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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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망국의 왕에게 관심을 가지겠는가. 관심을 가진다 한들 유약하고 지친 왕의 모습쯤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사실 화가 날 것 같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순종을 눈여겨본 책이 나왔다. 순종을 다룬 첫 책이 아닌가 싶다. 역사책을 볼 때, 사극을 볼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 쓴 책이기에 우선은 믿음이 갔다. 


일제의 강제병합에 항거해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이 자결을 택했건만, 왜 일국의 왕은 그러지 않았을까? 이 책을 짚으며 가졌던 생각이다. 소설은 순종이 일왕 요시히토에게 굴욕적인 알현을 하기 위해 떠나는 순종의 도쿄 방문기를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종과 명성황후, 대원군을 비롯한 마지막 황족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무너져가는 왕조의 신하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살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포함해 믿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배신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왕, 자신과 왕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종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 순종의 마음을 날카롭게 표현해낸 저자의 글쏨씨에도 탄복했다. 예를들어, 안중군의 의거를 정세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정도로 생각했던 순종이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군함 따위가 아니다. 무기가 없다면 사람이 무기가 되면 되는 것이다. 단 한 자루의 칼도, 심지어 과도 하나도 가지지 못했지만, 내겐 그래도 몸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책을 놓으며, 명운이 다한 왕조의 왕으로 살아남은 순종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약한 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나는 승리도 생각해보지 못했고, 패배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기만 했다. 그물을 빠져나갈 생각 같은 것은 아예 떠올려보지도 못했다.”라고 고백해야만 하는 한 인간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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