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지라 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참 많은 편이다. 방학이 되면 수십권씩 쌓아놓고 보는데, 이번 방학때는 생태와 자연을 다룬 책들을 주로 읽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소개하고 설명한 책은 참 많이 있겠지만 많은 이들한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미래>,<조화로운 삶>,<월든> 이렇게 세 권을 읽었는데 <오래된 미래>가 문화인류학의 관점으로 쓴 책이라면 <조화로운 삶>과 <월든>은 자연과 생태순환에 가까운 삶에 대한 체험기록이 되겠다.

그래서 이 두가지 책을 비교해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소로우는 보통의 교양만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큼 널리 알려진 생태론자이자 문학가이다. 소로우가 19세기 중엽의 사람이고 거꾸로 살기 시작한 1세대쯤 되니 그 이후의 모든 모험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조화로운 삶>에는 소로우의 저작을 자주 인용하고 군데군데 소로우 사상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소로우는 얽매이지 않은 삶을 추구했다면 니어링 부부는 치밀하고 계획된 생활을 했고, 지켜야 할 원칙을 고민해 이후의 생태운동가들에게 지침을 주었다는 점이 될것이다. 그런 차이점이 있는 만큼 <월든>은 자연과 상징의 어투와 말법으로 쓰여졌고, <조화로운 삶>은 논리가 치밀한 말투로 쓰여졌다.

<월든>을 펼치면 속표지에는 역자 강승영 씨가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소로우가 살다간 흔적을 직접 찾아다니기도 하고 그 당시의 시대배경, 역사사실을 방대하게 조사했다고 하는데, 건방진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절한 역자 주를 읽으면서 '참 번역하느라 고생했구나'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사와 문화 배경에 대한 무지라는 우리 나라 번역물의 고질병은 상당히 해결했다고 여겨지지만, 또 다른 고질병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어투가 일본식, 영어식으로 범벅이 되어있는게 아닌가.

"~의 ~의 ~의"가 잇달아 나오는 일본식 말투라든지, "~화시키는" 식의 잘못쓰고 있는 매김씨, "~었었다"식의 이중과거형... 우리 말과 글을 집어삼키는 잘못된 말법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소로우는 자연의 언어, 너른 들판과 숲의 내음이 풍기는 언어로 이 위대한 책을 썼는데, 번역한 말투는 영판없는 "딱딱한 실내의 언어""논문식 언어""유식한 체 하는 언어"로 뒤바뀌어졌다. 읽다가 하도 짜증이 나서 몇번이나 그만 읽을까 생각했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고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싶어 짜증을 참아가며 겨우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조화로운 삶>은 번역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지금껏 읽은 책 중에 이렇게 번역을 깔끔하게 한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니.. 어색한 말법과 일본식 말투, 영문법 말투, 잘못된 한자말을 내 능력으로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평소에 자연에 가깝게 살아가고 깨끗한 말을 쓰려고 애쓰는 시인의 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할까. 역자가 설명을 첨가하거나 주를 전혀 덧붙이지 않았지만 치밀한 논리의 말투에다 영혼까지 불어넣었다고 할까..

물론 <월든>의 역자도 나름대로 애쓰긴 했지만, 평소 어떤 삶을 사는지가 이와 같은 차이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자연과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자연을 노래한 책을 번역하는 것, 자연의 조화를 아는 사람이 자연에 가까운 삶이 기록된 책을 번역하는 것... 게다가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영한사전은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한게 아니라 영어를 한자말과 일본식 말투로 번역했으니, 잘못된 나침반과 항해지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자 강승영 씨는 <월든>과 소로우를 100%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했지만 머리로만 이해했지 마음으로, 가슴으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문화배경, 역사사실, 작가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충실한 만큼 절반의 점수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석란1 2006-04-14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구입할때 역자를 관심있게 보는 편입니다. 서평을 아주 잘 쓰셨네요.
얼마전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다가 번역이 너무 엉망이어서 정말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우리말을 우리글을 바로 쓰고 있는지 새삼 반성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