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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이 책 <타인에게 말걸기>였다. 담담하면서도 건조한 어조로 써내려간 그녀의 소설들이 정갈하게 담긴 한권이다. 읽고난 후에도 혀끝에 또렷하게 남는 맛깔스러운 소설들로 채워져있는 이 작품집은 소설 하나하나가 각각 맛이 뚜렷하게 다르다. 그 때문인지 보통 단편집의 소설들은 그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나인데도 이 소설에 수록된 작품들은 제목을 대면 그 각각의 내용이 머리속에서 환하게 떠오른다.
또한 그녀는 호흡조절에 천연덕스럽다. 이야기 안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것을 꼭꼭 감추어 놓지도 않았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시선에 맞추어지게 되는, 무리없는 소설들이다. 이런 면은 은희경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상을 어우르는 잔잔한 눈길.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질척이지 않는다. 조금은 건조하고 깔끔하게, 자신이 생각해내는것을 풀어낼수 있는 능력, 독자에게 닿을수 있는 저력.
확실히 은희경의 소설들은 장편보다 오히려 단편에서 탁월하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메마른 시선과 냉정한 관조가 장편에서는 긴 호흡으로 다소 불거지고 처지게 되지만, 호흡이 짧은 단편에서는 단정하게 갈무리되고 마무리된다. 그 말끔한 처리가 특히 돋보이는 것이 이 <타인에게 말걸기>, 요새같은 계절에 특히 어울리는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우울할때는 읽는 것을 삼갈것. 누구나가 인정하듯 은희경의 소설들 이면에 절절하게 배어있는 허무는 전염성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