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 전21권 세트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작가는 한두 권의 책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누구나가 말하듯 박경리는 훌륭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경솔한 나를 반성하는 말이다. 예전에 박경리의 장편들을 몇 권보고 나는 박경리라는 작가를 그저 한때 대가 세달까 팔자가 세달까 한 여자들을 그려서 먹고 산 작가라고까지 평가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주 그렇듯, 또 어느 집에 갔더니 <토지> 전질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집 아버님은 너무 흥분하셔서 <청소년 토지>까지 전질로 갖추어 놓으셨다. 그집의 깜찍한 고3 딸래미는 청소년 토지가 재미있다고 그걸 보라고 권해줬다.^^ (인서울 대학 수시 붙어서 지금 옷 사러 다닌다) 몇 권 빌려보다가 나 역시 너무 흥분해서 근방의 (사실은 요새 다시 강렬하게 애용하는) 송파도서관에 매일 가서 매일 세권을 빌려서 하루에 세권씩 해서 다 보았다.

토지와 같은 시대를 다룬, 이제는 교과서에서만 이름을 대하게 되는 작가들, 그러니까 이기영이니 염상섭이니 채만식 등등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과는 또 사뭇 달라서, 옛날 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도 재미있게 읽혔다. 그리고 그런 옛날 작가들(그냥 편하게 말합니다)의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더 핍진하고 진실해 보이는 당대를 읽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을 그린 여타의 작품들은 시대적 소명 내지는 사상에 충실했던 모양으로, 주로 서민 이하 빈민의 입장, 혹은 이데올로기의 구현체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했다고 본다면, 토지는 자존심이 뼛속까지 서린 양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워낙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이 잘 살아난 작품이라 독립 운동의 사정이랄지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죽거나 살아남거나 나쁘게 되거나 잘 살아내는 민중의 이야기도 잘 드러난다. 다만 살아남은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겠는가, 하는 것을 이렇게 실감나게 읽은 것은 내 일천한 독서의 역사 속에서 아마도 최초가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거나, 한국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혹은 요구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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