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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오감도 1 - 질주와 공포
조성기 지음 / 세계사 / 1994년 7월
평점 :
품절
'욕망의 오감도'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적나라하고 비윤리적인 내용으로 문제가 되어 한때 판매금지 조처에 취해졌었던 소설이다. 권마다 다른 주제를 가진 이 소설은 총 네 권이 완결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단순히 비윤리적이고 저질적인 책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읽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사람들을 양상해 낸 사회에의 비판에 있다. 그건 1권, 생매장 당하기 직전, 덕만의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 사회에서 법대로 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법을 깨뜨리고 파괴하는 쾌감을 맛보도록 나를 몰아갔습니다. 범죄를 저지를 적마다 불안하면서도 짜릿한 기분을 느꼈으니까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절망이 그들을 타락시키고 범죄에 빠져들게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두 청년은 세상에 대해 희망을 품고 살지 않은 자들이다. 하루하루를 그저 건달처럼 지내면서 사기와 절도, 강도 짓이나 폭행도 주저하지 않는 사회악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들은 주인공을 절망하고 피폐하게 만들고 또한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겨 오던 가정이라는 보루를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그들은 선악의 구분을 내린다면 명백히 악 쪽으로 판단내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인공을 파멸로 이끈 것이 단지 그 두 청년 뿐만은 아닌 것이라는 점이다.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녀의 남편.. 그 역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성폭력을 휘두른 가해자이며 가정을 무너뜨린 가장 중요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녀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그 둘의 모략으로 자신을 부정한 여자로 몰아 부치는 남편의 태도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 둘에게보다 여자에게 더욱 정신적으로 상처를 남겼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선'은 주인공 여자일까..? 여자는 분명 피해자이고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선 쪽 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책의 종반부에서 누구보다도 가혹한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살해할 결심에 그가 자주 마시는 위스키 병에 메틸 알콜을 탄다. 그로 인하여 남편은 실명하게 된다. 또한 자신을 망치고 딸까지 범하려 한 영기와 덕만에 대한 증오와 원한은 그들을 가장 잔인한 살인 방법인 생매장으로 죽이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법이라는 칼이 말이야,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져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는 국민 개인이 갈아서 쓰는 수 밖에 없지. 일종의 정당방위로 말이야..'
영기와 덕만이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청년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분노로 변해 버린 것처럼 그녀 역시 제대로 방어벽 구실을 못하는 법과 사회에 대한 좌절 역시,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녀가 이렇게 변해버리게 된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가 가장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욕망의 오감도는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대한 오감도라고 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 묘사 된 상황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책이나 르포 기사, 체험담 그리고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세태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의 논픽션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연작 소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일들보다 더 부끄럽고 잔혹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판금이라는 어설픈 조치로 꼭꼭 싸 감추려 하기보다는 그 환부를 볼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이 더 적당한 방법이라고 본다. 상처는 열어놔야 상태를 자세히 볼 수 있고 치료도 할 수 있다. 그저 감춘 채 열어 놓지 않는 환부는 더 심하게 곪아 버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