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드워드 윌슨의 잘 알려진 책 중에 「통섭」이라는 책이 있다. 다들 좋아라 하면서 여기저기 인용도 많이 되는 책이지만, 통섭 얘기를 하는 분들 중에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신 분들이 좀 계시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통섭'을 인용하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같은 밝고 긍정적인 시너지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책을 제대로 읽어보셨으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다. 윌슨이 애초에 책에서 말하는 ‘통섭'은 자연과학이 인문학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하향식' 통일을 생각하지 않고 ‘통섭'을 인용한다는 것 자체가 에드워드 윌슨이 만든 단어인 ‘consilience’, 즉 ‘통섭’의 의미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나도 「통섭」을 읽어보기 전에 ‘역시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통합되는구나' 하고 좆문가 행세를 하며 여기저기 인용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에 나는 ‘통섭'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심스러워지게 되었다. 나로서는 인문학의 멸망을 통한 자연과학의 대통합이라는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노교수가 젊을 적에 「사회생물학: 새로운 통합」이란 책을 썼었는데, 윌슨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빨갱이 사회운동가들이 그를 나치로 몰고 강의 도중에 뿌린 물에 얻어맏는다던지 하는 수모를 많이 당했다더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추측해 보건대 애초에 이 분의 성질머리가 책을 통해 이런저런 논란이 될 만한 얘기들을 직설적으로 던지는 편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을 얻어맞았던 그 젊을 적의 해프닝이란 이제 보니 순진한 과학자가 사상의 오용과 사회의 오해를 통해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쓴 해프닝이 아니라, 윌슨 스스로의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얘기를 툭툭 던져대며 사람들을 도발한 것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기저기 대규모의 논란을 일으키는 이 노교수의 행태들 중 무엇이 정말 맞는 말이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는 없지만, 그냥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들이 꽤 된다. 위의 ‘사회생물학’ 논쟁부터 시작해(물론 이 해프닝은 윌슨이 승리했다고 비전문가인 나도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최근의 ‘통섭' 담론(이건 나로서는 아무래도 쉴드 쳐 주기 워낙 거시기한 개념이다.)까지 있다. 사실 이 두 사건이 ‘과학'과 ‘비과학 (또는 인문학)’의 대결 같은 양상이라 인문학자와 문과생들에게 여러 이야깃거리를 안겨 주었다면, 최근에 윌슨이 저지른 또 한 건의 논쟁은 생물학 그 자체 내에서만 일어난 것이어서 비전문가들에게까지 그 파급력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바로 이 책  「지구의 정복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바로 윌슨이 사실상 발굴해냈다고까지 회자되는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의 혁신,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적합도'를, 윌슨 스스로 또 다시 철회하는 논리인 ‘집단선택설' 이다. 


이 노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집단선택설'이 옳다는 얘기였는데, 이것저것 ‘인간은 무엇인가'니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니 하는 인문학 양념을 여기저기 (너무 과하게) 쳐서 맛이 좀 흐려졌다는 생각이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으로도, 해밀턴의 포괄적합도로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도 이 질문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변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후에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의미를 완전하게 새로 얻는 기분이었다. 이미 생물학은 인문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기여해 냈다. (이것을 '통섭'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라.) 여기서 집단선택설이 더 이상 설명해 낼 꺼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요상한 인문학 양념은 더 걷어내고, 비전문가에게 포괄적응도의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를 더 상세히 설명하고, 집단선택설이 그 빈 곳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를 얘기해 보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읽고도 왜 지금에서야 집단선택설을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지 여전히 다 설명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고, 이 책은 나에게 통섭 이후로 또 한 번의 윌슨의 헛발질로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5-11-1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 학자들 중엔 도발하기 좋아하는 `싸움닭`들이 정말 많은 거 같습니다. 도킨스도 그러하고^^
아마 그런 모습을 보여야 대중 관심을 얻을 수 있단걸 아는 거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