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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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살짝 비틀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이갈리아. 이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세상은 어떤 이론서보다도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듯 받아들여져 왔던 일상이, 다른 성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전혀 생소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익숙해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시점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다른 의미가 되어 다가오는 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는 내내 나는 그 묘한 체험을 했다.

왜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으로 정해졌을까? 여자들은 왜 브래지어를 해야할까? 왜 여자는 직업에 제한을 가져야 하고 남자보다 외모에 신경을 써야 된다는 말을 듣는걸까?
왜 우리는 여자로 살면서 겪는 수없이 불공평한 일들을 그저 받아들이고만 있는 걸까..?

이 책의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는 맨움이다. 이갈리아에서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맨움으로 태어난 그를 통해 작가는 여성이란 성이 겪는 불합리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페트로니우스의 고민과 관심사는 실제로 우리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고민 아닌가.

이 책을 읽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끔찍하다 라고 하는 남성분들을 많이 보았는데, 정작 이것을 읽고 정말 끔찍해야 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맨움은 책 속에서는 남성이라는 성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명백히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 때문이다. 맨움들이 겪는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일들은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여자들이 겪는 일, 바로 그대로가 아닌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사회 곳곳에 산재된 남성 우월적 요소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던 나는- 이미 남자 위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었다.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는 그런 맨움의 불공정한 위치에 대해 최소한의 자각은 있었지 않았던가.

움 위주 사회의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마지막 부분의 페트로니우스의 행동은,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가슴 안에 걸려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약간의 반성감, 그리고 약간의 질투심일 것이다. '이제 움들에게 이끌려 다니기만 했던 인생은 버릴 겁니다' 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던 그의 당당함과, 손가락질하는 사회에 가슴을 펴고 맞설 수 있는 그의 용기에 대한 부러움.

작가가 이 책에서 독자에게 원한 것은 딱 페트로니우스만큼의 자각, 이었을 것이다. 남성 위주의 이 사회에 대해 아무런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했던 나같은 이들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있다. 주인공이 가졌던 고민과 비판 의식은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내 머릿 속에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갈리아의 잔상이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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