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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평점 :
이 책의 첫 인상은 좋지는 않았다. 일단 제목부터가 길고 어려웠다. '리얼리스트'에 '유토피아', '플랜' 까지. 외래어가 많이 사용된 데에다가 리얼리스트와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서로 모순적이다. 이렇게 비판적인 태도로 투덜대면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리얼리스트와 유토피아는 양립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좀 더 '투덜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내가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글을 열어보려고 한다.
어제(2017년 9월 22일) 하루종일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를 차지했던 단어는 '경기도 일하는 청년통장'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일하는 청년이 매월 10만원을 저축하면 3년후 경기도 예산과 민간기부금으로 약 1,000만원이 적립되는 제도다. 명칭은 다르지만 서울시에서도 '희망두배 청년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근로하고 있다는 사실과 저소득을 확인시켜주면 국가에서 돈을 모을 수 있게 해 준다니, 좋은 정책이다. 이외에도 열악한 거주 환경 문제, 비싼 대학 등록금, 취업난 등과 관련한 청년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가에서는 다양한 복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LH전세임대주택,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국가장학금 등 잘 알아보고 신청만 한다면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정책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는 좋은 '복지국가'다. 그리고 우리는 '혜택 받은 세대'다. 그런데 나 개인의 생활을 보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
한 달 전, 그러니까 9월 초에 개강을 앞두고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이리저리 방을 알아보다가 내가 가진 돈으로는 비싼 서울 원룸의 보증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상대적으로 보증금이 저렴한 쉐어하우스에서 살기로 했다. 내가 알아본 곳은 정부 지원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쉐어하우스여서 입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해야했다. 제출해야하는 서류 중에는 소득확인증명서가 있었다. 그래서 전자민원센터를 이용해 편리하게 소득확인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처음으로 발급받은 소득확인증명서에 나의 근로소득, 사업소득, 그 외의 소득은 모두 무(無)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직장이 없는 학생이다. 하지만 지난 해 나는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일에는 학교의 근로장학생으로 일했고, 주말에는 이태원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서 서빙을 했다. 그렇게 일해서 한 달에 약 6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나의 지난 해 근로소득은 0원이다. '근로소득이 0원이라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니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앞서 말한 경기도 일하는 청년통장의 가입 조건은 다음과 같다.
공고일(2017.08.29) 기준 경기도 거주 만 18세 이상 ~ 만 34세 이하 일하는 청년
(1982년 8월 30일~1999년 8월 29일 출생)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 100% 이하인 가구
(소득+재산을 일정한 비율로 환산한 금액)
그리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다음과 같다.
① 사회보장급여 제공(변경)신청서(제4호 서식)
② 근로확인서류(재직증명서, 근로계약서, 고용보험가입증명서 중 1가지), 발급 불가시 [고용·임금 확인서로 대체 가능(제5호 서식)
③ 거주지 임대차 계약서 또는 사용대차확인서 (제6호 서식)
④ 주민등록 초본(신청자 본인 기준, 주민등록번호 및 과거 주소 변동내역 포함)
⑤ 가족관계증명서(신청자 본인 기준으로 '상세'발급, 주민등록번호 포함)
⑥ 가구특성 확인서류(해당자)- 장애인, 다문화, 북한이탈주민은 관련 증빙서류 제출
⑦ 기타 가산점 및 부채증명서 적용대상자는 해당 증빙서류 추가 제출(해당자)
그러니까 작년의 나는 근로 사실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경기도 일하는 청년통장을 신청하려 했다면 자격 미달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청년도 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한다면 신청 가능하다. 작년에 이 정책이 있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근로 확인서를 받아서 신청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서 돈을 받고 기뻐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보험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내년에 서울시의 희망두배 청년통장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근로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근무처의 사장님에게 근로 확인서를 요구해야 한다.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던 문제였기 때문에 내년이 되기 전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고 말 할 생각이다. 하지만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 책을 읽고 증명 절차를 밟아야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 그냥 모든 사람에게 돈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국가장학금은 소득분위에 따라 차등 지원되고, 청년통장은 '적은 임금으로 일하는 청년'을 격려하기 위한 정책이라서 임금과 일하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은 자격 심사 절차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이전에는 그래야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저자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기본 소득에 관한 주장을 듣는다면 차등 복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누구나에게 조건 없는 무상 현금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한다.즉,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선별적 복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빈곤층만을 지원하는 제도는 빈곤층과 나머지 인구 사이에 더욱 깊은 골을 남긴다. 영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위대한 이론가 리처드 티트머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은 가난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계획과 공제, 혜택을 소득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좌파들의 인식에 새겨져 있는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그러한 경향이 역효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1990년대 말 출간돼 지금은 유명해진 글에서 두 스웨덴 사회학자는 가장 보편적인 정부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국가가 가장 성공적으로 빈곤을 퇴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국민은 개인에게 이익이 될 때 결속에 더욱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자신이나 가족이나 친구가 복지국가에서 혜택을 많이 받을수록 더욱 기꺼이 결속에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형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지지기반을 훨씬 넓힐 수 있다. 결국 누구나 자신에게 이로운 계획을 지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략)
통제와 굴욕이라는 사악한 괴물에게 빈곤층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복지제도이다. 관리들은 페이스북을 사용해 공공부조 수혜자를 주시하면서 지원금을 현명하게 쓰는지 감시한다. 자격, 신청, 승인, 자격 회복 등의 절차를 밟으려면 빈곤층을 안내해줄 사회 서비스 복지사 집단이 필요하고, 서류들을 정밀하게 조사해 자격 여부를 가려내려면 조사관 집단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 의식과 자부심을 북돋워야 하는 복지국가가 국민을 의심하고 수치를 안기는 체제로 전락하고 있다. 이것은 좌파와 우파가 맺은 끔찍한 협정의 결과이다. 캐나다 마니토바대학교 교수 에블린 포르제는 이렇게 탄식했다. “정치권은 국민이 더 이상 일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좌파는 국민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기본소득 제도가 더욱 바람직한 타협안이 될 수 있다. 소득 재분배를 실시하면 좌파가 요구하는 공정성을 충족할 것이다. 간섭하고 수치를 안기는 정권은 어느 때보다 편협한 정부에 권리를 부여할 것이다.
관료주의가 요구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실제로 의존성을 키워 사람들을 계속 빈곤의 덫에 가둔다. 고용인은 강점을 발휘해야 하는데 사회복지기관은 오히려 청구인이 결점을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병이 깊어 건강이 나쁘고, 우울증이 심각하고,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을 거듭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은 수혜자는 복지 혜택을 빼앗긴다. 양식과 인터뷰, 조사, 탄원, 평가, 상담 등 지원을 받으려고 신청할 때는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세금을 엄청나게 집어삼키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중략)
자본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결국 두 가지 유형의 빈곤을 무의미하게 구별하고, 40여 년 전에 거의 떨쳐버렸던 잘못된 생각을 고집한다. 즉, 빈곤 없는 삶은 모든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기보다는 일해서 획득해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복지를 실시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식상하다 못해 진부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조건없는 무상 현금지원이 가능한 사회에서 자격을 증명해야하고 심사를 거쳐서 지원을 받는 것에 내가 의문을 품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작년부터 핀란드는 기본 소득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성남시의 청년 배당을 기점으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본 소득'이나 '무상 현금 지원'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거나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실현 불가능 하거나 비현실적이지 않다. 기본 소득이라는 단어에 펄쩍 뛰며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거나, 개념 자체를 모를 때보다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진보했다. 이러한 진보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민주주의나 여타 많은 우리 사회의 진보들이 그랬듯이 더 나은 미래를 구축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대안을 논의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내년 초 핀란드의 기본소득실험의 결과가 발표된다면 무상 현금 지원은 더욱 구체적이고 활발한 논의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저자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위한 다른 플랜들, 주 15시간 노동이나 국경 없는 세계도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곧 리얼real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이 더 나은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앞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이 유토피아다. 이것이 우리가 유토피아를 꿈꿔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