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기계 시대」를 읽고
최근 `배달의 민족`이나 `배달통`과 같은 배달앱들이 음식점들의 원성을 듣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장사도 가뜩이나 안되는데 수수료만 왕창 떼먹고, 게다가 이젠 이런 배달앱 업체에 가입하지 않으면 또 불안해서 안되니 울며 겨자먹기로 가입해서 수수료만 뜯기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많다는 소식이었다. 애초에 배달앱을 생각해 낸 창업자들은 전단지를 굳이 제작하지 않아도 음식점을 홍보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생각해 내고 만든 것이라던데, 결국엔 자영업자들 입장에선 전단지는 전단지대로 만들고, 배달앱 수수료는 수수료 대로 내는 이중고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배달앱 창업자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애초 생각은 자영업자들은 전단지 만드는 비용을 절약해 주고 소비자는 간단하게 배달을 시킬 수 있는 순진한 윈윈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것은 시스템을 아예 바꿔버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을 완전히 뒤쳐지게 만드는 `산업혁명적` 플랫폼이었다. 이 시스템에 재빨리 적응한 자영업자는 아마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벌써 배달앱과 결탁하거나 시스템에 딱 들어맞게 적응해 떼돈을 벌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스템을 이해 못하고 전단지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느니, 소비자가 간편하게 시켜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느니 하고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 괴물적인 혁명의 실체를 깨닫게 될 것이다.
제임스 왓슨도 증기기관을 만들 당시에 자신이 만든 것이 무엇을 초래할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말(horse)이 하는 일을 증기기관이 하게 되니 참 편하고 좋을 것이다...정도로 나이브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의 기계는 곧 사회를 변혁시켰고, 그 변혁된 사회에 적응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무슨 일인지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은 가난한 노동자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그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사회의 변혁을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되었고, 사회는 누가 불행하고 누가 부자가 되고와는 아무 상관없이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처럼 무조건 앞으로만 달리게 되었다.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불행하게도 사회 발전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증가시켜 주거나 행복한 사람의 비율을 높여 주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극적으로 양분시켜 버린다고 해야 할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사회의 최고 가치라면, 우리는 사회의 발전을 최대한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근대기의 쇄국정책 같은 것이다) 이놈의 폭주기관차는 너무나 급격한 사회 발전으로 인해 뒤쳐지는 사람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쳐 버리니까. 그러나 세계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므로, 죄수의 딜레마로 인해 누구나 정체되고 안정된 사회로 작은 행복을 꿈꾸면서도 잘못하면 이웃나라에 잡혀먹을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가정에 부딪힌다. 물론 내 입장은 정체된 사회가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발전된 사회의 혜택을 입은 채로 태어나고 현재도 사회 발전의 장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도 무지의 행복보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습득으로 인한 다른 종류의 행복을 말한 바 있다.
발전은 지수의 법칙을 따른다. 100년 동안 2배가 발전했다면, 다음 100년 동안도 2배가 발전한다. 문제는 계속되는 2배씩의 발전의 양은 인간이 느끼기에 극적인 양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지수 증가의 법칙을 알고 있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산업혁명 (제 1의 기계시대) 이후에 몇 백 년간 인간 사회는 동일한 지수를 가지고 100년당 몇 배씩 발전해 왔는데, 이제 그 증가 속도는 인간이 보기엔 거의 빛의 속도와 같아서, 노인들과 어르신들은 항상 적응하는데 애를 먹고 심지어 청년들도 예전에 자신들이 배웠던 지식이 무용지물로 변해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러다면 제 2의 기계 시대는 또 무엇인가? 지수의 발전은 변화 없지만, 지수의 후반부로 가면 이 발전은 정말로 인간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체스판 후반부) 아마 노인이 적응하는데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수준의 발전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이해할 수가 없고 아무도 이것에 적응할 수 없다. 전문가가 자동운전의 시대는 멀었다고 예상한지 5년만에 구글 무인자동차가 나온것을 보라. 이것은 무시무시한 시대이다. 어떤 예측도 소용 없고 사회는 인간의 예측 그 너머를 예측해야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재조합 혁신과 한계비용 제로의 시대도 열린다. 재조합 혁신이란 지금껏 출현한 기술들이 조합(combination)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조합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조합의 계산도 지수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계비용은 디지털로 인해 실질적인 비용이 0이 되는 시대이며, 0의 역수는 무한대이므로 가격의 역수로 계산되는 모든 것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 세계가 왜 제 2의 기계 시대냐면, 제 1의 기계 시대인 산업혁명 이후는 기계가 근육을 대체했듯이 이제 기계는 인간의 뇌를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인간의 뇌를 따라잡는가? 아니다. 기계는 인간의 뇌를 뛰어넘을 것이다. 역시 인간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정말로 불가능한 사회일 것 같으나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시대가 지수의 법칙을 계속해서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정말로 틀리는 적이 없다. 지수의 법칙에 의해 제 2의 기계 시대는 제 1의 기계 시대의 연속선상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느끼기에 하나의 단절된 시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근육과 뇌의 교체라는 실질적인 개념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근육과 뇌 또한 연속선상에 불과하다. 둘 다 감각의 입력과 신경의 발화라는 기제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틀릴 수 있다. (MIT 교수라 해도 말이다) 저자의 마지막 결론은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기계의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도 예측을 불가하게 만드는 지수발전의 특성으로 인해 잘못 예측된 하나의 사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말로 인간과 구별 불가능하고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는 기계가 나올 수도 있다. 게다가 인간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저렴하게! 이런 세상이 오면 인간 사회는 어떻게 될까? 여기에 대해서는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등의 명작 SF 영화들이 나름대로 예측해 보고 있으며 이를 참고해 적극적으로 참고해 봐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예측된 미래 사회는 아무 꿈도 희망도 없고, 저자의 말대로 극명한 빈부의 격차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책의 구성으로서 이런 결론은 좋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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