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종의 기원 - 일러스트로 보는 다윈의 삶과 진화론
마이클 켈러 지음, 니콜 레이저 풀러 그림, 이충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다윈 시대 쯤 오면 종은 불변한다'는 생각은 더이상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되었다.  

한 시절의 오고 감이 그와 같다. 이미 징후들과 주장들은 여기저기 차고 넘친다.  

누가 정리하느냐의 문제지. 그러니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는 날아 오른다. 

 

  '종은 변한다'는 명제가 서서히 주장되고 있을 무렵, 이제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설명이다.  

그 변화는 어째서, 어떤 방향으로, 어떤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인가, 하는.  

 

 여기서 다윈은 멜서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말하자면, '궁핍'테제. 

자연은 생물에게 무한히 씨를 퍼뜨릴 권리와 능력은 주었지만, 

생존에 필요한 식량, 공간, 물, 배우자 등은 충분하게 주지 않았다는 것. 

필연적으로 궁핍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자, 그렇다면 살아 남을 자와 죽어 없어질 자는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  

다윈에 의하면 자연이 선택한다는 것이다.  

냉정한 조정자로서의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은 살아 남을 것이고,  

그 'fit-n-survival'이 반복되는 결과, 종은 변화할 거라는 것.  

 

 다윈은 자신의 연구가 통찰을 얻을 수록 '설계자'로서의 신의  

역할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살인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록 사건의 중심에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처럼. 

(뭐, 그런 테마의 세익스피어 희곡이나 그리스 비극이 없을까) 

 

 다윈의 진화론이 어느 정도 밝혀진 이후에도 인류는 '그래도 인간은 다르다 '는 주장을 

아주 포기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믿는 구석은 '이성'이라는 놈.  

 

 인류의 오랜 논쟁은 이 퍼센티지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인간, 혹은 인류 전체의 총체적 삶을 놓고 보았을 때  

생물학적 조건 : 이성의 퍼센티지가 얼마나 될까. 

거칠게 말하자면 신체와 이성, 누가 우위인가의 논쟁. 

 

'마음의 작용도 결국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이 즈음의 진화심리학이 흥미로워지는 것은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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