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과 홀로코스트 - 유럽 최고의 아말피 상 수상작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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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광주를 다녀왔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 매년 이맘때면 망월동 묘지에서 5.18 민주항쟁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부당함에 분노하거나 잔인함에 몸서리를 쳤다. 때론 공수부대가 보인 잔혹함은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선배, 동기, 후배들과 함께 전두환을 욕하고 공수부대를 비난했다. 저들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을 욕하는 건 쉬웠다. 그런데 한 가지 물음 앞에서 우리는,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내가 공수부대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해보지만 이내 무력한 대답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요?” 매년 비슷한 물음이 나왔지만 나오는 대답도 비슷했다. 37년 전, 공수부대원들의 비정상적인 잔혹함은 저 간단한 물음 앞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했다. 명령이니까, 군인이니까. 상명하복이니까, 시민들을 향해 발포할 수밖에 없다. 5.18 광주라는 극적인 상황을 빼놓고 본다면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도 자주 부딪히던 논리였다. “경찰이 무슨 죄냐?” “쟤들도 시켜서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이 연행되거나 밀양의 할머니들이 다치거나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명령의 불가피함’도 더 강력히 변호 되었다. 가끔이지만 누구는 강제로 끌려나왔는데, 누구는 자기 권리(이익)만 챙긴다는 서사도 보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뒤바뀌기도 했다. ‘명령의 불가피함’이라는 상황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저들(군인과 경찰)이 명령과 별도로 실은 악인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무런 ‘악의’가 없어도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의 모습에 소름이 끼칠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인간은 꼭두각시의 운명을 타고났을까? 아니면 본래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천성일까?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극적인 사례를 통해 ‘악의’ 없는 ‘악행’을 가능케 하는 현대사회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악의’와 ‘악행’의 분리는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현대 관료제에서 목적과 수단의 분리는 곧 행위 ‘자체’와 행위의 ‘목적’을 분리했다. 실제 행위자는 행위의 목적, 의도와는 무관하다. 비록 그 행위가 자국민을 향해 발포하거나 유대인을 독가스실로 보내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행위는 잘게 나뉘어 분업화된다. 가스실을 설계하고,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고, 가스실로 이동시키는 모든 일이 잘게 나눠진다. 행위자들은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이들은 ‘유대인 절멸’의 열렬한 수행자가 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현대 관료제에서 행위자 개인의 ‘의도’는 별로 중요치 않다. 목적이 주어지면 이를 실현할 가장 효율적 수단을 찾는다는 합리성의 원리에 따라 행위자들은 조직된다.

오히려 개인적 증오나 광기에 기반을 둔 폭력은 지양된다. 이런 폭력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절멸하기엔 비효율적이다. 부적합하다. 행위자들의 인종주의적 ‘증오’나 ‘광기’를 선동하는 것보단 ‘도덕’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게 더 주요하다.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윤리적 책임감을 느낀다. 독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유대주의 선동은 이웃에 사는 유대인에 대한 윤리적 감정마저 지우진 못했다. 나치당원들조차 지키고 싶어 하는 “일급 유대인”들을 각자 가지고 있었다. 유대인에게 그나마 남은 도덕적 이미지를 없애버리는 것이 필요했다. 유대인의 가슴에는 노란 별이 달렸다. 공공장소에서 치워지고 결국엔 보호를 명목으로 게토로 이주되었다. 사회적 유대가 끊기자 도덕의 작동도 멈췄다. 유대인은 살아있는 이웃의 얼굴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차가운 범주로 분류되었다. 이처럼 홀로코스트는 관료제적 목적과 수단의 분리, 각 행위의 분업화 그리고 도덕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뤄졌다. 그 외에도 국가의 폭력독점, 도덕·윤리로부터 해방된 과학 같은 조건들도 필요했다. 비인간적 행위를 가능하게 한 이 모든 것들은 역설적이게도 사회화·문명화의 자랑스러운 성과기도 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암울해 보인다. 정말 인간은 꼭두각시가 될 운명일까?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현장에서도, 37년 전 광주에서도 권력자에 맞서 양심을 우선에 둔 사람들이 있었다. 극형을 감수하며 유대인을 숨겨줬고, 목숨을 걸고 전남도청에 남았다. 아무도 이들을 강제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비인간적 행위는 수많은 사회적 조작을 해야 했다. 권위의 독점, 관료제의 확립, 도덕적 거리두기 등을 통해서만 인간은 “왜?”라는 물음을 하지 않는 권력의 부속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맞서 싸울 기회가 부재한 상태에서 잠자고 있던 그들의 도덕적 양심은 사회적으로 생산되어야만 했던 비도덕(성)과는 달리 진정으로 그들 자신의 개인적 속성이었다.” 비인간성은 인간의 폭력성이라는 동물적 본능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이라는 인간적 본능을 조작·통제한 결과였다. 만약 인간의 진짜 얼굴이라는 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37년 전 명령에 끌려왔던 계엄군보단 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시민군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이렇게 상상해보니 마냥 암울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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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혁명 5년
프란츠 파농 지음, 홍지화 옮김 / 인간사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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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혁명 5>은 제목에서 예상되는 내용과 달리 혁명지도자나 혁명 진행과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정신과의사이자 민족해방전선FLN의 투사이기도 했던 파농은 알제리 혁명기간(1954~1959) 동안 혁명에 참여한 알제리 민중에게서 일어난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혁명투쟁을 거치면서 신기하리만큼 알제리 민중들의 일상적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변화라는 단어보단 차라리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변화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람들 스스로 바뀌려 한다는 주장이 알제리에서만큼 명백했던 적이 없다. 이러한 무력항쟁은 사람의 자의식만이 아니라 오랜 지배자들이나 세상에 대한 의식, 마침내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스스로에 대해 갖는 생각 또한 개조한다.” (25p)

 

130년의 식민지배기간은 곧 알제리 민중이 점점 불구화되는 기간이기도 했다. “정복당한 것은 땅이 아니다. 항구도 비행장도 아니다. 프랑스 식민주의는 알제리의 개개인 가운데 정착했다. 식민지배자는 피식민지배자를 숙명론, 무기력함, 수동성으로 특징 지었다. 히잡과 같은 전통에 집착하고, 라디오 같은 최신기술에 무관심하며, 심지어 죽음이 다가오는데도 의료기술을 거절하는 알제리 민중의 모습은 식민지배자의 주장을 더욱 강화했다. 봐라 너희들은 원래 미개하고 열등하다! 인종주의 뒤에 온갖 사회학적 설명들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알제리 민중이 무기를 들고 일떠서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혁명을 통해 민중들은 식민주의가, 인종주의가 그들에게 씌운 굴레를 스스로 벗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너희 식민주의가 만든 불구화의 결과라고 온몸으로 말했다.

 

그들이 히잡에 집착했던 것은, 히잡을 강제로 벗기려는 식민주의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들이 라디오에 무관심했던 것은, 그것이 오로지 식민주의의 목소리만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의료기술을 거절했던 것은, 식민주의가 작은 선의를 통해 지배를 정당화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일상적 태도 하나하나에 식민주의에 대한 거부가 스며있었다. 다만 식민지배자만이 그것을 후진국 국민이 보이는 전근대적 특성 따위로 이해했다. 유럽은 식민주의라는 명백한 원인을 앞에 두고도 문제의 원인을 근대성과 전근대성, 문화적 특징(본성) 탓으로 돌렸다.

 

먼저, 식민주의는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히잡을 문제 삼았다. 명분과 달리 실제 목표는 알제리 사회를 해체하는데 있었다. 알제리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여성들을 정복하라는 사회학자들의 조언이 잇따랐다. 알제리남성은 중세적, 야만적, 흡혈귀적 존재로 취급되었다. 유럽인들은 아랍인을 보며 천성이란 어쩔 수 없다며 손가락질 했다. 그렇다면 유럽남성들은?

 

히잡을 벗기는 것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강조하는 것이고, 저항을 깨는 것이며, 무모한 모험을 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중략) 자기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잠정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의지.” (43p)

 

유럽(남성)의 정복욕이 여성보호라는 외피를 둘렀다. 아무튼 히잡을 벗어라는 요구 앞에 알제리 남성은 전통과 관습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히잡을 둘러싼 식민주의자의 공격에 피지배자는 히잡에 대한 경배로 맞선다.” 유럽인이 요구하는 가치 앞에서 알제리는 전통이라는 과거의 가치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가치는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수동적 대처는 알제리 여성들이 혁명에 참여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유럽인 거주 지역에서 작전을 위해 알제리 여성들은 히잡을 벗었다. 어떨 때는 은폐를 위해 히잡을 다시 쓰기도 했다.

 

상황은 단지 히잡이 혁명의 도구가 된 것에만 있지 않다. 전통적인 가족관계, 남녀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딸이 혁명에 가담한 걸 눈치 챈 아버지는 히잡에 대해, 여성의 불명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춘다. 대신 고문이나 전투에서의 죽음이 더 큰 문제가 된다. 혁명에 의해 새로운 가치들이 퍼져나간다. 부족끼리의 결혼 대신 독신남녀의 결혼이 들어선다. 아내가 독립투쟁에 나서지 않는 남편을 비난한다. 전통적 남성성이 현대적 남성성으로 대체되어간다. 무엇보다 혁명전쟁을 통해 남녀노소 모두 동질성을 확인한다. 식민주의에 의해, 전통에 의해 분산된 민중이 통일되어 간다.

 

기술에 대한 알제리 민중의 무관심과 거부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라디오 기술을 거부하는 알제리인은 그것이 식민주의의 도구라서 거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역시나 봉건적, 전통적 금기가 거부의 표면적 이유로 나타난다. 예컨대 라디오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라디오가 정복자의 도구로, 식민지배라는 틀에서 원주민의 어떤 중대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것은 1954111FLN이 반식민주의 투쟁을 시작하면서 민중들이 라디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1956자유 알제리방송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라디오는 이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 된다.”

 

“1956년부터 알제리에서의 라디오 구입은 현대적인 정보기술에 대한 신봉이 아니라 혁명과 소통하고 혁명과 더불어 사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99p)

 

지각방식, 지각세계 자체의 전복을 보게 된다. 알제리에서는 사실 라디오에 관해 수용적인 행동, 지지, 승인이 결코 없었다. 정신적 진화과정으로서 1956년부터 거의 기술발명과도 가까운 현상을 보게 된다.” (117p)

 

정치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의학도 식민주의에선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질병과 위생에 관한 각종 통계에도 불구하도 원주민은 서양 의학에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유럽인들은 이런 태도를 원주민의 객관적 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식민주의가 객관적 판단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는 측면은 무시된다. 원주민이 서양 의학을 인정하는 것이 곧 지배에 대한 동의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원주민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무 것도 요청 한 것이 없었소. 누가 당신들을 불렀습니까? 병원과 항만시설을 가지고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시오.” (153p)

 

식민지 상황이 의료행위의 진실마저 왜곡한다. 물론 여기에는 본국(프랑스) 의사들이 토지소유자로서 착취자와 동일시된다는 점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혁명이 진행되면서 프랑스 당국은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다. 이에 맞서 FLN은 의료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었다. “의대생, 간호사 그리고 의사들에게 전사의 대열에 합류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었다. 이때부터 알제리 민중의 태도가 변화한다. 혁명 이전에는 침략자의 외교관쯤으로 여겨졌던 알제리인 의사는 이제 우리의의사가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손에 쥔 국민은 가장 현대적인 의료기술 형태를 거의 이상하다 싶을 만큼 빨리 자기 것으로 만든다.” (187p)

 

이렇게 알제리 민중은 혁명을 통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갔다. 식민지상황은 세계를 이분화하고 진정한 만남을 불가능하게 한다. 식민지배자의 억압은 원주민에게 유럽인들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숙명론, 무기력함, 수동성이 강제된다. 비극은 반복된다. 파농에게 무장투쟁은 이 비극의 고리를 끊는 첫 걸음이었다. 제아무리 식민지배자가 몰아붙여도 전통과 관습 속으로 더욱 고개를 파고 들던 알제리 민중들은 혁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식민지배에 맞서면서 신기하게도 보편성을 향해 나아갔다. <알제리 혁명5>은 혁명이란 무엇인지, 해방이란 무엇인지 민중들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비록 파농은 알제리 독립을 1년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지만, 변화하는 민중들을 통해 다가오는 해방을 목도할 수 있었다.

 

19604<우리는 왜 폭력을 사용하는가?> 파농 발표문


알제리 민중의 폭력은 평화에 대한 증오도 인간적인 접촉의 거부도 전쟁만이 알제리에서 식민체제를 끝낼 수 있다는 확신도 아닙니다.

알제리 민중은 자신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해결책을 선택했고, 이 선택을 유지해갈 것입니다드골 장군은 알제리 민중을 깨부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에게 협상합시다. 현대사에 어울리는 해결책을 찾읍시다. 하지만 당신이 알제리 민중을 깨부수려 한다면 당신네 군대가 영광스러운 알제리 군인들의 벽에 부딪혀 깨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라고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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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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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세요? 정말 좋은 일이랍니다."


<어머니>를 이제야 다 읽었다.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이 오래걸렸다. 근래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데 세 시간정도 걸려서, 비슷하게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괜히 '장편소설'이라고 하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아들 빠벨이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것을 계기로 어머니 닐로브나는 '운동'이라는 것에 휘말리게 된다. 그녀는 남편에게 매를 맞고 숨죽이며 살았다. 아들이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는 고백에 "두려워!"라며 흐느꼈다. 자기 전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닐로브나의 삶은 이랬다.

메이데이 집회때 아들 빠벨은 붉은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섰고, 경찰에게 곧 체포된다. 이날 그녀는 겁먹고 물러나던 군중들을 향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그분은 계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민중의 삶을 위해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서 '예수'를 보았다. 밤마다 하는 기도 횟수도 점점 줄었다.

아들의 체포후, 닐로브나는 공장으로, 농촌으로 유인물을 실어나른다. 아들 빠벨의 '동지'들이 묻는다. "어머님, 무섭지는 않으세요?" 닐로브나는 여기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녀는 왜 자기한테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따진다. "당신들 서로는 두려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 아들의 동지들은 이제 자신의 동지가 되었다.

"마음속으로 <동지!>하고 불러 보면, 가슴속에서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오." 닐로브나는 이렇게 말하며 '동지' 류드밀라를 꼭 끌어안는다. 류드밀라는 그런 닐로브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나직히 말했다. "당신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세요? 정말 좋은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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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몰락 -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가브리엘 콜코 지음, 지소철 옮김 / 비아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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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몰락을 읽고

 

뼛속부터 반미주의자인가보다. 또 틈나니깐 이런 책을 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즈음에 쓰인 이 책은 미국의 패권이 왜 무너지는지 혹은 왜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오늘날 보이는 미국의 후퇴는 단지 당대 정치인(부시, 체니, 럼스펠드 등)의 문제가 아니다. 제국 내 엘리트들의 욕망과 근시안은 언제나 문제를 그르쳤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이라크전쟁이 대표적이다. 엘리트의 욕망과 최첨단 무기에 대한 맹신은 이성을 마비시켰고 미국의 대외정책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었다.

 

미국의 이해관계는 세계 전역에 걸쳐 있다는 믿음에서 미국의 문제가 기인한다.”

 

세계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야망이다. 그 야망은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토대로 어디서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세계전역에 걸쳐있고, 이것을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대외정책을 결정했다. 욕망은 현실적 조건(제약)을 보지 못하게 했다. 미국의 힘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당장은 경제적 제약이 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달러가치 하락은 달러-금 태환 정지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속전속결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전쟁이 되었다.

 

정치와 사회적 상황이 아닌 최첨단 무기에서 힘이 결정된다는 믿음은 여기에 부채질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최첨단 무기로 한 번도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둬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은 잘 쳐봐야 무승부였고, 베트남 전쟁은 패배했다. 이라크는 승리를 선언하고 서서히 패배하는 전쟁이 되었다. “미국의 군대와 무기는 소련, 집중 배치된 군대, 도시에 있는 목표물들을 겨냥한 것으로 분산된 적을 상대로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책결정자들은 소위 최첨단 무기에 기초한 미국의 힘을 맹신했고 정치나 외교는 전쟁이 끝난 뒤 뒷수습으로만 취급했다.

 

미국은 악순환에 빠졌다.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비용, 더 많은 실패 다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더 많은 무기. 동맹마저 이탈하기 시작했다. 전후 공산주의를 적으로 상정한 동맹체제는 소련이 무너지고 존재의의를 잃었다. 힘이 약하진 미국은 더욱 동맹이 필요하지만 동맹국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개입정책을 뒷받침하는 동맹은 전쟁을 막는다는 명목 하에 오히려 더 많은 전쟁을 세계에 가져다줬다.

 

전후 일어난 수많은 세계의 혼란은 세계를 이끌겠다는 그릇된 욕망과 현실을 외면하는 힘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되었다. 즉 제국의 몰락은 공산주의 때문에도, 테러리스트 때문도 아닌,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는데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이전의 모든 제국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미국 중심의 체제는 현실과 점점 괴리되고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우린 냉소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념의 붕괴는 곧 대안세계에 대한 염원, 지향의 상실로 이어졌다. 지향을 잃은 인간은 상황에 종속된다. 냉소는 인간이 상황에 종속된 한쪽면만 본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제국이 잘못된 믿음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우린 냉소에 막혀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세계를 직시하기 위해선 지향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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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양장) 레닌 전집 63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이정인 옮김 / 아고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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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감상: 제국주의와 계급협조

 

사고 나서 묵혀둔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를 최근 완독했다. 나의 뒤엉킨 감상이 신기하게도 ‘옮긴이 후기’에 깔끔하게 정리 된 걸 보니 괜히 더 왈가불가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레닌전집에서 그간 받은 호의에 보답하는 마음에 몇 자 써본다. 이렇게 말해도 결국은 레닌 핑계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샘이지만.

 

5년 전, 출판사는 다르지만 레닌의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소위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표지를 머릿속에 넣는데 급급했다. 당시에는 이 다섯 가지만 외우면 뭔가 ‘제국주의’에 대해 다 알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참 괘씸했다. 레닌이라는 거인을 발판으로 날로 먹을 심산이었다. 그 부작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 ‘반제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오늘날 제국주의에 대해선 별반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의 이런 지적게으름과 달리 레닌의 이 책은 꼼꼼함으로, 속된 말로 팩트로 가득한 책이다. 제국주의적 본질, 제국주의적 구조 따위의 선언은 편하다. 그에 비해 이 본질과 구조를 설득시키는 경험적 연구는 피곤한 법이다. 그래서 책에서 가장 뇌리에 박힌 부분은 서문 전에 “인쇄용지 50더미에 달하는 이 기록에는 148종의 책과 223편의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 담겼다.”라는 ‘편집자 주’이다. 레닌은 수많은 부르주아(주류) 학자, 은행가 등의 입을 빌려 제국주의를 논한다. 비록 레닌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노예의 언어’를 썼다며 분개하지만 말이다.

 

이런 꼼꼼함은 기회주의, 특히 카우츠키를 비판하는데도 빠지지 않는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단계가 아니라 ‘정책’으로 바라본다. 레닌은 카를 리프크네히트(독일 사민당 좌파)의 입을 빌려 이를 비판한다. 독일과 영국의 갈등은 “기자들의 자극적인 말들 때문에나 외교라는 음악회에서 솜씨 없는 음악가들이 뽐내는 연주”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 나라의 긴장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 발전과 국제적 경쟁의 직접적 산물”이다. 즉 독점이라는 경제적 상황이 정치에서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진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평화적으로) 단합한 초제국주의라는 전망도 제시하는데 이에 대한 반박은 레닌의 다음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초제국주의는 가능한 것일까, 초허튼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레닌은 초제국주의란 단지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하는 단계라고 일축한다.

 

주장 하나하나의 문제보다 주요한 것은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우츠키는 이집트 예시를 들며, 제국주의적 폭력적 방법보다 평화적인 자유경쟁이 더욱 이익이 된다고 강변한다. 레닌은 이를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현존하는 모순들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대신 회피하고, 그 모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 카우츠키의 이론이다.” (153p)

“카우츠키의 선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이론’이 지닌 객관적인, 즉 현실적인 사회적 의미는 단 하나밖에 없다. 대중의 관심을 현 시대의 첨예한 모순들과 첨예한 문제들로부터 돌려 뭔가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초제국주의’라는 거짓 전망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대중에게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가장 반동적인 위안을 주는 것.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있는 것은 오직 대중에 대한 기만뿐이다.” (196p)

 

카우츠키는 계속 두드려 맞는다. 그래도 맞을 만 한 것이 카우츠키의 논리는 제국주의자들의 노골적인 논리와 본질적으로 같은 ‘정치적 입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노동계급이 혁명을 거부하고, 계급투쟁이 아닌 계급화해를 택하는 것이다. 카우츠키의 복잡한 말장난과 달리 당시 제국주의자들은 이를 명확하게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아프리카 분할에 앞장선 정치가 세실 로즈는 이렇게 말했다. “제국이란 빵과 버터의 문제라네. 내란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제국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야.” 여기서 내란이란 곧 계급투쟁을 말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어느 프랑스 부르주아 저술가는 한술 더 뜬다. “어떤 일정한 계급적 궤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국내에서 폭발하지 않도록, 그 에너지가 해외로 발산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 계급적 불만을 완화하는데 지역주의, 인종차별, 여성혐오 그리고 반공주의도 유용할 것이라 생각든다.

 

레닌의 표현처럼 두 제국주의자는 보다 ‘정직한 사회배외주의자’다. 국내 계급모순을 피하기 위해, 혁명을 예방하기 위해, 계급적 불만을 우회하기 위해 제국주의는 필요하다. 혁명을 거부한다면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카우츠키처럼 말이다. 자본주의 발전기 때 자본과 노동의 화해를 말하듯이 제국주의 팽창기 때 ‘초제국주의’같은 화해를 말하는 것, 이것이 계급협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카우츠키와 같은 태도는 과연 한 세기 전 이야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오늘날에도 진행되고 있는 현실인가? 오늘날의 제국주의가 어떠한지 말하기보단 트럼프의 괴벽이나 중국의 무례함 따위에 주목하는 언론은 어떠한가? 중동에서 동북아에서 진행되는 사태를 폭로하기를 외면하고, 기껏해야 ‘평화’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어떠한가? 100년 전 카우츠키의 ‘평화’구호가 전쟁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제국주의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우린 잊으면 안 된다.

 

적다보니 카우츠키에 관한 말이 길어졌다. 이 외에도 100년 전 제국주의 모습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만 말을 줄이겠다.

“차관의 일부를 채권국의 생산물, 특히 군수품, 선박 등을 구입하는 데 지출하는 것을 차관 조건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관행이다. 프랑스는 최근 20년간(1890~1910년) 아주 빈전하게 이 수단에 호소했다. 이처럼 자본수출은 상품수출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106p)

“브라질 철도 건설은 대부분 프랑스, 벨기에, 영국, 독일의 자본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철도 건설과 관련된 금융거래를 통해 건설자재 공급권이 자기 나라에 주어지도록 하고 있다.”(108p)

“은행들은 가장 절박하게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거짓말 같은 호경기를 조성했던 은행들은 다음 순간, 자신들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은 회사들을 절망적인 파멸로 몰아갔다.”(111p)

“독일에서 전매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갖다 준다든가, 또는 국가에 기업자 이득을 일부라도 전해주든가 하는 목적을 가진 것도, 그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도 결코 아니었고, 그것은, 파산에 처한 사적 기업을 국가의 부담으로 구제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118p)

 “이 민족자주 운동은 유럽자본의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유망한 착취 지역에서 유럽 자본을 위협하게 되며, 유럽 자본은 권력수단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에 의해서만 지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202p)

 

읽으면서 어느 특정 ‘국가’가 연상됐다면 그건 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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