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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집안의 막내딸이었던 우리 엄마는 실제로 외할머니와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다른 갈등이 아닌 결혼 갈등 말이다. 아빠가 엄마보다 학벌, 외모, 집안 등이 더 나으면 나았지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외할머니는 저 남자랑 결혼하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날 버리지 말아라쯤 되지 않나 싶다.
우리 엄마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하는데 나이 먹었음에도 결혼 아닌 독립이라든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유학이라도 갈 능력이 있었으면 큰 일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모든 권위와 제도에 앞서 가정이 있고 가정의 권위와 제도는 엄마와 아빠다.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는 건 일단은 여성의 권위와 제도이다. 즉 실제로 가정내에서 딸이 반항적이라면 그 딸에 제재를 가하는 건 먼저 엄마가 된다. 만약 엄마와 딸이 한 통속이 된다면 그때 아빠의 권위가 여자들에게 발휘될 것이다. 아들의 경우와 딸의 경우는 좀 다른 것이다. 아들은 사춘기 이후에는 엄마의 권위를 벗어나게 되니까. 그래서인지 엄마들은 더욱더 독하고 간교하게 딸을 제압하려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마마 엘레나가 싫었다. 가증스러웠고 씹어 뱉어도(씹어먹고싶지는 않다) 속이 시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불행한 사랑을 했다고? 엿 같은 이야기다. 그 여자는 자신이 당한 것보다 몇 배 더 참혹한 짓을 저질렀다. 적어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는 볼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작품 속에서 마마 엘레나가 지나치게 극단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마마 엘레나의 딸 가운데 제 정신인 건 큰 딸 밖에 없는 것 같다. 둘째는 말할 것도 없겠고 셋째인 티타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다시말해, 나는 여성들의 가계에서 발휘되는 여성들의 폭력과 억압에 대항하는 힘이 꼭히 사랑이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을 자꾸 품게 되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이 그토록 중요하고 위대하고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절대적 위치에 있는 것일까? 나조차도 큰 딸이 정상이라고 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결국 여성은 자신의 성을 이용하지 않고는 행복한 가정은 물론 사회적인 성공도 거둘 수 없는 걸까? 부당한 억압과 권위는 오직 성욕과 그 실현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