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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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김수영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 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 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과학고로 첫 출근하던 날. 

저녁 7시 넘어 어두워질 무렵까지 공부를 하다가 퇴근하러 건물을 나서는데 

뜻하지 않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미 당도한 어둠 속에서, 마음은 좀 심란한데, 아랑곳하지 않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 시가 마음 속에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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