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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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에너지가 넘치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초반부는 흥미로웠는데 뒤로 갈수록 넘쳐나는 욕과 성적인 말들로 질려버릴 지경이 되었다. 마녀를 죽인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읽다보면 희망도 출구도 없는 마을,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만 남는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라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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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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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제목만으로도 독서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며 건네는 위로의 말이 그저 말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에 이 책을 더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나의 세계의 틀이 깨어지고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의 어린 시절의 삶,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부모를 둔 자녀의 삶은 짐작할 수 있을 뿐 완전하게 공감할 수 없다. ‘정상적이라 생각하는 가정의 틀에서 본다면 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의 삶은 불쌍한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어린 것이 불쌍하구나, 라고 말하며 아이의 어려움에 공감한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나는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것이 꼭 불행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른 사람들이 불행과 상실로 쉽게 판단해 버리는 상황이 꼭 고통스러운 게 아님을 말하는 부분을 읽으며 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알지 못하면서 멋대로 불행이나 고통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그걸 깨닫는다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이해의 폭은 더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일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것이다.

 

1부에서 장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여러 작품의 예시를 읽으며 흔히 사람들이 정상이라 부르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2부에서는 확장된 시야로 새롭게 그려볼 미래의 모습에 관한 글이 전개되었는데 그 또한 인상 깊게 읽었다.

 

갈수록 나와 다른 사람, 집단에 대해 혐오와 배제가 강하게 확산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편협한 시야를 넓히고 확장된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야를 점검하고 확장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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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로 할 거야 사계절 웃는 코끼리 26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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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동화작가, 유은실 작가님의 신작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정이 이야기시리즈는 전에도 읽은 적이 있고 재미있고 사랑스러워서 이 책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이 책에는 단골은 쓸쓸해근육은 소중해라는 두 편의 짧은 동화가 실려있다. 유치원~초등 저학년 독자의 연령대를 고려한 큼지막한 글자 크기가 좋았고, 정이의 목소리로 서술되는 말들이 정말 그 나이대 아이가 할 법한 말투와 사고방식, 짧은 문장 길이로 서술되어서 진짜 정이의 이야기를 듣는듯한 실감이 났다. 김유대 작가님의 그림도 유쾌하고 명랑해서 정이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 줘서 좋았다.


정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사랑스럽다. 주변에 이런 아이가 꼭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식성이 좋아 뭐든 잘 먹고 근육도 많아 튼튼한 정이는 자신을 긍정하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단골은 쓸쓸해는 몸이 약해 병원 단골인 정이 오빠, 혁이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근육은 소중해는 은연중에 덩치가 큰 사람을 비만으로 간주하는, 날씬한 몸매에 대한 사회의 강박을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정이는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표현한다. 아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흐뭇한 마음으로 우리 정이가 많이 컸구나!’ 생각하며 끝까지 읽었는데 작가의 말을 보니 이번 정이 이야기가 마지막이라고. 너무 아쉽다. 작가님께 한 5편은 더 내달라고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유은실 작가님의 책은 작가의 말도 마음을 울리는데 이번 책도 그랬다.

정이 이야기도, 작가의 말도 같은 말로 끝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참 좋다.’

어린이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나 줘서 참 고맙습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깔깔거리며 정이 이야기를 읽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참 좋다는 정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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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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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고 쭉 따라 읽어온 독자로서 이번 소설도 역시 김혜진 작가님! 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해수와 세이가 순무라는 고양이를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회복되는 과정이, 타인의 삶을 자신의 편견으로 침범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과정이 좋았다. 김혜진 작가님의 인물을 바라보는 진지한 시선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결말 부분에서 해수가 세이 아빠에게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세이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것, 사과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 지점에서 해수의 아픔과 상황에 공감하던 마음이, 경청하던 마음이 깨어져 버렸다.

어른인 해수가 먼저 행한 사과에는 공감하지만 세이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해수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른의 방식으로 아이의 방식을 결정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이도 사과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은 왕따와 폭력을 가한 다른 아이들이 세이에게 먼저 사과한 후에, 그 다음에 행해져야만 한다. 어른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왕따와 폭력을 당해온 세이에게, 피구경기장에서 먼저 잘못했으니 네가 먼저 사과하라는 게 맞는 걸까? 그리고 나서 다른 일은 방법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고? 그 말을 아무런 상처 없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믿었던 아줌마에게서 흘러나온 그 말 또한 세이에게 큰 상처가 아닐까?
학교 현장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단지 일어난 하나의 사건만 보지 않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새롭게 불거지는 사건의 전사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처음부터의 잘잘못을 따져보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세이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해수의 말을 읽고 나는 세이의 입장이 되어, 친구 주현으로부터 피해자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해수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의아했고 그 순간 읽어오며 함께 호흡했던 해수의 감정선과 인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말았다. 해수는 박정기씨에게 했던 잘못을 똑같이 세이에게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회복되었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 해, 하는 편견으로. 그 순간, 경청의 태도는 깨어진다.

나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는 어른일 뿐이고 김혜진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독자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하지만 세이의 일을 해수의 일과 연결하기 위해,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아이의 일을 어른의 일처리의 방식과 순서로 처리해 버렸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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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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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소의 말들.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억울하고 절박하지만 세상적 힘과 방법이 없어서 인권위원회에 호소하는 사람들과, 법률의 범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인권위 조사관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조사관으로서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처지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쓴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쌓여있는 가운데 그 사건을 사건번호가 아닌 인물의 이야기로 듣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억울하고 절박한 이웃들,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이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저자의 경험담은 감흥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주변을 둘러보고 도움이 필요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것을 당부한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절박한 사람들이 사회 약자로만 그려져서 아쉬웠다. 인권침해는 여러 방면에서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약자들의 억울함이 가장 크겠지만, 좀 더 다양한 경우에서 인권침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악질 학부모의 민원 때문이었다. 아이들 간의 다툼에 대해 교사로서 교육적 지도를 했음에도 자기 뜻대로 해결되지 않자 학부모는 나를 괴롭힐 방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로 신고를 했고 조사관이 학교에 나오기까지 했다. 결국 혐의없음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학부모는 계속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민원을 넣어 나를 괴롭혔고, 그때의 상처와 괴로움은 나의 이후 교직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인권을 침해받은 사람은 그 학부모일까, 나일까?

 

여러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학교에서도 인권교육을 통해 타인을 존중할 것을 교육하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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