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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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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강화길 신작 소설 (arte, 2020)

 

그들에게 마을은 일종의 유전(遺傳)이었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밭, 산과 나무, 그러니까 터전이라 부르던 곳. 아들이 아들에게 물려주고, 딸이 딸에게 전해 받은 것.” (p.7)

 

태어날 때부터 던져진 조건이 있습니다. 자라면서 요구되는 삶이 있죠. 나의 삶을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다고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정황들을 떠안고 시작하게 됩니다. 인구는 백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를 벗어나 달아나려는 소녀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이 선택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백일장에 나가 수상하고,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려는 것이죠.

 

강화길 작가의 신작 소설 <다정한 유전>에는 글을 쓰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쓴 소설들이 소설 안에 실려있습니다. 그녀들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과 친구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고통과 우울, 불안과 외로움을 소설로 써 내려갑니다. 글쓰기를 통해 어딘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소녀. 엄마. 친구. 할머니.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죠. 그렇게 쓰는 행위가 서로를 연결합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직조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새 내면에 쌓여 있던 이야기가 그저 폭발하듯 풀려나왔던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내가 뭔가를 이해했고, 받아들이려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중략)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나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죽이고, 또 죽여서 다시는 살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살려낸다. 운명이 뒤집힌 그 이야기 속에서 글을 쓰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 어딘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소녀. 엄마. 친구. 할머니.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 나는 그들을 통해 살아 있다.” (p.138)

 

콜라주 형태의 소설들이 교차하고 있어서 라고 말하는 일인칭 화자가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소설 속 소설인지 분명치 않아 짧은 분량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 다른 세계와 내가 연결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과연 우리는 글쓰기와 읽기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억압과 차별의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유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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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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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을 거칠게나마 접하면서 다양한 결의 긴장과 갈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언뜻 미묘한 듯 느껴지지만, 굉장히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인식과 대응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하겠더군요. 큰 틀에서는 동의하더라도 저마다의 입장과 경험이 너무나 다릅니다. 지역별, 인종별, 문화별, 시대별로 달라지는 상황을 통일시키고 절대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마다 원하는 방식대로 살자'라는 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기란 또 힘든 일이죠. 이게 어디 하루 이틀 쌓인 구조의 문제던가요.

 

공통의 지향점을 가졌으나 달라진 동료들은 그렇다 치고,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이율배반적인 양가적 감정은 또 어떤가요.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인지요. 계속해서 좌충우돌, 이해불가 아니던가요. 불합리, 비논리로 가득한 자신을 발견하며 난감해합니다.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죠.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자신이 어느 날 성차별적 편견으로 가득한 가사의 팝송을 흥얼거리고 있더라고 했는데, 저에게는 강렬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렇지, 그럴 수 있지.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겠다고 말이죠. 올바름에 대한 강박으로 페미니스트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좀 부족한 페미니스트가 되겠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상적 목표가 자칫 동료들과의 연대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타인과 자신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자는 거라 이해했습니다. 예민한 감각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당연시해왔던 잘못된 관행들을 고쳐가는 일이겠지만, 때론 의식적으로 '느슨한' 태도를 취해서라도 서로 연대하며 발맞추어 가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는 거죠. 다시 벨 훅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그녀는 '자매애(Sisterhood)'를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 멀리 돌아왔습니다. 사실 이 글은 윤이형 작가의 붕대 감기를 읽고 난 저의 감상입니다. 엉뚱하지만 책을 덮고서도 끝나지 않고 계속 확장되어 다른 이야기들과 연결되고 연결된다는 건, 꽤 멋진 일 아니던가요.

 

여자들이 돈독한 우정을 쌓아온 이야기도 좋지만, 어떤 연유로 서로 멀어지고, 또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혹은 극복이 안 되었는지, 그런 이야기도 좋습니다. 그런 경험담을 모아서 책으로 펴내려고 해요.” (p.99~100, 붕대 감기)

 

기혼여성과 미혼여성, 전업주부와 워킹맘, 탈코르셋 활동가와 미용 산업 종사자, 여성과 트랜스젠더(MTF). 이야기는 계속 확장됩니다. 우리 개인의 이야기까지 닿았으면 하네요.

 

#윤이형 #붕대감기 #작가정신 #벨훅스 #모두를위한페미니즘 #록산게이 #나쁜페미니스트 #자매애 #SisterhoodisPowerful #여성주의 #페미니즘

 

"여자들이 돈독한 우정을 쌓아온 이야기도 좋지만, 어떤 연유로 서로 멀어지고, 또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혹은 극복이 안 되었는지, 그런 이야기도 좋습니다. 그런 경험담을 모아서 책으로 펴내려고 해요."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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