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엄마와 둘이 사는 사춘기 소년의 외로운 성장, 그리고 아들 하나를 데리고 집 떠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자존심 강한 엄마. 이 소설은 이렇게 두 개의 축으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성장기이고 다른 하나는 옆에서 지켜본 관찰기.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인물인 삼례다. 한 겨울 그들의 집에 침입한 거지소녀 삼례는 소년의 첫사랑의 대상이며 어머니의 정신적인 동생 혹은 분신이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마지막에는 결국 소년이 숨겨놓은 삼례의 주소를 가지고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작품은 어머니가 6년만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와 하룻밤을 자고 그 깡깡한 자존심과 오랫동안 계속된 날고 싶은 꿈 때문에 그대로 집을 떠나버렸다고 소년이 생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머니가 떠났다는 증거는 당장 눈앞에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아침과 없어진 삼례의 주소(그나마 삼례의 주소도 아니고 삼례가 찾아간 직업 소개소의 주소다)뿐이다. 즉 작품이 끝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옆집에 반찬 꾸러 갔던 어머니가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면 안될터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그 인생이 처참해서 안되겠고(물론 실제로야 떠나는 것이 더 처참할수도 있지만) 다음으로는 이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년의 환상을 고려해서이다.

소년은 사춘기 소년답게, 게다가 외롭기까지 하니 더 심할 수밖에 없겠다, 끊임없이 환상을 본다. 집 떠난 아버지의 환상, 역시 떠나버린 삼례의 환상, 그런 것들을 거의 매일 보는 모양이다. 물론 소설이니까 작품에는 다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그 환상은 때로 현실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나고 깨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이지 않은가. 그 환상의 진실이 (물론 현실에서도 그래야겠지만) 진실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환상은 그저 애가 좀 맛이 갔다는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이루는 중요한 축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장에 대해 말하자면, 뭐, 말할 것 없이 좋다. 본격문학의 미학이니 뭐니 하는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니다. 알고보면 우리나라 작품에도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는데 서점 베스트셀러를 읽다보면 우리 작품에 대해 자꾸 회의하게 되고 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베스트셀러가 반성을 하든지 내가 베스트셀러는 아예 취급을 말든지 양단간에 아무거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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