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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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여성을 묘사한 작품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흑인 하녀를 담은 작품은 종종 보이지만 흑인 화가는 목격하기 어렵다.
왜일까?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후원자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그 후원자가 대부분 정치 권력자이거나 돈 많은 자본가인 백인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동차 사고로 부상당한 남자아이를 아버지가 병원으로 데려갔고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는 아이를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난 이 아이를 수술할 수 없습니다. 얘는 내 아들입니다."
이 짧은 글에서 혼란을 느꼈을 독자에게 저자는 의사가 아이 엄마였다는 점을 짚어주며 긴 세월 동안 전문직 노동시장에서 존재했던 성차별은 여전히 그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데님 유니폼을 입고 오른쪽 근육을 자랑하듯 드러내며 "We can do it!"이라 외치는 여성 노동자 로지가 등장하는 포스터는 생동감이 넘쳐보이지만 사실은 전쟁에 동원되어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한 산업현장에 여성을 충원하기 위함이었고 이마저도 남자들이 돌아오자 '여성들은 부엌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를 당했다.


흑인 여성은 미의 여신 비너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고,
선천성 다모증이라는 피부병을 앓았던 7세의 소녀는 애완용 인간이 되어 눈요기용 선물로 거래가 된다.
암을 앓고 있는 백인을 위해 살아있는 흑인의 다리를 잘라 백인의 다리에 접합하고,
발레리나의 어머니는 딸의 성매매 가격 흥정을 위해 딸 곁에 붙어다닌다.
여성, 장애인, 흑인, 성소수자, 어린이, 노인, 동물 등 수많은 마이너들은 재물과 권력관계에서 ​그저 소품으로 전락한 대상일 뿐이었다.
어떤 작품에서는 두려움이나 고통, 삶의 고됨이나 부조리조차도 저자의 해설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알 수 있을만큼 순응적인 자태로 읽혀지기도 했다.


서평단이 아니었으면 이토록 보물같은 책을 어찌 만날 수 있었을까?
어떤 이야기들은 두세 번씩 되돌아 읽고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찬찬히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우리가 예술이라 칭했던 작품들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시대를 증언하는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었고 그것은 명백한 자본 권력의 산물이자 희생양이었다.


작품 속 숨겨진 참모습을 읽어낼 수 있는 혜안을 기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하는 책이었다.
작가님의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도 읽어보고 싶다.


* 이 도서는 한겨레출판에서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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