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여길 좋아했었어요?나는 그랬다고 대답했다.아주 좋아했었다고.'돌이켜 생각해보니' 좋아했었다는 뜻이었다.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하던 주인공은 너무도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기어코 자신을 잡아끄는 마법과도 같은 사랑을 추억하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남자들의 우정 브로맨스이자 늦여름의 석양빛 같은 아득한 추억을 담은 이야기하버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다.종합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재시험을 앞두고 있던 7월의 하버드.도서관 알바와 프랑스어 과외로도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인생에서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결국에는 자신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쫒겨날 거라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이 세계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집트에서 온 유학생이었던 그는 이 모든게 신기루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쳐내며 하버드가 요구하는 삶을 살아갔다.⠀나는 이것저것 숨기는 게 많았지만 그는 솔직했다.나는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지만 그는 하버드 광장에서 목소리가 가장 컸다.나는 속 좁고 조심스럽고 소심한 반면 그는 무모하고 잔인하며 작은 불씨에도 곧 터질 화약고 같았다. (....)그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케잌브리지에 사는 거의 모든 주민과 말을 튼 반면,나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사 년째 공부했지만 그해 여름에는 거의 모든 날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은 채 보냈다. (P.72)온종일 죽치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어 찾아간 카페 알제,그곳에서 그는 자신과 전혀 다른 듯 묘하게 닮은 택시운전사 칼라지를 만난다.택시운전사와 아이비리그 학생, 아랍인과 유대인으로 얼핏 보면 접점을 찾아보기 힘든 두 사람이지만 이방인이라는 동질감으로 급격히 가까워진다.그들은 매일 카페 알제를 찾아갔고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만날 수 있었다.서로에게 아무것도 되어줄 수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된다.⠀⠀그는 끝내 알지 못했다.그가 다양한 삶의 방법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 다른 세상의 문을 더 열어젖히고 케임브리지에서 나를 끌어내려 하면 할수록,나는 하버드가 내미는 작은 특전과 잠정적인 약속을 더 절박하게 붙들고 늘어졌다는 사실을. (P.173)영원할 것 같던 우정은 계절이 변하듯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칼라지에게는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았으나 미국 영주권이 없어 곧 추방될 위기에 놓여 있었고,과장된 말투나 행동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자신을 감추기 위한 포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런 칼라지에게 주인공은 때때로 수치심을 느꼈고 그와 친구라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다.하버드에서 지내온 여러 해 동안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바로 칼라지라는 사실이 분명했지만 끝내 그를 부정했다.마음이 아팠던 것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변화를 칼라지는 다 알고 있었음에도 변함없는 태도로 대해준다는 점이었다.여자친구 와히다를 못 견디던 어느 새벽, 무작정 태우러 와달라는 전화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곧 갈게" 대답하는 장면,글을 읽으면서도 영상을 보는 듯 애잔한 두 사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모든게 불안했던 젊은 시절 관계 역시 서툴었기에 아름다운 추억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작가 역시 그 추억을 삭제하지 않고 마음 한켠에 남겨두었기에 이런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서서히 스며드는 좋은 소설이었다.그가 떠나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 옥신각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나는 그를 발견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면서도 끝까지 그를 찾고 싶어했다.매사추세츠 대로를 달리고 있거나 브래틀 거리에 주차된 그의 택시를 보면 더 이상 대면하고 싶지 않은 다양한 감정과 의문들이 내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P.381)* 이 도서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