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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하기 -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설득과 소통의 법칙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8월
평점 :
하필이면 탄핵과 대선의 소용돌이인 이 시점에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나는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연히 읽을 기회가 생겨서 쓰는 입장일 뿐.
전체적으로는 당연한 얘기들만 있어서 김이 좀 새는 감도 없잖아 있다. 예를 들어 비유를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강조할 것은 반복하라, 쉬운 언어를 써라, 책을 많이 읽어라. 이런 얘기들은 비단 정치적인 연설을 할 때뿐만 아니라 회사 프레젠테이션 할 때도, 타부서와 미팅할 때도, 심지어 친구랑 정치얘기 같은 것을 할 때나 인터넷에 키보드 워리어 짓을 할 때도 당연히 적용되는 범용적인 것들이다. 책을 읽으며 ‘그냥 좋은 얘기네’ 하고 넘겼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책의 주인공이 ‘대통령이었던 사나이’라는 곳에 있다.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최고의 전략은 정면돌파’라거나, ‘표현보다 팩트’라거나 하는 ‘순수한 마음’에 어울리는 위치인가? 내가 정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외교에도 ‘외교적 수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국가간 대화에서 최대한 돌려 말하는 기법에 대한 얘기다. 당연히 말 잘못 했다간 최악의 경우 전쟁까지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많았던 외교의 역사에서, 이런 기법은 필요악이다.
정치도 그렇게 보자면 마찬가지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악명을 떨친 지점은 바로 그, ‘정면돌파하는 언변’, ‘팩트로 직격해 버리는 팩트폭력범’에 있지 않았나? 나도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회사에서 팩트폭력 꽤나 날리는 사람이라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얘기를 한 것인지 공감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로서의 불만은,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위치에서 그 언변이 좀 더 세련되어야 하지 않아야 하냐는 것이다. 내가 정치가로서의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치가로서,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이런 점에 있어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
때문에, 책 자체는 방향성이 좀 잘못되었다고 본다. 책은 ‘노무현이 이렇게 연설을 잘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연설을 잘 하기 위해선 이런 스타일을 보고 배우자’라는 자기계발서 같은 방향성 보다는, 오히려 그 ‘쎈’ 스타일에 대해 좀 더 자기변호하는 주제(예를 들면, 노무현이 왜 그렇게 쎄게 말했냐? 그는 본질에 대해 전혀 타협할 수 없었다. 그들과는 양보할 수 없는 그만의 본질의 에센스...블라블라)로 책을 썼어야 했다고 본다. 그럼 나도 어느 정도 설득되어서 그가 그렇게 팩폭배였던 사정에 대해 이해하고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넘 자기계발서 스타일이라 조금, 아주 조금 껄끄러웠다.
어쨌든, 마지막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은 글로 읽어도 감동적이었고 좋았다. 노무현이 말 잘하는 사람, 연설 잘 하는 사람이란 사실은 책을 통해서도 그렇고, 연설 동영상을 통해서도 그렇고 손쉽게 증명이 된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본질에 대한 고민은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도 알고 또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좋다. 그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그 투쟁이 힘들고 거친 가시밭길이었던 것도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현시대 한국의 정치 지형 때문이었다는 사실조차 나는 동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좀 더 나은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나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