바를 확인해 주었다. 나이 든 부인네들은, 하고 그는 집의 정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마 잔디밭에서 의자를 이리저리 끌고 있겠지. 가령 벡위스 노부인은 항상 인생이란 얼마나 좋은 것이냐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냐 그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야 할 것이냐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사실 인생이란 꼭 저 등대 같은 것이리라고, 제임스는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등대로 |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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