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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떠나도 일본어는 남는다
조정순 지음 / 에디션더블유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어를 전공한 내게 '20대 한국인 여성'이 가지는 특유의 일본어 억양과 뉘앙스는 정말 해결하기 힘든 난제로 남아있다. 나름대로 일본 드라마나 쇼를 보면서 일본 여성들의 발음과 억양을 따라하려 애써보지만,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발음 관련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여학생들의 억양이 하나같이 똑같은데, 그 억양이 일본인에게서는 잘 나오지 않는 미묘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름대로 일본인의 발음과 많이 유사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일본어를 배우는 형식적인 문어체의 말투가 아니라, 처음부터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일상 회화를 통해 일본어를 습득한 저자의 이야기는 깊게 인상에 남았다. 일본어는 하나의 언어이다. 학습 내용으로 본다면 말 그대로 학습적인 것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녀의 접근처럼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면, 말을 하기 위해 억지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체득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필요에 의한, 강요되지 않은 언어 습득은 학습으로서의 스트레스를 줄여줌은 물론이고 더욱 자발적이교 효과적인 언어 습득 능력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전공도 아니었고, 흥미도 딱히 없었던 일본어를 접하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다. 단지 일본어를 재미있게 배웠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어와 얽힌 그녀의 인생을 당당하게 풀어가는 내용이다. 그녀가 내놓은 참신한 사업 아이템들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할 수 있었고, 사업가로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인드를 통해 책을 읽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가져다 준다. 무엇보다도 떠나는 것이 미련을 갖지 않고, 낯선 것도 새롭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그녀의 자세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 하단부에 틈틈이 제시되어 있는, 학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일본어 표현들은 그녀에게서 무료강습을 받는 행운이랄까.
박신양씨와의 면접 때, 그녀가 내뱉은 말은 나를 충분히 반성하게 했다. 일본어 강사라는 위치에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배울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왜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을까. 나는 아직 배워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무언가 일이 잘 풀려간다는 느낌이 많은 요즘이라 방심하고 있던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는 말이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려워지고, 더 익혀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사실. 앞으로 평생 잊지 말아야 하며, 몸으로 느껴가야 할 말이라 생각된다.
표지에 있는 그녀의 당당한 미소는 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계속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했기에 그녀는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만약 호텔리어라는 동경의 직업을 계속 추구했다면... 그녀는 지금의 그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동경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20대의 중턱에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기 못해 머뭇거리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했던 방식대로 흰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희망하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적어 여러가지의 경우의 수를 찾아두어야 한다. 어쩌면 동그라미 밖에서 자신의 길이 보이게 될 지도 모른다. 길을 찾았다면, 그 후로는 열정을 가지고 몰아붙이는 수 밖에. 수중에 남은 1만원짜리 지폐에 동그라미 4개를 더 붙여 1억짜리 지폐로 만든 그녀의 의지가 우리에게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