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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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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여행 전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이보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여행 후의 행복도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개 휴가의 긍정적인 효과는 빠르게 사라졌다.  -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p.163 


포브스지의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은 적이 있다. 경험소비가 물질소비 보다 효용가치가 더 높다는 내용이었다. 물건을 사면 새제품이 출시된 전후로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 더 좋은 사양의 제품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후로 효용가치를 다르게 느낀다. 여행과 같은 경험소비의 경우 경험 대 경험으로 비교우위를 다투지 않는다. 여행 전 기대감은 물론이고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다양한 의미를 더해진다. 심지어 자아가 성장하는 경험으로 더해질 때 정체성의 일부로 평생 남게 된다. 


2018년 경으로 기억하는데, 이 글은 그 당시 나에게 매우 고무적이어서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여행의 즐거움에 추진력을 더한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사례가 제시되거나 구체적인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씩 더해지는 여행경험에 대한 회고를 반복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삶과 이론을 차근차근 짚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위 책에서 제시된 "여행 전의 기대감"과 포브스지의 "여행 후 지속효과"는 여행이란 경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함께 봐야 할 내용인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본다. 


여행의 심리적 가치: 기대, 경험, 기억


여행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속의 행복을 설계하는 심리적 구조물이다. 이 장에서는 여행이 어떻게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 시점—기대, 경험, 기억—에 걸쳐 분석한다.



1. 기대 : 의미의 선불효과


여행의 시작은 항상 '떠나기 전'이다. 아직 가지 않은 여행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카운트다운은 'anticipatory utility(예상 효용)'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서적 보상을 발생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휴가를 앞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명확하게 높은 행복감을 보고한다. 이 행복은 실제 경험과는 무관하게, '곧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희망과 상상에서 비롯된다. 기대감은 일종의 심리적 도피권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를 정화시킨다.


2. 경험 : 자율성과 의미의 체화


여행의 본질은 '살아 있는 경험'이다. 이 시점에서는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이라는 '자기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세 축이 중요해진다. 경험적 소비는 물질적 소비와는 달리 삶의 내러티브 속으로 편입된다. 좋은 여행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타지에서의 새로운 만남, 자연과의 교감, 언어 장벽을 넘는 순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이 경험은 이후의 삶에 심리적 근육을 남긴다.



3. 기억 : 감정의 자산화


여행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중요한 것은 이 기억이 시간 속에서 미화되고 의미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rosy view effect'로도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고통보다 아름다움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이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의 내러티브 속에 다시 등장하여 현재의 나를 규정짓는다. 어떤 여행은 사진첩 속에 남고, 어떤 여행은 내 삶의 결정적인 문장으로 새겨진다. 이러한 감정의 자산화는 경험소비가 물질소비보다 오래 지속되는 심리적 이유를 설명해준다.



결론: 시간 속에서 확장되는 여행의 가치


결과적으로 여행의 심리적 가치는 '기대감'에서 시작해 '경험'으로 구현되며 '기억'으로 완성된다. 여행은 일시적인 도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장기적 프로젝트다. 좋은 여행은 삶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세 겹의 심리적 효과—기대의 선불, 경험의 자율, 기억의 자산화—는 여행이 왜 인간에게 계속해서 필요한지에 대한 정교한 해답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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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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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 여행의 가치를 여행전 기대감으로만 설명한 부분은 아쉬웠다. 2010년을 전후한 자료에 근거한 결론인데다 최근 경험소비에 관해 여행경험이 정체성의 일부로 형성된다는 등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디지털 버블이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고찰이 훌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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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 그들은 왜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나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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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탈북하는 나흘동안 같은 꿈을 계속 꾸었다고 한다.

내용인 즉, 어떤 사람이 나무에 못박혀 죽었는데 

그러더니 또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 한글을 배우려고 선교사를 만났는데 

첫시간에 성경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 물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예숩네까?" 


작가는 이 할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탈북인구출 사역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후에 단둥 그 할머니는 북한으로 다시 선교를 떠나게 된다. 


목숨을 건 파북 선교사들에겐 어떤 영적 광채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감히 이해할 엄두는 나지 않지만 그 울림과 감동은 감출 수 없다. 


지난 5월 일본 나가사키의 <일본 26성인 순교지>를 가보았다.  

거기에는 12살 어린 소년의 조각상도 있었는데 

그의 마지막 고백을 기록한 설명을 잊을 수 없었다. 


'유한한 생명을 위해 어찌 영원한 생명을 버릴 수 있으리까' 

대략 이런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성숙된 믿음을 갖고 

순교의 여정에 뛰어들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이지성의 1만킬로미터를 읽으며, 

"어떤 영적 광채"를 지닌 존재들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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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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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딴생각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읽으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간관리에서 금과옥조와 같은 이 지침의 중요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을까. 딴생각 중에 우리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이해하면 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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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의 탄생
박성현 지음 / 심볼리쿠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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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서 인류진화과학


600만년 전에 인류의 기원이 발생했다는 얘길 들으면, 600만년이라는 시간의 아득함에 현실감각을 놓치기 쉽다. 빅히스토리를 접해보았다면 이 주제가 역사의 연대표에 현미경을 들이미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 고인류학, 뇌과학, 지질학, 기후학 등의 분야를 단편적으로 접해본 사람이라면 좀더 총체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학문분야를 열거한 이유는 <상징의 탄생>이 특정 학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과 그래서 독자적인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 있는 괜찮은 저술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함이다. 초사회성을 다룬 장대익의 <울트라 쇼설>이라는 책과 비교해보라. 심리실험을 통해 인간의 초사회성을 쉽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비해, <상징의 탄생>은 작가가 인류진화역사를 풀어헤쳐 "상징능력"이라는 핵심화두로 집약시키는 집중력과 독창성에 놀라게 된다.



현실정치


맹렬한 사회운동가로서 뱅모 박성현의 철학적 배경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600만 년전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7만년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세계로 이주를 결행(peopling the earth)한 사건을 역동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 한 지류가 한반도에도 이르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일성 독재체제가 한반도내 단일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본토기원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김일성 일신교가 사이비 진화론에 기초를 두고 평양체제가 인민들을 압살하는 현재의 비정상적 북한을 겨녕한다. 


북한의 사이비 진화론에 맞서 대응할 논리가 부재한다는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것이 역사왜곡이라는 화두와 얽혀 잘못된 역사교육의 일면으로 수렴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식인들의 게으름이다. 뱅모는 인류진화과학의 전문가가 아님을 염두에 둬야 한다. 평양체제와 역사왜곡 이슈에 대응하는 지식의 부재. 이런 현사태에 망설임 없이 대안을 제시하는 맹렬한 개인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간단하게, 인류진화의 역사가 아프리카로부터 전세계로 퍼져나간 이주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남과 북은 물론 전세계가 하나의 "인류"라는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을 재인식한다. 이런 맥락에서 평양체제의 해체는 인류사적 과업이고 한민족의 관점을 극복하여 자유주의,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인류가치를 구현하는 실천으로 의식재구조화를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이건 <상징의 탄생>의 내용이 아닌 배경으로 덧붙였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은 <상징의 탄생>이 좀 거대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인류속의 개인, 뱅모의 개인주의를 이해하는데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쉽게 잘 읽힌다는 건 작가가 독자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여기서 더욱 나가고 싶다면 뱅모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진정 깊이 있는 사색을 음미해 보기를 추천한다. 


다행이도 <상징의 탄생>은 작가가 10편의 유튜브 강의로 친절하게 해설을 해두었으니 놓치지 않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TPu77GGFTV2gWpAuK8f7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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