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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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1974년생. 랍비이자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예루살렘 포스트'지가 선정한 2021년 영향력 있는 50인의 유대인 중 한 사람이자 프랑스 유대 공동체에서 단 다섯 명 뿐인 여자 랍비 중 세번째라고 한다.
랍비라면 그간 영화에서 보아왔던 수염 가득한 할아버지 이미지만 생각했는데 여자 랍비라고 하니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이력도 특이하다.
이스라엘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에, 뉴욕에서 랍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돕는다는 점에서 의학과 저널리즘, 유대교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랍비인 저자는 장례식에서 고인의 넋을 애도하고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한다.
홀로코스트와 테러,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큰 사건의 죽음들,
그보다는 소박하지만 개인적인, 어린 동생이나 친구와의 이별 등 수많은 죽음을 대면하면서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에겐 이름조차 낯선 작가이고 북하우스에서 책이 도착했을 때 어떤 내용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펼쳐들었다.
며칠 동안 컨디션 난조로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여서 그랬는지 죽음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 책이 가벼이 읽히지는 않았다.
가족이 들으면 방정맞은 소리라고 하겠지만 실체를 모르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그간 가벼운 감기라 넘기던 콧물, 기침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뒤따르는 걸 보면서 그 너머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프랑스어에는 대부분의 언어처럼, 자식을 잃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부모를 여의면 고아가 되고, 배우자를 잃으면 과부나 홀아비가 된다.
그렇다면 자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뭐가 될까?
마치 명명하지 않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고, 그 미신을 따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입단속을 하는 것만 같다." (P.137)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역시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나는 아주 가까운 지인이 자식을 잃고 고통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식의 죽음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방문할 수 없는 땅으로 추방되는 것과 같다고 책에 쓰여있는데,
실제로 나는 어떤 선의로 가득한 위로도 그들에게는 서툴 수 밖에 없다는 걸 깊이 깨닫고 속절없이 무너진 경험이 있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대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P.139)

유대인들은 우리의 죽음 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 말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앞서 존재했기 때문에 훗날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만들고, 잘 말하고, 잘 이야기할 무언가가 있다고. (P.222)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야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이다.


* 이 도서는 북하우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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